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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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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을 멈출 때 비로소 보이는 춤
- 전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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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혁진 안무의 『완벽한 죽음』(12월8~1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전혁진의 안무작 『완벽한 죽음(Perfect Death)』는 문자 그대로 ‘죽음’을 주제로 한다. ‘완벽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반대인 ‘불완전한 죽음’이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죽음, 그래서 죽음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죽음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완벽한 죽음이란 죽음을 맞이한 인간이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명백하게 인식함을 의미하는가? 완전한 죽음과 불완전한 죽음,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앞서, 안무자는 먼저 그것을 구분한다. 그리하여 완벽한 죽음이란 철저하게 준비하는 죽음을 가리키며, 그것은 곧 ‘이상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Perfect Death’라는 영어명 타이틀의 작품은 죽음에 관한 탐구이자 진지한 성찰이다. 전혁진의 독무가 작품을 이끌고 있는데, 그의 춤은 죽음을 맞이한 인간이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전혁진 외 두 명의 남녀무용수와 첼로 연주자 한 명이 출연하지만, 작품에서 이들의 비중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크게 주목되고 중요한 것은 무대장치다. 아르코극장의 소극장 무대는 극장 입구부터 전면적으로 개조되었다. 평소 관객들이 드나들 수 없는 좁은 통로를 따라 입장한 극장의 공간은 객석을 제외하고 삼면이 새롭게 장치화되어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대립되는 질감으로 인해 ‘무와 유’, 죽어있는 것과 살아있는 것을 대비시킨다. 절반은 시멘트 재질의 콘크리트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벽이 차지하고, 나머지엔 원목 재질의 각목 같은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벽이 존재한다. 나무와 시멘트라는 생물과 무생물의 대비가 삶과 죽음을 극명하게 표현해준다.
그밖에도 살아 있는 물고기가 있는 어항 같은 투명그릇에 물을 채우거나 비우는 장치가 가동되는 기계가 무대 한쪽에 설치되어 있다. 또한 ‘시간’을 상징하는 시계는 영상으로 한쪽 벽면에 투사되어 있는데, 영상의 흔들림이 연출하는 일그러짐과 흐릿함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한 단절로 만들어준다. 이 같은 무대공간은 그 자체로 작품의 주제성을 압축하여 제시하기 때문에 한 편의 설치미술 작품으로 볼 만하다. 처음부터 좁은 긴 통로를 따라 하나의 예술작품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선 셈이다. 따라서 일찍 입장한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그 공간을 마주하면서 이미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반면 공간을 사색할 충분한 여유가 없이 공연시간에 쫓겨 입장한 관객들은 작품의 깊이감이나 이해도가 반감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시간은 죽음을 향해 흐른다. 이러한 배경에서 춤은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죽음을 준비하는 인간의 몇 가지 행위들이 춤적으로 표현된다. 추상적인 동작들은 죽음에 관한 감정을 싣지 않는다. 생을 돌이켜볼 때 교차하기 마련인 희로애락의 감정도 없고, 그저 묵묵히 삶을 정리해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여기서 춤은 말 없는 독백이나 다름없고, 60분 동안 고독한 여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전혁진과 달리 두 명의 남녀무용수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이 공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은 선에서 움직인다. 검은 복장의 그들은 드러나지 않은 존재처럼 보인다.
무대 공간은 후반 끝에 이르러 한번 바뀌는데, 새로운 공간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마치 아스팔트 도로를 걷듯, 무용수가 수직으로 세워진 왼쪽 콘크리트 벽면을 따라 수평으로 움직이고, 그 후 그 벽면이 회전하여 반대편이 드러났을 때 거기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가로로 눕혀져 있다. 잎이 하나도 없는 앙상한 나무가 무대 뒤쪽을 가득 채운다. 언뜻 수목장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무대 가운데서 춤을 추던 전혁진이 서서히 걸어가 그 나무의 뿌리처럼 나무와 한 몸이 되어 수평으로 몸을 뉘였을 때 비로소 작품은 완성이 된다.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어떤 미동도 없이 한동안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한 장의 예술사진처럼 깊은 인상을 남긴다. 마침내 ‘퍼펙트 데스’에 이른, 그 고요한 순간은 침묵이자 정지다. 춤에서 움직임의 의미는 그것이 멈췄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는 말이 실감나는 장면이다. 그것은 이 작품의 전부나 다름없을 정도로 의미심장한 종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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