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산책
|
좋은 사람 만나기 (2)
- 어떤 사람과 어울리며 살 것인가
|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erimee, 1803~1870)의 소설 「카르멘」(1845)은 순진한 한 인간이 선을 포기하고 악을 택하는 과정 그리고 그 파국을 추적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순진한 여자가 남자를 잘못 만나 일생을 망치는 이야기는 많지만 그 반대의 상황인 「카르멘」은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은 상대방이 자신보다 영향력이 강한 사람에게 쉽게 물들 수 있으며 주로 선(善) 보다는 악(惡)에 물들기가 더 쉽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무엇보다 - 어디까지 반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이 자유의지와 운명 중 어느 것일지 인류학적인 고찰까지 이르게 만들기 때문에 그 여느 허구 문학소설보다 설득력이 더욱 크다. 순진한 군인 돈 호세 리자라벵고아가, 육감적인 매력으로 포장된 자기중심적이고 사람을 기만하며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집시 카르멘과 엮이면서 겪게 되는 인생의 역경이 드라마로서 필요한 모든 필수 요건을 갖추게 되면서 일개 병사이었던 돈 호세와 집시 중 하나였던 카르멘의 이름을 전 세계가 기억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으로 봐서는 그들은 엮이지 말았어야 했다. 설령 어쩔 수 없이 엮였더라도 그 여자와의 관계를 끊고 살았어야 그의 삶은 아마도 소시민으로 평안히 살다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둘은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만남이었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인생에서 늘 착한 사람들만 만날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어디까지 선을 지켜야 하는지는 자신에게 있는 자유의지를 토대로 운명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돈 호세가 카르멘에게 반비례하는 성격의 결혼할 처자가 있었으나 굳이 카르멘에게 집착한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 바탕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이 자신보다 강하다 싶은 사람에게 잘 휘둘릴 수 있는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메리메의 「카르멘」은 치정극으로나 통속 오페라로 더욱 인기가 있어 그 진가가 한참 가려져있다고 할 수 있지만, 남녀의 관계를 빼놓고 그 본질로만 보자면 초반에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우악스러움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부드러움에 비해 사람의 마음을 잘 홀릴 수 있는 악의 본질을 잘 꼬집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가치관은 주로 어릴 때부터 형성되는데, 교육과 천성이 합쳐진 결과로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바라는 그리고 바라보는 그럴 듯한 인간상’은 위인전집에 나오는 사람처럼 정치적으로 성공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카리스마로 많은 사람들에게 군림하거나 영향을 주는 인물이라 꼽을 것이다. 겸손과 온유함과는 거리가 먼 쇼맨십이 큰 그럴듯한 인간과 인간성이 더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을 이상형으로 혹은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카르멘」의 돈 호세처럼 자신의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의 이상형에 따라 우리가 사는 사회 그리고 나라의 운명도 정해지는 것은 불 보듯 빤한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많아도 부도덕할 경우 그 나라가 얼마나 황폐해지는지 가르쳐주고 있으며, 「투란도트」 역시 무능하고 얼음장 같은 마음을 가진 지도자가 실세가 되어 온 나라를 전횡하게 될 때 백성들의 심성 역시 그 지도자와 닮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니시나카 쓰토무는 일본 오사카에 사는 75세의 변호사다.
50여 년 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접한 만 명 이상 의뢰인의 삶을 지켜본 그는 확실히 운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으며, 운을 부르거나 쫓는 비결이 분명히 있음을 깨닫고 ‘운의 이치’라는 공식을 정립하여 발표했다1).
그가 정의 한 운(運)이란, 다소 일본식 표현으로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이라며. 여기에는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했다. 변호사라면 억울한 의뢰인들을 신원시키는 정의로운 직업이지만, 마음을 잘못 먹으면 소송을 해야만 이익을 보기 때문에 ‘하늘의 귀여움을 받지 못할만한 일을 꾸밀 수도 있는’ 양날을 가진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니시나카 변호사는 자신의 일을 통해 최대한 소송을 막으려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운이 좋던 나쁘던 사람에게는 결과적으로 운이 좋은 사람, 선행을 했는데도 불행이 닥치는 사람 그리고 운이 나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운이 좋은 사람과 운이 나쁜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덕(德)’이라는 것이다.
덕이란, “가능한 다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란다. 운이 좋은 사람의 행동이 이러하다면 반대로 운이 나쁜 사람은 자연히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다툼과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그의 말처럼 ‘불운을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덧붙여, 선행을 해도 운이 잘 트이지 않는 사람은 마음속에 자신이 선행을 하고 있다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타인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운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의뢰인을 만나보면 100% 교만 때문임을 발견하기 때문에 겸손을 잊으면 봉사도 수포가 되어버린다.
한편, 후덕한 성품의 소유자 일지라도 큰 불행이 닥쳐올 순간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 정해진 운명 속에서 겪어야 할 굴곡을 운이 좋은 사람은 덕이 있게 해석하고 풀어나가는 것이 운이 나쁜 사람과 다르다고 했다.
운을 부르는 어떤 특별한 비법이 있는지 싶어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읽은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에 대한 기사는, 하지만 결국 우리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덕을 쌓아라’, ‘지덕체’, ‘항상 감사하라’,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마음이 고우면 얼굴도 곱다’ 등과 같은, 너무 많이 들어서 별 감흥이 없는 평범해진 문구들이다. 그런데 운을 부르는 방법은 이렇듯 평범한 진리이지만, 사람에 따라선 어렵거나 쉬울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변호사처럼 분쟁과 사건 속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오랜 세월 관찰하며 발견해낸 틀림없는 공식이라는데 지금 혹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도 역습을 당해 억울한 심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평범한 진리의 증거는 위로와 격려가 될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여러모로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분노가 가득했다. 그때 아버지의 친구 분 중 한 분을 뵙고 근황을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나의 말을 끝까지 들으신 그분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시는 대신, 옅은 미소를 띠시며 “마음에 따뜻함을 잃었다”시며 당신이 읽고 계시던 책을 선물로 주시고 “다시 따뜻한 마음을 되찾으라” 격려하셨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성경 한 구절을 문자로 보내주고 계신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대가족 공동체에서 핵가족 시대를 살게 됐다. 그러나 세계적 경기침체와 장기 불황, 결혼과 출산 감소, 부패한 정부에 대한 불신 등은 사람들의 마음을 메말라가게 하고 인간의 따뜻함도 쉬이 잃어버리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라인 쇼핑과 가상화폐 등과 같은 새로운 유통의 변화는 인간의 삶을 어떤 식으로 바꾸어 놓을지는 모르겠지만, 멀리 내다보면 혈연이 아닌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할 시대가 올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어른이 필요한 오늘날인데, 이러한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줄 어른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이다.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의 발견은 너무나 당연해서 허무할 수 있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하고 불신의 세상에서 그나마 평안하고 보람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며 그 좋은 사람은 기다린다고 해서 눈앞에 나타날 확률이 극히 적다. 필사적으로 찾아야만 한다. 그렇다고 찾는다고 바로 나타나는 것 또한 아니다.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그 시간은 나 자신에게 달렸다.
언젠가 가수 이효리가 자신의 동료에게 “좋은 사람을 찾으려고 하기보다 나를 좋은 사람으로 바꾸려고 하니까 좋은 사람이 오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참 마음에 와 닿는 말이다. 이효리의 이 한 마디의 말은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의 50여 년을 통해 발견한 운의 이치의 주장과 별 다를 바 없다. 좋은 사람이야 말로 하늘이 허락한 최고의 선물이자 나의 큰 자산이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듯 내가 자주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냐를 비추어보면 나 자신이 보인다.
올해는 무술년, 황금 개띠이다. 많은 사람들이 ‘황금‘의 기운을 받고 운수대통하기 위해 미래를 점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복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미래를 들여다 본 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복 있는 사람인지, 박복한 사람인지를 알아보려면 점성술사를 만나기보다 현재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는 묵상부터 먼저 해보아야 할 것이다. 따뜻하고 넉넉한 그 마음들과 어울리며 감사하며 닮아가며 지금보다 더 가까이 하며 살고 싶다.
ㅡㅡㅡㅡ
1)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도덕적 과실 깨달아야 운(運) 트인다” 참조, 조선일보, 2017. 11. 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