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좌담

김경애 (金敬愛 / 춤평론·댄스포럼 발행인)
심정민 (沈廷玟 / 춤평론·비평사학자)
정기헌 (鄭基憲 / 춤평론·사진작가)
정희창 (鄭喜昌 / 춤평론·변호사)
이동우 (李東祐 / 한국춤평론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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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 잡지의 극복 방안과 평론가의 역할
이동우 _ 「월간 춤」이 10월로 500호를 맞이했습니다. 이 뜻깊은 달을 맞아 한국춤평론가 회원들로 꾸민 특별좌담을 기획했습니다. 「월간 춤」은 무용뿐만 아니라 방송, 미술, 영화, 패션 등 각 문화계인사들이 참여하는 문화예술잡지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해왔습니다.
이번 좌담에서는 「춤」지 500호가 갖는 의미와 앞으로의 전망뿐만 아니라 춤계 대표적 출판물로 그 권위를 가지고 있는 「춤」지가 인터넷 문화 확산 등 시대의 변화 속에서 종이잡지로서 위기를 극복할 방안에 대해서 모색해보는 자리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평론가의 위치나 위상 등에 대해서도요.
정기헌 _ 우리 문화계에서 한 분야와 장르를 지켜가면서 잡지를 500호까지 이어갔다는 것은 무척 뜻깊은 일이에요. 그런 잡지가 「현대문화」, 「월간 공간」 등이 있는데, 무용이라는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의 잡지를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오래 만들어왔다는 점은 대단합니다. 제가 그런 잡지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동우 _ 사실 예술 잡지는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음악생활」이 그 대표적인 예지요. 국민음악연구회에서 출간했지만 발레, 전통춤 등 공연예술까지 아우른 전문잡지로서 내용도 알찼습니다. 1965년에 창간했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오래가진 못했지요. 그런데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취미를 ‘음악 감상’이라 할 만큼 가장 보편적이고 점잖은 취향의 대명사지만, 무용은 예로부터 유교적 사고가 뿌리박혀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 인식이 그리 높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춤’이라는 단어는 순수한 우리말임에도 어쩐지 ‘무용’보다 비전문적이라는 인식 속에서 ‘춤’이라고 명명한 무용 중심의 잡지를 월간지로 발행하겠다는 발상을 실천에 옮겼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춤」지 500호의 역사적 의미 다섯 가지
심정민 _ 「춤」지 30주년 때와 40주년 때 「춤」지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다섯 가지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이는 조동화 선생의 지론과도 상당부분 맞물려 있습니다. 첫 번째 「춤」지는 1976년 창간 이래로 저급하고 낙후된 예술이라는 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시키고 춤의 사회적인 인식을 높여가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비교적 제한된 춤계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관련 예술분야나 문화계 전반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우리 사회 속에서 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여갔습니다. 두 번째 한국 춤의 역동의 40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1차적 사료(史料)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실행했습니다. 찰나에 소실되어가는 공연예술로서의 춤을 기술하고 평가함으로써 동시대에는 널리 알리는 한편 다음 세대에게는 사료(史料)로서 기여하였습니다. 세 번째 「춤」지가 정례적인 지면을 제공함에 따라 제대로 된 그러므로 전문화된 춤평단이 확립되어갔습니다. 이전에 산발적인 춤평론 활동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심층적인 논의가 가능해지면서 춤평론가들의 전문성이 강화될 수 있었습니다. 네 번째 이를 통해 춤평론가의 저변 확대와 조직화가 가능해졌습니다. 넓어진 등단 기회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통해 춤평단에 일련의 계보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춤평론가들의 활동영역의 심층화와 다변화는 곧 1987년 한국춤평론가회의 발족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섯 번째 무용전문지라면 춤평론가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춤」지는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일단 지면을 부여하는 평론가들에게는 고유한 권한을 최대한 인정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평론가의 힘과 자유로움을 마음껏 고양시키는 것이 편집상의 방향이자 정책인 것입니다.
다른 공연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단의 영향력이 무용계처럼 크지 않다고 해요. 대부분 무용계에 비해 큰 예술시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평단은 무용계보다 약한 편이라고요. 외국의 무용이론가나 평론가들도 세미나에 오면 그것부터 물어보는 경우가 있더군요. ‘한국은 무용 평단의 영향력이 세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부럽다’는 식으로요.
문제는 최근에 들어와서 무용 평단의 영향력이 많이 분산되었다는 겁니다. 좋은 말로는 다변화나 다양화됐다고 할 수 있지만 안 좋은 말로는 굉장히 약화된 거죠. 가장 큰 문제는 ‘나도 평론가’라는 식으로 부적격자들이 평론이라는 상에 숟가락을 얻으려고 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때론 사칭에 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도 물론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었지만, 최근에는 숫자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동화 선생이 계실 때는 존재 자체가 어느 정도 평단을 기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셨는데, 포스트 조동화 시대에 이르러 그러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리더가 부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희창 _ 무용 예술에는 무대 위의 예술가들이 있고, 학교 현장에서 교육하고 받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무용 연구의 전문가들과 비평을 하는 평론가들이 있지요. 이런 여러 사람들을 모아서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글을 발표하는 장을 「춤」지에서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서로 별개로 있을 수 있는 현장과 무대와 관객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의 중심이 되어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동우 _ 「월간 춤」 은 여느 무용잡지처럼 무용 위주의 공연정보와 공연 평 그리고 무용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문지로서만 그치진 않았습니다. 미술, 영화, 패션 등 다양한 문화, 예술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문학까지 다루는 문예잡지 역할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춤」지는 아직도 유일무이한 예술전문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춤」지 내용과 구성은 무용가들에게 예술분야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그리고 다른 예술분야에도 관심을 가지며 간접체험을 하도록 하려는 조동화 선생님의 메시지가 숨어있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춤 산책’ 코너가 생긴 이유도 너무 춤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중용과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춤」지 한 권의 내용을 인격으로 본다면 한 명의 전인적 예술인이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 추구하신 이상적 예술인 상이 「춤」지 한 권에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국내에서도 새로운 무용잡지가 많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춤」지처럼 문화예술 전반을 다루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김경애 _ 「춤」지 500호를 맞이해서 돌아보니, 「춤」지가 급변하는 무용계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 가지 측면에서 「춤」지를 살펴보면, 우선 잡지 내용, 즉 콘텐츠 면에서 춤문화운동을 주도했지요. 조동화 선생님께서 무용 캠페인, 무용운동, 문화운동을 하셨다고 할 수 있어요. 또 디자인 측면에서 봐도 「춤」지는 아주 매력 있는 잡지입니다.

「춤」지의 다양한 문화운동은 전문지의 역할로도 성공적인 모델
조동화 선생님께서 문화예술계의 많은 분들과 교류하셨는데, 선생님 자신이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아주 많으셨어요. 특히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고, 데생도 아주 잘 하셨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김남조 시인이 「목숨」이라는 시집을 출간하는데, 그 시집을 기획, 출간, 장정하신 분이 조동화 선생님이세요. 미술적 요소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또 「춤」지 역시 그 당시로 보면 디자인이 아주 남달랐어요. 잡지 외형 속에 당시의 문화를 아주 세련되게 담았죠. ‘가장 문학적인 잡지상’도 받을 정도로 문인이나 미술가 등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인정을 받았어요. 압도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1970년대와 1980년대 사회에서의 「춤」지의 역할이 인정을 받았지요.
물론 요즘이야 컴퓨터나 디자인 프로그램이 발전하고 다양한 인쇄물이 많이 나오니까 거기에 비교하면서 「춤」지의 제반 요소를 간과하기 쉬운데, 1970~80년대로 보면 아주 뛰어난 거예요. 당시 인사동에 가면 「춤」지를 소장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인사동 카페에 「춤」지를 진열해놓는 곳도 있을 정도였죠. 그건 제가 목격한 사실입니다.
문화운동 측면에서는, 조동화 선생님과 육완순 선생님 그룹이 현대무용을 정착시켰다고 보면 됩니다. 현대무용에서 계몽운동을 펼치신 거죠.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작가정신이나 작가의식을 고양시켜서, 현대무용과 신무용 등 다른 것들과 대립구도를 만들었지요. 물론 과부하 된 부분도 있긴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캠페인을 하면서 현대무용을 정착시켰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춤」지의 콘텐츠 측면을 보면, 앞에서 심정민 선생이 이야기한 춤의 기록과 평론가 육성을 한 점이 중요합니다. 특히 평론가 육성이 가장 크게 기여한 점입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당시 무용계에는 정보가 부족했어요. 외국 가는 것 자체도 어려웠고요. 특히 해외 정보는 더 얻기 힘들었는데, 니진스키, 이사도라, 볼쇼이 발레 등 지금은 너무 대중화된 무용가들의 자료들조차 그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죠. 그런 때에 「춤」지에서 정말 그런 정보를 구해서 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굉장히 이 부분에 집착을 하면서 공을 들였어요.
당시 「춤」지가 수입이 없는 잡지인데, 잡지사에서 권당 수십만 원이나 하는 외국책을 사고, 「댄스 크로니클」이라는 잡지를 구독해서 보기도 했죠. 「댄스 크로니클」은 미리 구독자를 모집하고 구독자의 1/n로 계산해서 구독료를 책정하는 식이었어요. 개인과 기관의 차이를 두어서 그 당시에 개인과 단체의 외국 잡지 구독료가 100불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했어요. 해외 정보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해외 자료를 모아서 번역하는 일도 참 힘들었어요. 당시에 「춤」지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춤」지 독자들이 어떤 기사를 주로 보는지 물었더니 해외 정보를 보는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고 해요.(웃음) 그렇게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거죠. 지금이야 스마트폰을 통해 손바닥 안에서 인터넷 정보를 볼 수 있으니 해외 정보도 쉽게 접하고 그렇게 고마운 마음 없는데, 2000년 이전에는 해외 정보를 구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어요. 특히 「춤」지가 창간된 1970년대와 이후 1980년대까지는 정말 많은 공을 들여야 해외 정보를 구하고 소개할 수 있었지요. 초창기에는 이덕희 선생님이 번역을 주로 하셨어요. 그분의 공도 무용가들이 기억을 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렇게 해서 「춤」지가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지금은 사회가 많이 바뀌어서 과연 인쇄 매체가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요즘은 이메일보다 SNS가 더 영향력 있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정희창 _ 40년 하고도 1년 8개월을 더 해야 500회가 되는 건데요. 이렇게 쭉 계속 발간해온 잡지가 없죠. 「월간 미술」이 있지만 지금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잡지들도 다 절판되거나 그렇고요. 문학잡지는 있죠. 아무튼 그런 점에서 정말 큰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동우 _ 창간 이래 지금까지 결번 없이 계속 나온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한결같은 면과 함께 마지막까지 세로쓰기를 고수 했을 정도로 보수적인 포맷으로도 유명합니다.
정희창 _ 「춤」지는 편집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어요. 사실 문학 장르는 소설이나 시, 평론 등을 글로 써서 발표하는 것이지만, 춤은 여러 예술을 아우르는 것이죠. 그러니 당연히 춤에 대한 평론도 모든 예술을 아우를 수 있어야 쓸 수 있기 때문에 춤과 관련된 종합예술 잡지를 만들기도 쉽지 않고 유지되기는 더더욱 힘든 일이에요. 공연예술 잡지가 나오기는 했지만 중간에 없어졌죠. 많은 자본을 가지고도 잘 안 되는데, 정말 「춤」지는 소자본으로 시작해서 잘 일궈나갔어요. 특히 조동화 선생님처럼 직접 예술을 체험해가면서 하신 분은 정말 없다고 봐요.

처음부터 작고, 가볍게 연비 좋게 설계한 것도 500호의 한 이유
김경애 _ 출판, 건축은 문화이자 문명이라는 말이 있어요. 내용은 문화지만, 문명에 분류가 돼요. 왜냐하면 그 시대의 물성(物性)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산업에 좌우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지금 철강 산업이 잘 되고 있기 때문에 철골조를 이용한 유리 집이 많이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시대의 산업 발달을 고스란히 담는 것이 건축과 출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치 자동차 산업이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부품을 담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출판도 컴퓨터 인쇄에서 고급 노동자, 디자이너, 원고 쓰는 사람과 마지막으로 인쇄소 직공까지 다 담고 있는 거예요. 그들의 노동력과 정신적 세계가 담겨 있는 거죠.
조동화 선생님께서는 식자공들이 글자 하나하나를 골라내는 활판을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서울에 활판 인쇄소가 마지막으로 남아있을 때까지 「춤」지는 활판 인쇄를 했어요. 제 기억에 1995년까지는 했던 것 같아요. 그 인쇄소가 마포에 있었는데, 동판으로 만들어서 인쇄해서 밀어내는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동판과 글자가 맞아야 하는데, 동판의 질이 점점 떨어져서 무척 속상하기도 했죠. 조동화 선생님께서는 책이 나오면 항상 지면을 손으로 만져보셨어요. 활판 인쇄되어 나온 느낌이 오톨도톨하거든요. 그 느낌을 참 좋아하셨는데, 그걸 할 수 없는 순간이 왔죠.
이후에는 다 컴퓨터 조판으로 했어요. 그때까지 「춤」지는 세로쓰기를 했는데, 컴퓨터에서는 세로쓰기가 기능적으로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쇄소에서는 세로쓰기 작업을 무척 귀찮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조 선생님께서도 결국 포기를 하셨어요. 문명에 승복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거죠. 결국 출판이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정기헌 _ 제가 2001년에 우즈베키스탄 여행 중에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을 담은 책을 샀는데요. 책의 질이 너무 안 좋고 거칠어서 손으로 만지면 들어가는 느낌이 선명하게 드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여행을 갔다 와서 조 선생님께 그 책을 선물로 드렸더니, 손으로 만져보시고 ‘이게 진짜 책이지’ 하시는 거예요. 그 기억이 참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심정민 _ 십몇 년 사이에 이제는 종이에서 디지털로 다 넘어갔죠. 근래 들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화두에 올라 있듯 이제는 정말 빠르게 변화해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혁의 시기에 어떻게 전통을 지켜가면서도 새롭고 다양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전통과 시대적 변혁은 항상 딜레마와 같은 난제를 제공하곤 합니다.
이동우 _ 제 기억으로도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변화되었을 때 조동화 선생님께서 일종의 패배 의식까지 느끼셨다고 말씀하셨지요. 선생님은 시각적 포맷(형식)에 대한 집착이 강한 분이셨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수많은 착오를 거쳐 검증된 포맷은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이지요. 한마디로 조동화 선생님의 작업 방식은 시스템이 일하는 방식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부분을 바꾸게 되면 전체의 균형이 깨져버리기 쉽죠.
한자표기가 사라지고 세로에서 가로로 바뀌었음에도 「춤」지의 장정이나 포맷에 대한 지적이 많았습니다. 흑백에 사진은 별로 없고 글로만 가득 찬 구식이라고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시점에서, 기존의 포맷을 그대로 고수한다는 것이 조동화 선생님의 정신을 따르는 일이겠지만, 그것이 디지털 세상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그 사이에서 딜레마가 참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교육 시스템 때문에 책을 읽는 무용인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평론을 자신의 공연 홍보정도로 여길 수밖에 없게 될 뿐입니다.

가로쓰기에서 세로쓰기로, 문화가 산업에 종속된다는 생각에 패배감을 느껴
정기헌 _ 지금의 가로쓰기 판으로 바뀐 지도 벌써 꽤 되었군요. 처음에는 굉장히 큰 변화 같았지만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춤」지는 요즈음의 여러 매체에 비하면 올드한 느낌이 들지만 이것 자체가 「춤」지가 가지고 있는 고집스런 모습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조동화 선생님이 책을 만들 때 오래만들 수 있도록 책을 편집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일본의 두꺼운 전문지들이 대부분 편집은 한사람이 다 맡아서 한다. 여러 명의 조력자가 도우면서 책을 만드는 것이다. 비용들이지 않고 핵심을 유지하면서 오래 만들 수 있는 책을 늘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춤」지의 외형적인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향수가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희창 _ 옛날 활판 인쇄할 때나 세로쓰기를 할 때 편한 면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후에는 타자기나 컴퓨터의 영향을 받으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쓰기가 된 거죠. 그렇지만 아랍어나 히브리어 등 아직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언어들도 있어요. 요즘에는 컴퓨터 기술이 발달해서 아래에서 위로 쓸 수도 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것도 어렵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세로쓰기도 전혀 어렵지 않거든요.
그래서 500호 기념으로 아예 컴퓨터 세로쓰기를 시도해서 몇 칼럼만이라도 그렇게 한 번 해보는 것도 어떨까 싶어요. 또 가로쓰기, 세로쓰기에서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컴퓨터가 나올 때 전부 가로가 넓고 세로가 좁은 컴퓨터 모니터 화면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뒤집혀서, 옆으로 볼 수도 있지만 휴대폰은 세로로 길게 들고 보는 게 오히려 더 정상적인 거거든요. 그렇게 본다면 「춤」지가 초창기에 나올 때처럼 오히려 세로쓰기를 적절히 쓰면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더 보기 편할 수도 있어요. 그런 측면도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경애 _ 조동화 선생님의 활판이나 세로쓰기, 그리고 편집내용에서 완강하셨던 고집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어요. 그 고집이라는 것을 다르게 확대해서 보면 이념으로까지 생각할 수 있어요. 잡지인이라는 사람은 세상에 무언가를 퍼뜨리는 핵심적 역할을 많이 하잖아요. 현대의 전문지들은 그런 측면에서의 고집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다 잊어버린 것 같아요. 지켜야 할 것, 확실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을 지키고 밀고 나가지 못하는 그런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면서 전문지를 발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를 갖기도 합니다.
타임지 표지의 M자가 지금은 약간 기울어 있어요. 이렇게 바뀌기까지 100년이 걸렸어요. 디자인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장했는데, 계속 관철되지 않고 나중에야 된 거죠. 또 책을 만들 때 적용되는 띄어쓰기, 여백 등 출판 규격이 황금비율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 황금비율이란 것은, 인간의 눈과 사고에 있어 가장 편안하게 들어오는 센티미터와 비율을 계산해서 만든 거라고 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현대의 자유로운 정신에 의해서 많이 붕괴되었고, 지금은 이런 고전적인 것들을 주장하면 비현실적이라고 하기 때문에 주장할 수가 없어요.
이런 형식은 곧 내용을 뜻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조동화 선생님이 활판과 세로쓰기를 주장하신 것의 이면에는 선생님의 굉장한 예술관, 무용관 등이 책 속에 다 담겨 있는 거죠. 선생님께서는 굉장한 고집으로 그런 형식을 밀고 나가서 500호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중간의 모든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었거든요. 게다가 그 당시는 인쇄비, 활판비 등으로 비롯해서 책을 만드는 비용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들어갔어요. 요즘이 책 만들기가 훨씬 쉬운 편이예요. 1990대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전문 무용 월간지를 만드는 나라가 셋, 넷밖에 없었어요. 영국, 미국, 프랑스 정도고, 독일이나 일본에도 없었지요. 그것도 다 2000년대 들어와서 다 생긴 거지 그 이전에는 어려웠어요. 그보다 훨씬 전인 인쇄물을 만들어내는 그 자체가 무척 어렵던 때 선생님이 「춤」지를 월간으로 단 한 권의 결간 없이 만드셨던 거죠.

「춤」지는 매호 하나의 예술작품 만든다는 정신에서 출발
정희창 _ 지금 말씀을 듣고 보면, 현재 「춤」지를 발행하시는 분들을 초청해서 청문회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조동화 선생님께서 「춤」지를 만들 때 매달 예술작품 하나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드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장하고 싶어 하는 거겠죠. 앞으로도 그런 기조를 이어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전에는 「춤」지가 100~120페이지 정도로 얇았잖아요? 그때 발간된 「춤」지의 표지는 지금 만져 봐도 느낌이 아주 좋아요. 판화를 포함해 유명 예술인들의 그림을 표지에 실었는데, 그 표지만 보고도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죠. 지금 펼쳐 보아도 그때의 활판 인쇄된 책장은 여전히 음각, 양각 표시가 나요.
한편으로 평론가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잡지 창간 시절부터 평론가들에게 글을 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편집자 측에서 전혀 사전검열이나 사전허가 절차 없이 그대로 실어 주었어요. 그때를 기억해보면 ‘써온 건 무조건 다 실어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춤」지의 필자로서 그 점을 아주 좋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춤」지에 글을 싣는다는 것은 선택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주 감사한 일이었어요.
김경애 _ 조동화 선생님은 사람을 굉장히 까다롭게 선택하셨어요. 평론가 선택에 아주 엄격하셨거든요. 그래서 1980년대 초에는 「춤」지에 글을 쓴다는 것이 굉장히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그때가 아마 「춤」지가 가장 많이 빛나던 때인 것 같아요. 그 당시는 출판이 허가제여서 정기간행물도 마음대로 등록하지 못하고 허가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웠어요. 그래서 정기간행물 숫자도 적었고, 출판되는 정기간행물도 매달 검열 도장을 받아야만 시중에 나갈 수 있었어요. 그런 시대였어요. 그런 시대에 「춤」지가 나왔고, 사람들이 「춤」지에 글 쓰는 것이 곧 평론가의 자격증을 갖는 것처럼 인식될 때였어요.
조동화 선생님께서는 사람을 아주 까다롭게 선정하셨지만, 선정한 후에는 비교적 무제한의 권한과 자유를 주셨어요. 평론의 대상이 되는 작품이나 무용가, 또 평론 내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평론가가 마음대로 결정해서 글을 쓸 수 있게 하셨어요. 그런 잡지는 별로 많지 않거든요. 보통은 매체가 평론 대상을 지정하고, 분량도 정해주고, 어떤 식으로 써주길 바란다는 요청도 많아요. 그런데 「춤」지는 선정된 평론가에게는 전폭적인 권한을 주고 지원해주었죠. 그래서 평론이 활성화되고, 평단이 만들어진 거죠. 일반 매체들은 평론가와 대상자의 분쟁이 있으면 귀찮으니까 대체로 그 문제의 평론가를 탈락시켰었는데, 조동화 선생님은 평론가의 뜻을 그대로 인정하고 밀어주셨어요. 그러니까 분쟁이 반복되어도 평론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이건 대단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가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근원을 만들어주신 거죠. 이런 것들 주위에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선생님은 개의치 않으시면서 당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셨죠.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위대한 것이죠.
정기헌 _ 예술로 담고, 예술로 만들어진 책에 필자를 예술의 일부로 받아들여주신 거죠.
김경애 _ 조동화 선생님께서 잡지를 만들 때 하신 말씀이 두 가지 있어요. 먼저 ‘잡지는 신사의 업이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신사라는 말에는 도량, 아량, 격, 품위가 담겨있으면서 사회의 리더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거죠. 또 하나는, ‘지면마다 승부해야 된다’는 거예요. 저는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야단을 많이 맞은 편이었어요.(웃음) 지면마다 승부하라고 하시니, 한 면, 한 면을 너무나 힘들게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그 강열함이 인생의 지표가 되어서 ‘지면마다 승부’라는 문구를 지금도 다이어리에 써놨어요. 편집자로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니까요.(웃음) 지나놓고 일한 시간들을 돌아보면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치열한 춤정신으로 「춤」지가 제작이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동우 _ 말씀을 듣다 보니 떠오르는 궁금증이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조동화 선생님께서 앵무새 사건으로 고초를 많이 겪으셨는데요. 독재정권 때 출판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없으셨는지요? 그리고 조동화 선생님께서 잡지를 예술품처럼 만드셨다고 했는데, 춤을 어떤 관점으로 보셨나요? 우리가 흔히 무용가가 되고 싶거나 무용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내가 정말 무대에 서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있고, 아니면 그냥 미학적으로 좋아하는 분이 있잖아요? 조동화 선생님께서는 어떤 점에 비중을 두고 춤을 바라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조동화 선생의 아마추어 정신은 역설적인 의미
김경애 _ 두 번째 질문부터 답하자면, ‘딜레탕트’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나는 아마추어다, 프로가 아니라 그냥 관찰자다’라고 하셨어요. 뒷광대, 앞광대라는 말이 있잖아요? 선생님은 뒷광대에 흥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조 선생님께서는 서울대 약대에 다니던 시절에 제작극회에서 연극을 하셨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으로 연극을 하시다가 무용으로 관심을 옮긴 거예요.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라고 말씀하시거든요. 제작극회에 최창봉 선생(우리나라 최초의 방송 PD로 여러 방송국 개국을 주도했고, MBC사장을 지냈다) 등 친한 분들이 있는데, 그들과 어울리시면서 연극을 하신 거죠. 조동화 선생님은 포스터와 풀을 들고 다니면 벽에 붙이고 다니는 일에 흥미를 가지셨어요. 자신을 늘 풀통을 들고 뒤에서 포스터 붙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다가 송범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제작극회 사람들과 같이 장추화 무용학원을 다니게 됐다고 해요. 송범 선생님의 형님이 을지로2가에서 출판사를 하셨는데 거기서 만나신 거죠. 그런데 송범 선생님께서 당시로써는 놀랄 정도로 멋쟁이였다고 해요. 송범 선생님을 만나면서, 아마 조동화 선생님께서 당대 청년들의 선망이었던 신물물이나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도구로써 무용을 접하고 사랑하신 것 같아요. 무용을 접하는데 송범 선생님이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조동화 선생님께서 농담처럼 말씀하신 일이 있어요. 장추화 무용학원을 다닐 때 거기서 김문숙 선생님을 만났는데, 김문숙 선생님이 너무 미인이고 아름다워서 같이 어울려 다녔다고 해요.(웃음) 그러니까 그야말로 ‘딜레탕트’라는 말처럼, 그냥 무용 자체를 즐기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신 거예요. 그러면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일종의 캠페인과 문화운동 쪽에서 무용을 담는 그릇 역할을 하신 거예요.
그러다가 동아일보에서 강제 퇴직당하고, 뭘 할까 고민하시다가 「춤」지를 만들기로 하신 거죠. 그때 대구 효성카톨릭대 이사장님께서 400만을 주셨다고 해요. 45년 전이니 지금으로 치면 큰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돈으로 식자기 등 기본적인 것들을 구비하셨다고 해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죠. 「춤」지는 예술 분야, 특히 무용 전문이니 사실 과거정권 아래서도 크게 문제될 게 없는 잡지였어요. 그리고 그때는 정기간행물을 낼 수 있는 등록권이 있으면 그걸로 굉장한 권한을 가진 거였어요. 정기간행물에 대해서는 문화예술진흥원에서 지원금을 주니까 그 지원금이 잡지 발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그 당시 받은 지원금 액수가 지금 지원금보다 많아요.
그런데 조동화 선생님께서 무용 창작에 대한 계몽을 하는 과정에서 혜택을 받은 그 무용가들이 「춤」지에 지원금을 주지 말라고 서명운동도 하고 그랬어요. 우리 무용가들은 좀 특이한 면이 있어요. 그때 이순열 선생님이 임성남, 송범, 육완순 등 거물 무용가들에 대한 혹평을 써서 그런 거죠. 조동화 선생님께서 그 서명 명부를 가지고 계셨어요. 그 명단에 조 선생님 친구인 평론가, 전적으로 지원을 받은 이름 있는 무용가들도 사인하셨다고 해요.(웃음) 지난 일들이니 웃을 수 있지요. 예나 지금이나 많은 무용가들이 덕(德) 부족한 것은 변하지 않은 듯해요.
이동우 _ 무용가가 자신의 공연을 어떻게 느꼈는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평이 좋으면 기분이 좋고, 평이 부정적이면 속상한건 인지상정이지요. 예전의 1970~80년대 「춤」지의 좌담이나 공연평을 읽다보면 그 신랄함에 놀라기도 합니다. 현재에 와서는 그러한 수위가 대폭 줄어든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 시대라 네티즌들이 익명성을 보장받으면서 게시판이나 블로그, 댓글 란에 굉장히 솔직하게 의견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열렸어요. 네티즌들의 글을 보면 전문성이나 공정성에서 떨어지기도 하지만, 아마추어리즘이 보여주는 열정은 저의 초심을 되돌아보게까지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평론가로서 어떤 평론 활동을 해야 하고, 어떻게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할지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정기헌 _ 온라인 시대로 시대는 넘어왔는데, 우리가 보고 즐기는 춤은 온라인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요즘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친구들과 나누던 이야기를 마음대로 글로 옮겨서 SNS에 올리는데 부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무용계의 장을 넓히는 데 더 큰 긍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춤의 매력이 퍼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지요. 주관적으로 좋다 나쁘다는 누구나 말 할 수 있지요. 평론가의 글은 일반 관객의 글보다 더 권위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춤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서 기준을 잡는 역할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춤」지에 글을 쓰는 사람들의 역할이기도 하구요.
정희창 _ 무용이 온라인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요?
정기헌 _ 춤의 본질적인 매력이 온라인에서 감상되고 있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에서 회자되는 것은 단편적인 정보가 회자되고 있는 것이지요. 온라인을 통해서 춤을 감상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은 아주 1차원 적인 수준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너무 쉽게 춤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사용하는 문제
정희창 _ 온라인으로 감상하는 것이 춤 예술을 제대로 즐기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춤 예술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더 깊은 논의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공연을 보고 글을 쓰는 문제에 대해서는, 춤 공연을 본 사람들이 글을 쓸 때, 자신이 본 공연에 대한 감상문을 쓴 건지 평을 쓴 건지 구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을 쓰는 사람들은 평론가가 되는 것이고, 감상문을 쓰는 사람들은 일반 감상자가 되는 거죠. 일반 잡지나 주간지 등에는 평론도 싣지만 주로 감상문을 싣는다고 봐요. 다른 온라인 게시판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춤」지는 평론을 싣는 잡지죠.
심정민 _ 자연스럽게 무용계와 평단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저도 최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쉽게 무용평론가라는 타이틀 심지어 춤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예전에도 없지 않았으나 근래 들어 눈이 띄게 많아진 인상입니다. 별 사심 없이 왜 평론가로 등단했냐고 물어보면, 갑자기 돌변해서 ‘누구누구도 평을 쓰는데, 내가 왜 못 쓰느냐’는 식으로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1차적으로는 평론가들이 본분을 지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론을 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현장의 흐름을 판단할 수 있는 만큼 공연을 보고, 의미 있는 작품에 대해 정당하게 판단하여 조명하고, 무용계 기득권의 그릇된 방향에 대해서는 지적해주고, 무용가들의 어려움에 대해 귀 기울여 이를 공론화하고…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요즘 적지 않은 평론가들이 본분을 제외하고 다른 일들에 더 열을 올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에 평론가들이 춤을 추는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확히 누구누구가 출연하는지는 잊어버렸습니다. 춤추는 게 좋아서 추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공적 지원으로 평론가가 춤을 춘다는 식의 공연명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무용가들의 불신과 실소를 야기할 수도 있는 부분이고요.
이러다보니 부적격자들이 ‘나도 평론가’라고 나서면서 무용평론가, 춤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양심의 거리낌 없이 쓰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는 점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용가 중에서도 일시적으로 어떤 위치에 올라 세력을 가진 무용가가 의도적으로 평론가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에 동조하는 지원기관의 일부 부서 또한 존재하고요.
한편,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한 블로거라든지 SNS필자가 등장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도리어 대중과 무용계를 잇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면이 있습니다. 다만 평론가의 역할은 온라인 활동가들과는 다른 거거든요, 그걸 혼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 문제들을 좀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포스트 조동화 시대에 춘추전국시대를 넘어서 혼란과 혼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과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다양화와 전문화의 균형을 잘 맞춰서 좋은 방향으로 가면 그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잘못 풀리면 무용평단이 그냥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당장 자기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고 난 괜찮다고 생각할 게 하니라 평단의 고유한 기능이나 역사성과 같이 대의적인 부분을 좀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 세대 평단에 대해서는 별 의식이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평론가라는 게 나 혼자 잘되면 그만이라는 식보다는 무용계와 평단, 예술과 작품 등에 대해 폭 넓고 깊이 있는 의식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젊은 평론가들이 좀 더 치열하게 승부욕을 가지고 현장 참여를 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어
김경애 _ 「춤」지가 500호에 이르기까지 평론가들의 성장 과정을 보면, 초창기는 조동화 선생님이 당시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사회적인 파워가 굉장히 대단했기 때문에, 조 선생님의 힘에 의지해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무임승차한 측면이 있어요. 그 권위를 같이 누린 거죠.
그러면서 동시에 그때는 공연 평이 지금보다 양적으로 훨씬 많았어요. 그때는 「춤」지에 실어야 하는 리뷰원고가 너무 많아서 조동화 선생님께서 원고지 몇 매 이상은 쓰지 못하게 하실 정도였어요. 양질의 원고가 나오려면 양적으로도 담보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글을 참 많이 썼어요. 그런데 지금 젊은 평론가들의 문제점을 보면, 리뷰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무용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측면에서 질적인 부분은 고사하고, 글이 기본적인 양에서도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해외에서 유명무용단이 내한한 것에 대한 리뷰는 그리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미 평가된 좋은 단체의 호평 그 위주로 신문에도 평이 실리는 편이고. 그런 소개의 글을 전혀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모래 속에 묻힌 보석을 발견하는 데 매체와 평론가의 사명감이 있지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해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끄집어내는 고통을 감수해야 되는데, 그런 노력이 미약하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 춤계에서 평론의 기능이 떨어진 데에는 평론가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리뷰는 안 쓰고 사업에 관심 있어 공연기획자의 역할을 병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젊은 평론가들이 좀 더 치열하게 승부욕을 가지고 현장 참여를 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어요.
그리고 매체가 다양화되면서 인쇄매체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저는 그 점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아요. 이건희 회장이 한창 삼성을 키울 때 ‘온리원 오어 베스트원(only one or best one)’라는 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서바이벌하려면 ‘only one’이거나 ‘best one’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best one’은 될 수가 없잖아요. 우리 잡지 여건상 작은 규모의 자본을 가지고 ‘best one’이 되지 못하니까 ‘only one’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춤」지도 유니크하면 유니크 할수록 존재 이유가 생기는 거죠. 인터넷 시대에 인쇄매체가 고유성이 있으면 긍정적이지요. 만드는 사람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의 감내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지요.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모든 일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들 프린트를 별로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종이 소비량, 프린터 판매 시장이 더 커졌어요. 프린트를 더 많이 하는 시대가 됐고, 그 틈새를 공략해서 삼성이 프린트 시장을 만들었어요. 마찬가지로 온라인 시대에 인쇄 매체의 영향이 ‘only one’이면 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심정민 씨가 쓴 글은 다른 어디서 찾아볼 수 없고 어느 한곳에 있다면 찾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 글이 얼마나 가치를 가질 수 있느냐, 얼마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인 거죠. 아주 유니크한 발상이 나오고 독특한 것이 있으면 서바이벌에서 성공할 수 있어요. 물론 그렇게 하려면 무척 고독하고 수익 면에서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극복할 수 있다고 봐요. 인쇄매체의 앞날이 어둡지만 또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다른 매체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종로1가 밑의 지하 거리를 완전히 출판 거리로 만들거든요. 요즘 북 큐레이터라는 재밌는 말도 나왔어요. 북 디자이너가 아니라 북 큐레이터에요. 책을 어떻게 진열할지를 결정하는 사람이죠. 예를 들면 어떤 미용실에 주로 오는 손님들이 중산층이라고 하면 그들에 맞는 책을 수시로 바꿔서 책장에 꽂아주는 거죠. 최근 대형서점이 완전히 고급화 전략으로 독서 라운지도 만들어서 책도 읽게 하는 등 변화를 꾀했어요. 그런데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독자들이 책을 사지 않고 서점에서 다 읽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서점이는 자체사업을 홍보하는 역할로 책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문제는 거기서 사람들이 책을 읽고 그 책이 지저분해지면 출판사에 반품을 시켜요. 그런 비애에 대해 어느 출판사 사장이 쓴 칼럼을 읽은 적이 있는데, 책의 용도가 장식성을 아우르면서 많이 바뀌고 있어요.

평론가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리뷰의 양도 늘리며, 소위 아젠다를 설정해야
심정민 _ 일부 대형서점을 가보면 바로 옆에 카페를 만들어놓고 고객으로 하여금 커피 마시면서 책을 보게 하는 걸 용인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때론 테이블 위에 다 마신 커피 일회용 컵과 함께 다 읽은 책이 덩그러니 버려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출판사와 작가 등은 전혀 고려치 않은 일부 대형서점의 갑질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김경애 _ 「춤」지 500호를 기점으로 앞으로 인쇄 매체, 인쇄 문화, 종이책이 가는 방향, 용도 자체 등에서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각성할 필요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조동화 선생님이 하셨던 캠페인, 무용운동 등과 연결해서 현대 평론가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됩니다. 치열하게 현장을 기록하면 결코 SNS에 뒤처지지 않죠. 우리 젊은 평론가들이 지금 그걸 안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평론가들이 쓰는 리뷰의 양도 늘리고 현대에 꼭 필요한 춤 문화운동, 소위 아젠다를 설정해야 합니다.
심정민 _ 평론가의 진정한 역할에 대해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무용가들이 불합리한 일을 당하거나 무용계에 피해를 주는 문제들이 생겼을 때 평론가가 총대를 메고 기관이나 정부에 이야기를 해준다던가, 적어도 자문이나 심의에 들어갔을 때 어느 정도 상황 설명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반대로 무용계와 무용가가 사회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경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고요,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경우에 의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는 의식 있는 평론가들이 있지만 평론가로서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하지 않다보니까 발언 기회가 적다는 점이에요. 다른 하나는 평론가가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것에 만족을 하고 기관의 입맛에 맞추는 선에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평론가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게, 일정 수 이상 보고 정당하게 잘 쓰는 것과 무용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 모두를 포함합니다.
한편으로 일부 평론가가 신뢰를 잃는 이유가, 어떤 이슈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말하지 않고 자기 편리한 대로 곡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과 관련된 일이 잘 안 되면 문제 있다는 식으로 발언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무용가들이 적지 않은 상태에서 평론가까지 동참하는 것은 무용계와 평단을 위해 좋은 그림은 아닙니다. 지금 너무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잘 되면 된다는 식인데, 무용계가 융성해야 무용가도 잘될 수 있고 평단이 중심을 잡아야 평론가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무용계뿐 아니라 평단이 과도적인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가면 전망이 밝지 않습니다. 무용가, 평론가 개개인이 자기자리를 지키면서 무용계와 평단을 위해 개별적으로 그리고 공공적으로 노력해가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하자면, 「춤」지 500호를 맞이해서 「춤」지에게 바라는 점이 있습니다. 조동화 선생이 계셨을 때는 무용계와 평단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하나의 리더 역할을 「춤」지가 했거든요. 그런데 조동화 선생의 말년부터 돌아가신 후에는 그 역할이 많이 약해진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춤」지가 전성기의 면모를 다시 회복해서 방향 제시를 예리하게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무용계를 대변해줘야 할 때는 대변해주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날카롭게 지적해주면서 좀 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혼동과 혼란의 시기일수록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잡지나 평론가가 더 절실하게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이동우 _ 예전에는 춤평론가 회원들이 직접적으로 문화 예술계에 연관되신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되도록 많은 공연을 보고 글을 쓰고 또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용이했지만 현재 회원들 중에는 생업과 평론을 병행하고 있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그렇다면 각자의 여건에 맞는 평론가의 역할이 필요할 듯합니다.

「춤」지의 정신이 살아있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정체’가 아닌 ‘계승’일 것
김경애 _ 제가 한 마디 하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문제인데요. 저는 세계평론가회의도 참석하고 그들이 하는 학술대회도 많이 갔는데 그 자리에서 많은 외국 평론가들을 만났어요. 그들에게 어떻게 평론가가 됐냐고 물어보면, 절반 이상은 피나 바우쉬 때문에 됐다고들 해요. 피나 바우쉬 작품을 보고 평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일본 사람 중에도 그런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평론가도 글을 통해서 오피니언 리더로 무용계를 이끌어야 하지만, 그 평론가한테 영감을 주는 무용가가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지금 평론이 질척거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런 부분도 있어요. 영감을 주는 무용가들의 큰 흐름이 없는 상황이라는 거죠.
일요일 아침에 TV에서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재밌는 현상이 있어요. 거기에 도자기가 백자도 나오고 청자도 나오는데, 시대가 좋을 때 만들어진 것은 다 아름다운 색이고 모양도 좋더라고요. 시대가 안 좋을 때 만들어진 것들이 다 박색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무용계도 그동안 작품이 잘 안 나온 것을 시대의 탓으로도 돌릴 수 있어요. 그들이 살기에 지쳐서 영감을 주는 무용가라고 지칭할 만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올해 정권도 바뀌면서 무용가들도 큰 변화를 겪었고, 지원문제, 큰 스폰서가 되었던 대학문제 등 참 살기가 힘든 그런 시대를 산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어요. 평론가만의 문제도 있지만 창작욕에 불타는 무용가들을 찾기 어려운 것 그 문제도 지금 심각해요.
정기헌 _ 덧붙여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매일 똑같은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그 위에서 춤을 추는 것, 무엇인가를 펼친다는 것을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미 보아왔던 것의 기대치를 뛰어 넘는 새로운 작품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김보람을 처음 봤을 때 그런 특이한 캐릭터가 계속 나오거나 아주 깊은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설레는 작품을 만나기가 어려운 시대에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정민 _ 김경애 선생의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 진정으로 무용예술가라고 할 수 있고, 작가 정신을 갖고 있는 무용창작자가 과연 몇이나 되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역사적으로 무용평론이 활성화된 시기는 무용이 활성화된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무용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좋은 예술가들이 좋은 작품을 많이 낸다는 의미거든요. 실제로 낭만발레 시대, 발레 뤼스 활동기간, 현대무용의 성장기, 포스트모던 댄스의 생성 당시 평론가들이 대거 좋은 글들을 썼습니다.
요즘 젊은 무용가들이 무용예술의 트렌드나 지원프로그램의 방향에 따라 휩쓸려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에서 좀 초연해서 예술가다운 작가정신 혹은 고민과 탐구, 그런 것들을 담은 작품을 내는 게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이동우 _ 제 사무실에서 「춤」지 사무실인 금연재로 가려면 장충동 사거리를 꼭 거쳐야 하는데 거기에 있는 ‘태극당’ 제과점을 꼭 마주치게 돼요. 그 제과점은 1970년대 제과점 분위기를 지금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제과점을 기억하는 세대들은 향수를 느끼고 또 몰랐던 세대들은 과거를 체험하기 위해서 그곳을 찾게 되는 거죠. 옛것을 지켜나가고 또 그런 정신을 높이 사는 경우가 별로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몇 안 되는 고마운 곳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짐작하건데 그곳도 변화의 물결 속에 위기가 왜 없었겠어요. 큰 틀에서 보이지 않게 변화에 발맞추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춤」지를 사랑하시는 분들 중에는 「월간 춤」이 매너리즘에 정체돼 있는 것 아닌지 우려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춤」지의 정신이 살아있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정체’가 아닌 ‘계승’이라고 해석합니다. ‘승자는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남는 자’라는 말처럼, 「월간 춤」이 조동화 선생님께서 시작하셨던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이로서의 본분에 공감한다면, 그 정신과 가치가 ‘춤’을 몰랐던 이들에게도 재조명되리라고 봅니다.
평론이 없는 무용계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평론가에게 글을 쓸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용가들의 작품으로부터 받는 영감입니다. 앞으로도 「춤」지를 통해 상호간에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지속되길 바라겠습니다.
이번에 「춤」지 500호를 맞이해서 평론가 선생님들 모시고 좌담을 진행했는데, 좋은 말씀들 주셔서 감사드리고, 어려운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