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우리의 작업은 2015년 문화역서울284에서 주관하는 「미친 광장 페스티벌」에 초청이 되어 초연했던 『훌륭한 사람』이 계기가 되었다. 둘의 공동창작품인 『훌륭한 사람』은 그 이후에도 두리춤터, 인천시립무용단, 춘천아트페스티벌, 헝가리 등 여러 곳에서 공연되었다. 공연하면서 런타임 20분, 40분 두 가지 버전이 만들어졌으며 각 공연장 공간마다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조금씩 재구성되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2016년 SCF(Seoul International Choreography Festival) 에 참가하였고 그랑프리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그 부상으로 불가리아 「아톰시어터 코레오그래픽 시리즈 #1(ATOM Theater Choreographic Series #1)」에 초청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바쁜 날을 보내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덧 출국 날이었다.
그동안 「아톰시어터 코레오그래픽 시리즈 #1」 준비한다고 만나서 얘기하고 연습하고 많은 날들을 보냈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가서 뭐하기로 했지?”, “뭐부터 시작하지?”, “날씨는 더울까?”, “치안이 좋지 않다던데…”, “음식은…” 등 정신적 혼란과 긴장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기내식을 두 번씩 즐기는 것이 비행기 탐의 미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긴장해서인지 음식이 들어가질 않았다. 기내식은 한 번으로 마치고 다시 복잡한 사고의 영역 안으로 깊이 빠져들 때쯤 이것들을 멈추지 않으면 불안함에 미쳐버릴지 모른다는 자체진단과 함께 맥주로 깊게 원샷 하고 잠들기로 자체 처방하여 깊은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8시간 후 경유지인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여 3시간의 경유시간을 보내야 했다.
모스코바 공항에서 출출하지 않았음에도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햄버거로 메뉴를 정하고 햄버거 2개, 감자튀김 2개, 콜라 2병을 원화 약 35,000원 정도의 무지막지한 금액을 지불했다. 쉽게 햄버거 세트 2개인데 35,000원이라니….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모스크바공항 바가지가 유명하다고 한다.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에도 세금을 붙이고, 팁은 스스로 알아서 많이 적어 떼간다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손해를 입고서 불가리아 소피아행 비행기로 환승하였다. 착륙 안내방송이 나왔고 기체의 몇 번의 덜컹거림 후 안정적으로 땅에 바퀴가 닿았음을 느낄 때쯤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리 둘만 빼고 모두 동시에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박수의 의미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박수를 치는 것을 보아 이들의 비행기 문화인 듯하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톰시어터의 디렉터인 스테파니야(Stefaniya)와 매니저인 마가렛(marguerite)이 마중을 나와있었다. 그들의 인도 하에 택시를 타고 예약해둔(Air B&B) 숙소로 이동하였다. 스테파니야의 도움으로 호스트와 만나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기대 이상의 환경과 안락함에 피곤하고 긴장되었던 몸과 마음을 놓일 수 있게 해주었다.

이번 「아톰시어터 코레오그래픽 시리즈 #1」에서 우리의 작업은 『물체의 속성에 대한 관찰』로, 관찰을 통해 발견되는 움직임 활용과 구성 연구를 목표로 하였다. 관찰대상 물체로는 접근성이 용이하고 움직임 발생의 자유도가 높은 공을 선택했다. 「아톰시어터 코레오그래픽 시리즈 #1」의 참여자는 안무가 6명과 15명의 댄서들이었고, 2주 동안 8~9회 워크숍을 통한 결과물 즉, 쇼케이스(Showcase)를 위한 과정과 목표가 함께 하는 창작프로젝트였다. 참여 작가의 국적은 한국, 불가리아, 독일이었고 댄서들은 한국, 불가리아, 이태리, 그리스였으며 댄서들은 전문무용수도 있지만 다른 직업 건축가, 변호사, 학생 등 정말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어 우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레지던스에 대한 부담감은 언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은 처음이었기에 한국에서 준비할 때부터 언어에 대한 부담은 잠을 설치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 대안을 세웠다. 첫 번째 립싱크 기법 - 한 사람은 말하듯이 앞에 서서 액션을 하고, 한 사람은 뒤에 서서 미리 준비한 영어 대본을 읽는 것이었다. 두 번째 녹음기법 - 말 그대로 미리 준비한 대본을 워크숍 진행 순서에 맞게 단락을 나누어 플레이 하는 방식. 다행히 두 가지 방법 모두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에게 우리는 더 이상 경계의 대상이 아닌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사람들로 인식이 되었던 듯하다. 그 이후로는 떠뜸떠뜸 말을 해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이해한 사람이 통역 역할을 스스로 해주는 모습을 보았을 때 더 이상 언어가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들과 작업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인상적인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은 대단히도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사실 처음 바라보았을 때 그들의 몸, 움직임은 한국 무용수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뭔가 어설퍼 보였고 무용교육을 받지 않은 느낌까지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나자 우리가 틀에 갇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틀은 무용교육을 통해 기량을 습득한, 즉 기능적인 기준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몸으로 행동했고 움직였으며 춤을 췄다. 무용교육을 통해 배운 무용동작으로 이루어진 행동과 움직임, 춤을 추며 동작수행이 잘되어졌는지 멋있는지에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속성으로 표현하려 하였고 집중하여 스스로가 기준이 되어 진짜를 만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용동작을 하고 있지 않으면 춤을 잘 못 추는 것 같았고, 다른 사람보다 그 동작이 안 되면 부끄러워했었고, 내가 아닌 타인에게 기준을 두고 행동하고 생각했던 혼란의 시간을 보낸 때가 있었고, 아마도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들을 보며 ‘자연스럽다’라는 느낌을 받은 순간 우린 어쩌면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너는 너 일 때 가장 자연스러워…’

크슈타 크리에이티브 허브(Kshuta Creative Hub)에 처음 들어섰을 때 창작의 영감이 흘러 나올듯한 분위기로 공간이 나를 압도했다. 오래된 건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움, 낡은 것에 아름다움을 느꼈다. 고양이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어린아이도 있었고,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었고, 간단히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정말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움의 극치였다.
사실 이전에는 집시들이 자연 풍화작용에 건물을 맡기고 방치하던 곳이었으나 허브의 공동운영자들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손수 수리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각자의 영역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은 굉장히 빠르게 공유하며 진행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예로 「아톰시어터 코레오그래픽 시리즈 #1」 안무가들이 모이고 이튿날 바로 SNS홍보 사진을 찍기 위해 거리로 나섰고 쇼케이스 홍보영상 촬영을 위해 대관이 어려운 극장을 빌려 바로 촬영, 편집, 게시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열정이 나에게 전달되어선지 돌아온 지금도 뜨거운 감정에 사로잡혀있는 중이다.

불가리아는 장미를 원료로 한 제품과 유제품들이 유명하다. 실제로 시내에 나가면 쉽게 장미제품 상점을 만날 수가 있다. 정말로 최고인 것은 음식 값이 한국의 1/4정도 수준이다. 미디엄사이즈(28CM) 피자가 3.90 레프이다. 원화로 환율 계산하면 약 2,500원. 우리는 2주 체류하는 동안 10일은 피자를 먹은 듯하다. 그리고 4인이 원화 4만원이면 각자 메인 요리 하나씩에 맥주 2잔씩 먹을 수 있다.
2주를 한 순간같이 보내고 돌아오며 앞으로의 계획과 기대감으로 흥분을 멈출 수 없었고 레지던스를 계기로 하고싶은 것들이 더 많아진 우리는 지금의 초반 작업을 기준으로 더욱더 발전시켜나갈 것이고 생계형 예술가로서 꾸준히 일보씩 전진하겠다는 다짐에 차있다.
이 기행문은 SCF(Seoul International Choreography Festival)를 통해 국제레지던스 기회를 얻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진흥기금 해외레지던스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아톰시어터 코레오그래픽 시리즈 #1」에 참여한 기록물로 정확한 정보라기보다는 우리 두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 위주로 작성되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