역사살롱

여름에 요령성과 길림성을 방문했다. 「연개소문」, 「주몽」, 「만주 오천 년을 가다」 등의 책을 쓰기 위해 이십 년 전부터 이미 여러 차례 방문했던 지역이었다. 이번에는 그동안 다녔던 유적지를 촬영하려는 목적으로 다녀왔다. 하고자성, 상고자성, 오녀산성, 집안, 헤투아라, 심하전쟁 당시 조선군 루트와 부차령, 백암산성, 안시성, 비사성, 그리고 홍타시의 무덤이 있는 북릉공원과 소현세자가 머물렀던 심양관 등을 둘러보았다. 일제강점기 때는 만주철도국 본부로 쓰였다가 지금은 어린이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심양관을 보면서 소현세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뒤 소현세자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동생 봉림대군(효종)과 함께 심양에서 볼모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많은 일을 하는데 특히 조선과 청나라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앞장선다. 조선은 청나라에 항복을 했지만 여전히 호흡기를 떼기 직전의 명나라를 몰래 지원했는데, 그중 하나가 청나라의 요구에 의해 조선 수군 육천 명을 파견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임경업을 우두머리로 한 조선의 수군은 명나라와 싸우는 대신 몰래 그들을 지원한다. 이를 안 청나라는 용골대를 조사관으로 파견해 주모자를 찾으려 했고, 이때 소현세자가 중간에 나서서 이를 무마했다. 또한 심양에 포로로 잡힌 조선인들의 안위를 위해 애쓰고 그들의 귀국을 도왔다. 그러던 중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공격하기 위해 남정(南征)에 나서는 청나라 실력자 도르곤과 동행했다. 그곳에서 청나라 군이 북경에 입성하는 장면, 명나라 장수 오삼계 장군이 항복하는 장면, 청나라 황제 세조가 자금성에 입궁하는 것을 목도하며 명나라의 멸망을 지켜봤다.
경으로 거처를 옮긴 소현세자는 예수회 선교사인 ‘아담 샬’을 만나서 서양 문물과 사상을 배웠다. 과학서적을 탐독했고, 천리경, 자명종, 서양의 화포 등에 대해서도 섭렵했다. 나아가 천주교인으로 세례도 받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후에도 조선은 여전히 성리학적 교리를 중심으로 삼고 나라를 운영했다. 그런 조선에 천주교인인 소현세자가 왕이 되어 과학문명과 서구적 가치관을 중심으로 나라를 운영했다면 이는 혁명적 사건이었을 것이다.
인조는 청나라의 집권자들과 두터운 신뢰를 쌓은 소현세자를 증오했다. 자신을 볼모로 불러들이고 소현세자를 왕으로 세우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쌓이면서부터였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는 소현세자의 귀국을 허락했다. 9년 간의 볼모생활이 끝난 것이다. 그는 벅찬 가슴을 안고 이방송 등 천주교 신자인 중국인 환관들과 함께 귀국했다. 소현세자를 맞이한 조선의 시선은 싸늘했다. 인조는 냉담했다. 그리고 귀국한 그해(인조 23년, 1645년) 학질에 걸려 병사했다. 독살이라는 의심을 남긴 채. 그와 함께 온갖 어려움을 함께 했던 그의 부인(강빈)도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그의 아들들은 제주도에 귀양 가서 죽임을 당했다. 그가 죽은 후 동생 봉림대군은 세자가 되었고, 그는 왕이 되어(효종) 북벌론을 내세웠다. 효종의 상대는 오늘날 중국의 영토를 만든 중국 최고의 황제 강희대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