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관무기

* 「올해의 작가상」 vs 「올해의 신작」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17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하고 있다. 1년 전 4명의 후원작가를 선발하여, 개인당 4천만 원을 지원해 작품을 만들어 연말에 같이 전시하고 그중 한 명을 「올해의 작가상(Korea Artist Prize)」에 선정하는 방식이다. 안내문에는 12월 중 선정 발표라고 되어 있었으나 방문했던 1월초에도 수상자는 선정 되지 않았다. 직원에게 문의 해 보았더니, ‘심사가 늦어져서’라는 답이 돌아왔다(1월말에 선정되었다). 4명의 후보작은 한국현대미술의 경향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었는데, 회화+설치 한 작품, 설치 두 작품, 영상 한 작품 이었다. 누가 수상자인지 궁금했던 나는 심사가 늦어진다는 말에 호기심이 더 커졌다. 한 표가 있다면 누구에게 던질 것인가. 그러나 눈이 커지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작품은 없다. 내 방에 몰래 감추어 두고 싶은 것도 없다. 이렇게 되면 심사 과정에서 유행, 추세, 경향성, 배분, 시대성 등등의 단어가 등장할 것 같은 걱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선정 지원하는 「2017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공연이 여러 무대에서 펼쳐졌다. 무용 부문은 총 8개의 작품이 발표되었고 나는 네 작품을 보았다. 윗 단락 글에서 「미술 쭻 춤」, 「전시 쭻 발표」로 바꾸면 분위기는 거의 흡사하다. 네 작품은 한국 현대춤의 경향성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어서 설치, 구조물, 소품, 연기 등이 강조되고 전체 무대의 조형미에 관심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눈이 커지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작품은 없다. 심사를 한다면 유행, 추세, 경향성, 배분, 시대성 등등의 단어가 등장할 것 같은 걱정.
그러나 이제 미술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미술관이라는 틀 안에서 수용되지 않는 건 없는 듯. 건축과 영상을 꼴깍했고(2017 올해의작가상 선정작도 영상작품이다) 이젠 심심치 않게 무용수들을 미술관으로 불러들인다. 춤도 미술관의 흡입력에 끌려들어가 조연배우가 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림과 설치작품 사이에서 마음대로 춤출 수 있게 한다면, 혹은 처음부터 춤, 영상, 설치 등을 혼합해서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든다면, 그래서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곳으로 폭발한다면 솔깃하지 않을 무용수가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건 공간 제공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창작이 몸중심 사고가 아니라 공간중심 사고를 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게 바른방향 일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결합 반댈세!’ 반대라면? 춤공연장에 미술, 영상, 건축, 노래를 불러들여 무용이 ‘모든 예술의 엄마’ 임을 선포해야 할까.
그렇지! 지금, 모든 예술이 그 옛날 분리되기 전의 통합체적인 것으로 복귀하는 듯 움직이는 시점에서 이건 중요한 문제. 과연 누군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면 그 역할은 춤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고 인간의 몸이기 때문. 현재 추세대로 미술관이 중심이 되어 무용을 수용한다면 인간을 구조물과 기술속에서 부분으로 잘게 쪼개어 기계적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인간의 몸을 바로 보지 않고 모니터나 레이저 파장으로 체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신기술에 집어넣어 재해석 하려는 시도는 지속적이었다. 그래서 이것들을 춤공연으로 가지고 와서 몸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하루키와 저승사자
하루키도 이제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여름 시끌법석하게 발간된 「기사단장 죽이기」를 책장속에 묻어 놓았다가 이제 100쪽을 보았다. 헌데, 도입부의 스타일도, 캐릭터 설정도, 추리소설같은 기법도, 수수께끼 퍼즐같은 조각들도, 지금까지 많이 보여준 것들이다. 새로운 게 보이지 않는다. 전성기가 지났다는 느낌. 그의 최고작은 「해변의 카프카」 란 생각. 그 앞은 오르막길, 그 뒤는 내리막길. 「1Q84」은 「카프카」의 아래, 이번 책은 더 아래. 다음번 책을 보면 확연해질 것이다. 상권의 100쪽까지 보고 무슨 말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100쪽만 봤을 때 할 수 있는 말도 있는 법이다. 노벨문학상을 노린 거라고 수다들을 떨었지만 글쎄! 작가에게 문체란 건 화가의 붓질, 무용수의 춤사위라 할만해서 이게 자신 있는 사람들은 다른 것이 필요치 않은 법. 읽다보면 내용이 재밌는 게 아니라 문장을 즐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붓질도 마찬가지, 그 자체의 섬세함과 호쾌함이 즐거운 거다. 그러나 미술 「올해의 작가상」과 무용 「올해의 신작」 보면서 붓질과 춤사위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설마 기본적인 것에 자신이 없어서 다른 것들을 소환한 것은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영화 「신과 함께」를 보았다. 전형적인 눈물 짜는 신파 아니냐며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이건 전형적이며 전통적인 스토리 텔링. 관객수 120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인의 심성, 가치관에 딱 맞는다는 얘기. 지난해 인기절정 드라마 「도깨비」, 지금 방영중인 「흑기사」까지 동일선상의 세계관을 보인다. 작품에서 말하는 건 권선징악, 사후세계, 저승사자, 심판, 윤회, 인연, 운명, 가족애 등등 어린 시절 읽었던 전래동화집 그것 그대로!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년이 넘고 대략 전인구의 30%가 기독교신자, 20% 불교신자, 50%가 무교인 나라에서 이런 가치관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일회성이 아니고 꾸준히 관련 콘텐츠가 인기가 있는 건 한국인이 전통적 세계관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
‘이번 생은 망했나봐’ ‘다음 생을 기약해’라며 아이들이 말장난 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이 느끼는 현실에 대한 무력감을 감지하면서 동시에 저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주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소련에서 19세기 스타일의 로맨스소설이 계속 인기를 끌자, 한 유럽의 평론가는 얘기했다. ‘러시아에 공산혁명 따위는 일어난 적 없다’ 그렇다면 조선에는 과연 근대화가 이루어 진걸까. 일란성 쌍둥이인 북한은 3대 세습에 성공한 왕조국가, 남한이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우리도 구체제 하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것들을 다른 말로 기득권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대형화재와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가 내용은 바뀐 게 없이 민주주의란 껍데기만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창작산실에서 본 『물속 골리앗』과 『가족놀이』는 이 상황에 처한 개인의 이야기. 개인은 나를 옥죄는 것에 고통을 느끼지만 결국 나 역시 그것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다. 답답함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작품을 비롯해서 미술 「올해의 작가상」과 무용 「올해의 신작」 제출작들에게서 이상하게 리포트 냄새가 난다는 거다. 진짜 하고 싶어 못살 것 같은 애기들을 털어 놓은 것이 아니라 기한에 맞춰 숙제 제출한 것 같은 얌전함이 느껴지는 거다. 깔아논 무대에서 하고 싶었던 거 한번 제대로 했다는 느낌, 또는 시퍼렇게 날 세운 느낌이 아니라 얌전하게 평가 받기 위해 숙제 제출하는 분위기. 숙제에는 정답이 있는 법. 이들은 정답을 제출한 것인가. 이 밋밋함의 정체는 정답이었나.

* 마크롱과 카나리아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의 사랑 얘기를 다룬 신간 「마크롱의 기적같은 사랑」을 보았다. 프랑스대통령들은 지금까지 여러 파격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그중 마크롱은 압권! 한국이라면 매우 지탄을 받을만한 사랑을 이뤄내고 그 위에서 사회적 성공까지 만들어낸다. 개인의 성공사일 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의 넓은 포용력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책이 잘 팔릴 것 같지는 않다. 나도 사지는 않고 서서 호로록 보고 말았으니. 한참 전 사르코지 대통령과 카를라 부르니의 사랑이야기를 출간했다가 거의 몽땅 재고를 떠안았던 나는 이 책의 운명을 알고 있다. 사실 이건 우리사회에서 불온서적에 가깝다. 16세 소년이 40세 유부녀 선생님과 사랑에 빠지고 전학을 가며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선생님은 나에게서 떠나지 못해요. 난 꼭 돌아와서 당신과 결혼할겁니다’ 이 말을 믿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 여선생은 이혼을 하고 성인이 된 마크롱과 결혼하는 것이다. 난감하다! 사랑이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롭게 발견 되어 온 것일 뿐만이 아니라 프랑스 인들은 사랑을 때때마다 새롭게 발명해 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선상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나도 당했다(me too)’며 사회적으로 힘을 가진 남성들에 의한 성추행을 적극 비난하는 입장에 대해 프랑스에서는 다른 시각도 존재하는 듯하다. 배우와 작가 등 100명이 서명한 르몽드 기고에서 “우리는 성폭력과 적절하지 않은 유혹을 구분할 만큼 현명하다”며 “성적 자유에 필수불가결한 유혹의 자유를 옹호한다”고 애기하는 거다. 물론 그러고 나서 여러 곳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지만, 문제는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사회라는 사실. 서명자 명단에 카트린 밀레가 눈에 띈다. 십여 년 전 번역 출간된 「카트린 M의 성생활」을 쓴 미술평론가 그분 말이다. 너무 솔직하고 담담하고 직설적이었던 사생활의 고백은 오히려 너무 심심해서 그 심심함으로 눈앞에 걸려있던 뿌연 환상을 걷어버리는데 적격이었다. 이분이 미투를 외친다면 오천 번은 외쳐야 할지도! 프랑스인들은 왕과 왕비를 단두대로 보내는 혁명도, 마크롱의 사랑도, 카트린의 섹스도 발명했다. 굉장하다.
그러나 아직 19세기 전통사회 같은 한국에서 우리 예술가들은 어렵다. 분투하길 바란다. 그러나 다 알 듯이 사정은 녹록치 않다. 그러나 또 모두 다 잘 알듯이 예술가들에게 살만한 세상이란 것은 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다. 예술가란 잠수함 속의 카나리아 같은 것이니까. 산소가 부족하면 울어야 하는 것이다. 얌전하게 있지 않고! 아님 예술을 하지 말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