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통권 500호의 책을 낸다. 힘겨운 한 달 한 달이 언젠가 벌써 마흔한 해 하고 또 몇 달이 되었으니 감회가 없을 수 없다. 북치고 장구쳐주어 여기까지 이끌어주고 도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린다.

「춤」은 무용저널리즘과 일상 속에 매몰(埋沒)되어 방향원리를 잃을 수 있는 무용당사자들의 역사의식―이란 아카데미즘까지를 생각하면서 출발했었다. 그러나 역부족으로 어느 것에도 충실치 못했음을 자인하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도 「춤」의 지성(知性)이 이 시대 무용문화의 기준으로 인정되고 무용사회의 대변자로서 공인받고 있는 사실이 그저 송구스럽고 두렵기만 하다. 이런 것은 모두「춤」에의 기대와 격려로 믿고 노력으로 보답하고자 한다.
생각하면 높은 목청들 속에서는 차라리 낮은 음성이 더 잘 들릴 수 있고 높이 날으는 것보다 낮게 나는 것이 또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듯 국판(菊版) 얄팍한 「춤」의 낮은 목소리였기 때문에 들려졌을 것이고 낮게 있었기 때문에 눈에 띌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보잘 것 없는 누적(累積)이지만 마치 500층탑이나 쌓기라도 한 그런 성취감으로 지난날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것은 창간 당시 ‘춤’이란 책 제호(題號)를 놓고 문화사적 용어가 아닌 죽은 말이어서 안 된다는 견해와 “세 권만 내면 체면은 설 것인데 책이름이 아무 거면 어떠냐…”던 더한 부정적인 견해들.

그러나 지금은 「춤」으로 해서 춤은 천(賤)하고 무용은 높은 예술이란 근대무용사조적(近代舞踊思潮的) 잘못된 인식에서 넘어서 오히려 이 단어의 음향에서 ‘오늘’과 ‘우리’를 느끼게 되었다―면 너무 자기도취적인 해석일까. 어찌됐던 춤은 제가 좋아서 추는 것. 마침내는 지쳐서 쓰러질 테지만 내친 짓이니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 계속 박수를 부탁한다.

사실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 피천득 「이 순간」의 다음 마지막 문장을 “… 춤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로 바꿔본다.



ㅡㅡㅡㅡㅡ

※ 춤 500호의 선장은 분명 조동화 선생이시다. 작고하신 지 3년이 흘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겐 장군의 목소리가 절실함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이 한창 치열했던 100호(1984년6월호) 때 내걸었던 「발간사」를 (숫자만 바꿔) 오늘 500호의 기치(旗幟)로 다시 올린다.
(발행인 조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