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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평
I. 2017년 무용계 결산과 고려해야 할 사항
■ 한국무용협회의 쇄신과 과제
2017년은 탄핵과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국가적인 큰 변화와 함께 무용계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양상이 전개되는 한편 여러 문제의식이 대두되었다. 2017년 시작과 함께 가장 큰 변화는 12년 만에 한국무용협회의 이사장이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조남규 이사장은 한국무용협회의 쇄신을 출사표로 하여 이를 최우선시하는 목표를 실제화하였다. 젊은 기획공연이나 각종 콩쿠르를 비롯하여 굵직한 행사로서 서울무용제, 전국무용제, 대한민국무용대상을 통해 심의 공정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 이는 폭넓은 심사위원 구성, 즉각적인 점수 합산, 심사위원별 점수 공개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서울무용제나 대한민국무용대상의 경우 예년에 비해 출품작의 수준이 월등히 좋아졌다고는 할 수 없으나 동시대적인 춤 추세에 반발자국 정도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을 내비쳤다. 특히나 그 동안 한국무용협회의 사업에서 소외된 경향이 있었던 허리세대 독립무용가들을 다수 아울렀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는 허리세대 독립무용가들을 한국무용협회 운영진으로 다수 불러들이면서 뿐 아니라 그들이 주축이 된 각 장르 협동조합을 서울무용제 사전행사로 초청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한국무용협회가 신뢰 회복을 통해 권위와 위상을 높여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쇄신의 노력이 중장기적으로, 정확히는 임기 말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내용적인 면에서 발전적으로 보완해갈 필요가 있는 사항은 없는지 진단해 봐야 한다. 이를테면 종합적인 창작력을 가늠하는 심의에서 순간적으로 점수를 주는 방식이 적합한지 여부를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무용대상의 경우 본선에서는 10분 정도, 결선에서는 30분 정도의 실연을 보고 즉각적으로 채점하도록 하였는데 사실상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작품 자체의 예술적 가치나 완성도 혹은 혁신성을 제대로 심의하기란 쉽지 않다. 첫 눈에 보기 좋은 작품도 있지만 곱씹을수록 깊이가 우러나오는 작품도 있기 마련이다.
■예술관련 공공 지원기관이 짚어 봐야 할 문제
예술관련 공공 지원기관의 독립성과 자율권이 약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든, 서울문화재단이든, 예술경영지원센터든 간에 무용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공공 지원기관을 살펴보면, 윗선의 정책기조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가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최근 몇 년간은 정책기조가 너무 늦게 하달되다보니 모든 일정이 조금씩 미뤄지고 미뤄져서는 현장에서는 상당수의 공연이 하반기에 몰리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2017년의 경우 11월의 공연수가 어느 해 이상을 많은 인상이었고 그 여파는 12월로까지 이어졌다. 윗선에서 예술관련 공공 지원기관에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기본적인 관리 및 감독을 하는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공공 지원기관 자체 내에서도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직원의 대부분은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소수는 위에서 하달되는 지시 사항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든가, 아니면 불필요할 정도로 위쪽의 기분을 맞추려고 한다. 소수의 그릇된 행동이 결국 공공 지원기관의 전체 분위기를 훼손시킬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해당 기관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낳을 수 있으므로 지양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관련 공공 지원사업에서 심사위원을 구성할 때 ‘지나친’ 코드 인사는 지양해야 한다. 어느 기관이든 코드 인사는 일정 부분 어쩔 수 없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지나칠 경우다. 또한 지원프로그램을 짜는 단계부터 입맛에 맞는 일부의 의견을 일반화하여 짜다보니 불필요한 지원사업은 확대되고 정작 필요한 지원사업은 축소되는 경우가 있다. 예술관련 공공 지원사업은 그것에 관여하는 일부의 기호가 아닌 예술과 예술가에게 혜택이 가는 쪽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원사업을 통해 훌륭한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부각된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성과인 것이다.
■국립무용센터 건립에 대한 요구 공론화
2017년 11월11일 코리아댄스커넥션 국제포럼을 통해 국립무용센터 건립에 대한 요구가 다시 한 번 공론화되었다. 그 포럼을 통해 어떤 구체적인 논의가 오가지는 않았으나 무용계와 그 주변에 국립무용센터 건립이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를 계기로 국립무용센터 설립의 필요성을 논의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창작적인 면에서 무용가의 다채로운 성장을 이끌 수 있다. 한국의 무용창작에 있어서 대학 무용과와 그 동문무용단의 활약은 상당하다. 한편으로 이러한 대학 무용과와 동문무용단은 일련의 계파를 형성하여 자기네들끼리의 전문용어로 소통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무용계 창작에 구조적인 문제점을 양산하였다. 젊은 창작자라면 자기만의 고유한 창작적 방향성과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데 사실상 대학 무용과나 동문무용단을 통해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국립무용센터는 보다 넓게 열린 프로그램으로써 무용가 각각이 자기만의 창작적 방향성과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안정적인 작품 제작 및 유통 그리고 전 방위적인 홍보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무용계 현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국내의 무용가들은 대부분 순수 창작활동 이외에 작품 제작 및 유통 그리고 홍보 마케팅 등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다. 재정적인 지원이 열악한 상태에서 과도한 책임만 주어진 무용가들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이는 개별 무용가를 넘어 무용계 전체 현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무용가와 관련자 그리고 일반인을 위해 문화예술교육을 다채롭게 실시하여 무용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주도적인 춤 경향인 컨템포러리댄스는 무용과 타 분야 간 융복합을 두드러진 특질로 가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무용과 타 분야의 예술가들이 서로의 전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흡착력이 떨어지는 융복합 작품을 생산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국립무용센터에서는 양자 간 전문 교육은 심층적으로 전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일반인들을 위해서는 무용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역사, 감상, 체험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잠재적 무용 관객, 애호가, 심지어 관계자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밖에도 연구 및 출판을 통해 무용관련 이론에 대한 스탠다드(표준이나 기준)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좀 더 멀리까지 바라본다면 무용가를 위한 직업창출을 도모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 국·시립무용단체 진단
우선 국립무용단은 하반기 들어 극장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다소 혼돈이나 정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무용계에서는 특히 중견 이상 원로를 중심으로 동시대적인 창작 경향에 대해 비판을 목소리를 거세게 내면서 기존의 창작 형태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동시대적인 창작 경향을 한국무용가보다는 국내외 현대무용가, 의상디자이너, 작곡가 등 다른 장르와 분야의 예술가들을 통해 실현했던 것에 대한 반발일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다시 시대적 흐름을 거슬러 갈 수는 없는 만큼 동시대적인 창작을 할 수 있는 한국무용가를 발굴, 양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국립발레단의 강수진 예술감독은 무용에 전혀 관심이 없고 발레를 본 적이 없는 일반인조차 알고 있는 유명인이다. 국민 발레리나가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을 맡아 발레를 좀 더 널리 알리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어느 정도 티켓 파워도 발휘하리라 본다. 다만 단체 운영능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레퍼토리 선별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국내 모든 무용단체 중에서 가장 많은 공적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에 맞게 월등히 뛰어난 작품을 선보이고 있지는 못한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안성수를 맞이한 후 얻은 성과라면 김설진, 박순호, 김용걸, 김보람 등 외부 창작자를 초빙한 기획공연들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물론 주요 레퍼토리 공연으로는 전임자인 홍승엽, 안애순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들을 올리고 있다.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현대무용계와의 소통에 소극적이지 않느냐는 문제제기가 있는 만큼 대외적인 교류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서울시무용단은 예술감독이 꽤 오래도록 공석인 상태다. 2000년대 이후 서울시무용단은 침체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국립무용단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창작적 혁신으로는 더 인정받았단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되어버렸다. 조속히 체제를 정비하여 쇄신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 역량과 운영능력을 고루 갖춘 수장부터 빨리 뽑아야 할 것이다.
■ 허리세대 무용가들의 귀환
우리나라 무용계에서 허리세대라 함은 30대 말부터 50대 전반까지 어느 정도 창작력과 실행력이 검증된 무용가들을 말한다. 100세 시대로 들어섬에 따라 기존 원로들의 수가 축적되어가면서 허리세대 무용가들의 나이 분포 역시 넓어지는 추세다. 이러한 허리세대는 그 명칭에 걸맞게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무용계의 현장을 실제적으로 리드해가야 함에도, 꽤 여러 해 동안 원로와 신진들 사이에서 설자리를 잃은 낀 세대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허리세대야말로 이미 예술적 평가 작업이 끝난 원로들에 비해 동시대적인 창작을 이끌어갈 수 있으며, 경쟁을 통해 성장해가야 하는 신진들에 비해 검증과정을 거쳐 추려진 이들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높다. 허리세대가 무용계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2016년 말에 창작산실과 국립현대무용단을 통해 밝넝쿨, 박순호, 안영준 등이 한층 성숙된 작품을 내놓음으로써 허리세대의 귀환을 예고한바 있었다. 그리고 2017년 들어서는 오랜만에 중심 역할을 제대로 해나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는 아르코예술극장이나 대학로예술극장 같은 주요 극장들이 허리세대에게 대관 기회를 대폭 확대하였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의 주요 지원프로그램에서도 허리세대에게 지원의 지분을 높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2017년을 허리세대의 화려한 귀환이 두드러진 해로 만든 이들로는 (가나다순으로) 김남진, 김설진, 김성한. 김용걸, 김윤수, 노정식, 박순호, 밝넝쿨, 안영준, 예효승, 이인수, 정석순, 정현진, 정형일, 차진엽, 최명현, 홍은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허리세대 무용가들은 제각각 다른,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다양한 예술적 스타일을 추구함으로써 무용계의 창작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물론 허리세대라고 다 성공적인 활동을 펼친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예술적 순수성을 잃어버리고는, 일종의 직책을 의식한 실적 쌓기용(用) 공연을 펼치는 이도 있었고 여러 부수적인 지원프로그램의 혜택을 받는 것에 만족하는 이도 있었다. 예술 현장은 치열하고 냉정하기 때문에 예전에 아무리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하더라도 창작적 집중력을 잃은 무용가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스스로 창작자로서 오래도록 새겨지고 싶다면 어디에 서있는지,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해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 발레에 이어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의 협동조합 조직
발레STP협동조합(초대이사장 김인희)이 2014년 창립되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에 힘입어, 2017년에 현대무용협동조합 COOP_CODA(초대이사장 김성한)와 한국무용협동조합 춤에든(초대이사장 김종덕)이 차례로 조직되었다. 이제 세 장르 모두에서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관계로 무용계에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협동조합들은 무용단체의 전문화, 프로그램 다양화, 대중적 수용력, 재원 다각화를 골자로 세부적인 활동 방향을 확립하도록 노력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중장기적인 플랜과 맵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하며, 각 무용 장르의 대중화와 독립 창작자의 활로모색 그리고 무용계 현장의 발전을 위해 추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무용계에 난립하다시피 하는 이익단체들 중의 하나로 변질되기 보다는 안정된 무용 생태계를 구축을 위해 힘을 모은다는 최초의 취지를 유지해 나가야할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협동조합은 이미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발레 협동조합과는 다른 장르로서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다는 것이다. 개별적이고 다양한 창작력을 중요시하는 현대무용이나 한국무용의 특성상 아무래도 발레에 비해 대중적 수용력, 레퍼토리 확보율, 단체 운영능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장르 특성으로 인한 난제를 극복해가는 과정에 후발 주자인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협동조합의 성패가 달려 있다.
■ 젊은 무용가들을 위한 풍부한 지원과 그 이면
2010년대 들어 일종의 틀을 짜놓고 거기에 맞추라는 식의 기획적인 지원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창작자가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 창작의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에는 오리지널리티라 하여 독창성이 매우 중요시된다. 이는 남과는 다른 나만의 예술적 고유성을 말한다. 훌륭한 무용가라면 예외 없이 이러한 고유성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지원프로그램 역시 각각의 창작자가 자기만의 창작을 펼칠 수 있도록 뒤받쳐줘야지 이런, 저런 식으로 하라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와 같은 지원프로그램은 아무래도 아직 창작의 근간이 약하고 그러다보니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는 젊은 무용가들에게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근래 들어 젊은 무용가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지원 혜택을 풍부하게 받으면서도 정작 주목할 만한 예술성을 펼치지는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젊은 무용가들 측에서도 진정으로 창작자로서 성장해가려 한다면 어떤 추세에 휩쓸리기보다 자기만의 사유와 탐구를 통해 예술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 침체일로의 지역 무용계를 위한 대안 모색
현재 우리나라 무용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울과 지역 간 활동의 격차가 심하다는 것이다. 서울과 지역 간의 춤 활동의 격차는 오래 전부터 대두되었던 문제였으나 2000년대 초부터 불어 닥친 대학 구조조정은 이에 불을 지른 격이 되었다. 대학 무용학과가 없어진다는 것은 무용전공생들의 진로를 원천 차단하는 셈이 되며 이는 곧 해당 지역 무용계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무용학과가 없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 무용계의 활로는 그 지역을 대표할만한 무용단, 페스티벌, 경연대회 등에서 찾아야 한다. 국립, 시립, 도립과 함께 상주단체 같은 무용단들이 기본적인 공연사업이외에 해당 지역의 무용계를 아우르며 상생의 힘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는 페스티벌이나 경연대회를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전국무용제처럼 전국 규모의 행사를 통해 매해 유치 지역의 활로모색을 도모하는 방안도 모색되어야겠다. 이를 위해서는 행사를 관리·감독하는 한국무용협회뿐 아니라 각 지역 무용계 또한 쇄신과 발전에 대한 뚜렷한 의식과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한편, 서울에서도 지역 무용계의 침체는 곧 우리나라 무용계 전체의 침체로 이어진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울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의 상당수 혹은 대다수가 지역 출신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II. 2017년 주목할 만한 공연
■ 무용과 음악과 무대미술의 총체성이 돋보인 대작, 최성옥의 『카르미나 부라나』
대전을 넘어 충청 지역의 현대무용을 이끌고 있는 메타댄스프로젝트의 수장 최성옥이 그동안의 묵묵한 노력의 결실을 거두었다. 2015년 대전예술의전당의 의뢰를 받아 만든 『방랑의 노래』를 이번에 한층 스케일을 키우고 완성도를 높인 대작 『카르미나 부라나』로 선보인 것이다. 최성옥이 안무 및 연출을 맡은 『카르미나 부라나』는 4월14-15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공연되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무용, 음악, 무대미술이 서로 질 수 없는 경주를 하면서도 서로 합일된 힘을 발휘하는 작품이다. 우선 각각의 분야가 독립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탄탄하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주제, 이를테면 카르미나 부라나로 상징되는 운명의 바퀴 위에 놓인 인간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는데 있어 여러 분야가 한데 어우러져 합일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 스타일은 종합예술(composite arts)로 설명될 수 있다.
종합예술 스타일에서는 한 분야라도 상대적으로 약하게 구성되거나 여러 분야가 주제 표현의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위험부담이 있다. 다른 한편 각각 독립된 가치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협업을 이루어낸다면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곳곳에 산재한 위험부담을 딛고 무용과 음악과 무대미술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한편의 스펙타클한 대작으로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최성옥의 대표작으로 명명될 수 있는 작품이다.
■ 비워낸 마음만큼 채워진 작품, 전미숙의 『바우(Bow)』
9월 9-10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는 『바우』의 풀버전이 발표되었다. 『바우』의 전반부는 bow 즉 인사에 대한 갖가지 이미지들이 인상적으로 나열된다. 큰절, 반절, 선절, 목례, 악수 같은 여러 가지 인사 방법들과 함께 그 의미와 목적에 대한 고찰이 짙게 묻어나오는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존경의 마음을 담은 인사, 서열을 상징하는 인사. 예의를 표하는 인사. 복종을 나타내는 인사, 반가움을 전하는 인사, 비즈니스 관계에서의 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이윽고 인사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형태 또는 반사적이고 습관적인 형태로 변모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서로를 재는 듯한 미묘한 경쟁심을 담아낸 가식적인 인사 또한 제시된다. 이러한 주제 이미지를 단순한 제스처가 아닌 중의적 메시지를 담은 춤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전반부의 전개는 두드러진다. 여기에 안무적인 면에서 짜임새와 움직임이 유려한데다가 미니멀한 감각의 의상, 조명, 장치가 이러한 춤에 시각적인 세련미까지 더하고 있다.
『바우』의 가장 큰 조력자는 아무래도 전미숙의 제자들이다. 김보라는 무브먼트리서치를 넘어 실제적인 안무 구성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김재덕은 동양적 내음과 현대적인 감각을 머무른 음악으로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총 10명에 달하는 무용수들은 각자의 역량과 개성을 드러내는데 몰두하기보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이미지에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흡수되는 춤을 추었다는 점에서 한 단계 높은 성장을 이루어냈다.
전미숙은 『바우』에 대해 마음을 비워내고 만들었다고 하는데 비워낸 마음만큼 채워진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욕심의 마지막 자락이 묻어나왔던 작품의 끝부분과 무대인사 마저 비워낼 수 있다면, 그럼으로써 사유의 여지와 감흥의 여운을 행위자가 아닌 관객을 몫으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작품 완성도를 확립할 수 있으리라 본다.
■ 제대로된 장소특정형 공연, 차진엽과 대런 존스톤의 『미인:MIIN』
차진엽과 대런 존스톤의 『미인:MIIN』은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가량 문화비축기지라는 새로운 문화공간에서 펼쳐졌다. 그녀들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여러 층위의 시각을 반영한 두 작품 『Body to Body』와 『Plasticity』를 인접한 다른 공간에서 각각 두 차례 반복 공연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교차 관람하도록 이끌었다.
차진엽은 『Body to Body』를 통해 문화비축기지 T2라는 독특한 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켜 놓았다. 유리로 쌓인 거대한 원통형 공간을 무대장치와 소품, 조명, 영상, 사운드, 의상 등을 활용하여 장면마다 다른 분위기로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면밀한 탐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정서적이나 본능적이기도 하며, 대립적이거나 조화롭기도 하며, 인공적이거나 자연친화적이기도 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인접한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서, 안무가이자 사운드&비주얼아티스트인 대런 존스턴의 『Plasticity』를 감상할 수 있었다. 어두운 메탈 느낌의 쇼윈도 안에 여성을 마네킹이나 기계인형처럼 분장시켜 움직이게 함으로써 규격화된 미와 그것의 상업화에 대해 예리하게 고발한다. 여성 행위자는 시각적인 쾌를 줄 정도로 아름다운 선형을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성이 결여된 차가운 존재로 그려지며 때론 그 차가운 질감에 섬뜩해지기까지 한다. 차진엽의 작품과 하나의 주제로 어우러지면서도 다른 개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양자 간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다.
그동안 국내의 젊은 무용가들 사이에서 장소특정형 공연이 자주 시도되어 왔으나 차진엽과 대런 존스턴의 『미인:MIIN』이야말로 장소와 밀접하게 어우러진 진정한 의미의 장소특정형 공연이 아닌가 한다.
■ 그 동안의 예술적 탐구가 결실을 얻은 정현진의 『언더스탠드(Understand)』
10월 14~15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SPAF 2017의 일한으로 공연된 정현진의 『언더스탠드(Understand)』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문제와 그 해결을 ‘이해’라는 주제로 풀어간다. 이에 대한 뚜렷한 표현보다는 정현진이 항상 추구해온 데로 움직임 구성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제일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바닥에 입구, 거실, 방, 테라스 등의 집 도면을 테이핑 해놓은 노보의 비주얼아트다. 여기에 이예별의 바이올린 라이브연주까지 어우러져 현대무용과 타 분야와의 인터액티브를 실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요소는 여전히 안무 그 자체다. 자연스러움 속에 정교함, 부드러움 속에 강약을 지닌 움직임에서 정현진의 춤 메소드가 한층 성숙하고 확고해졌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본 패턴을 유지하면서 발전과 변화를 꾀하는 안무가 마지막까지 짜임새 있게 이어졌는데, 이는 작품의 말미에 급속하게 힘이 빠지곤 했던 예전의 단점을 극복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의 첫 부분에 안느 테레사 드 키에르스매커의 분위기가 언뜻 나는듯하더니, 차츰 정현진의 주요한 경력을 차지하는 트리샤 브라운 메소드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으며, 마침내 자기만의 춤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마치 묵직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춤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만 같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작품에 대한 잔상이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지 않았다는 것인데 고유성을 탄탄히 확립함으로써 극복해갈 수 있으리라 본다.
■ 즉흥과 구성의 이상적인 균형 잡기, 김설진의 『볼레로 만들기』
국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안성수)이 세 명의 안무가에게 볼레로 음악을 사용한 작품을 의뢰한 ‘쓰리 볼레로’란 기획은 6월 2~4일 CJ토월극장에서 펼쳐졌다. 김설진의 『볼레로 만들기』는 무대에 여러 장치를 하고 소품을 늘어놓는 것으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바닥에 장판을 깐 다음에 테이핑을 하고, 스탠드 마이크를 옮겨놓고, 여러 잡동사니들을 이곳저곳에 늘어놓았다. 동시에 무대 뒤쪽으로 여러 사운드를 내는 기계들을 설치하였다. 해체와 재구성을 거친 ‘볼레로’ 원곡은 휘파람, 턴테이블 튀는 소리, 전자음악, 비트로 변형되다가 널리 알려진 웨딩곡과 짜깁기되었으며 드럼이나 전자기타로 색다르게 연주되기도 한다. 거의 재창조되다시피 한 음악은 작품의 색깔을 확립하는데 주요 요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장치와 소품 그리고 음악과 음향이 제각각 산만해 보이지만 일련의 틀 안에서 규칙을 가지고 배치되어 있듯이, 다섯 명의 남자무용수들은 각자 움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관계 속에 연결되어 있다. 다섯이 하나의 공간 퍼즐을 맞춰가듯 위치나 행동반경 혹은 정동(靜動)에 있어 어느 정도 조화와 균형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무용수가 넓은 공간을 차지하면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펼치면 다른 무용수는 낮은 자세로 소극적인 움직임을 펼친다던가 하면서 말이다. 구성적 틀이 다섯 명의 움직임을 관통하기 때문에 제각각 즉흥적으로 움직인다 하더라도 날림으로 보이거나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안무는 상당한 감각과 탐구 없이는 실현시키기 어렵다.
『볼레로 만들기』는 ‘볼레로’ 음악을 해체하여 재구성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즉흥과 구성적 틀을 이상적으로 균형 잡은 춤으로서, 세 작품 중 중간에서 중심을 잡으면서 각각을 특색있게 느껴지게 하였다. ‘쓰리 볼레로’란 기획의 가치를 높여주었다는 의미다. 몇 년간 기대만큼의 창작 작업을 펼치지 못했던 김설진이 제자리를 찾아감을 확인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 작가적인 개념과 개성이 묵직한 예효승의 『보이스 오브 액츠(Voice of Acts)』
10월 17~18일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 펼쳐진 예효승의 『보이스 오브 액츠(Voice of Acts)』는 신체의 제스처나 얼굴의 표정 등이 소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에 대해 탐구하였으며 이러한 주제의식은 춤, 연주, 조명, 장치, 소품, 의상 등과의 흡착력 높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효과적으로 실제화되었다. 무엇보다도 50분간의 독무에는 예효승의 작가적인 개념과 개성이 묵직하게 깔려 있었다. 사실상 예효승이 아니라면 이와 같은 작품을 성공적으로 실현하여 관객의 사유와 감흥을 이끌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 창작자로서 두각을 나타낸 정석순의 『아수라 발발타』
5월14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크리틱스 초이스’의 일한으로 선보여진 정석순의 『아수라 발발타』는 모두 이루어진다는 주문의 일종으로써,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작금의 현실에서 관객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자 한다. 빨간 원피스의 여인이 앞으로 걸어 나온 후에 깜박거리는 조명 아래서 한 남자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어 강한 타진음에 맞춰 젊은 질주와도 같은 군무가 전개된다. 강한 에너지로 자유롭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연속하는 무용수들은 젊은 패기와 열기로 극장을 가득 채우며 관객의 심박동을 일시에 고조시킨다. 진과 셔츠차림의 복장이라든가 리드미컬한 강한 타진음이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돋운다. 이어지는 남자 독무는 온몸을 뒤틀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군무와 독무가 주거니 받거니 교차하는 가운데 특히 군무에서 정석순의 안무 역량이 선명하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흐름(즉 맥)이 끊어진다는 점은 유일한 아쉬움이다. 그 동안 정석순은 무용수로서 존재감을 각인시켜왔는데 『아수라 발발타』로 인해 창작자로서의 역량 또한 인정받게 되었다.
■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이인수의 『더 퍼스트 미트(The First Meet)』
이인수의 『더 퍼스트 미트』는 12월 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SCF의 마지막 날의 마지막 순서를 의미 있게 장식하였다. 이인수란 무용가를 있는 그대로 투영한 본 작품은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아니 여전히 안고 있으면서 춤에 대한 열정으로 이를 승화시키려는 본능이 가득하다. 그가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었던 과시적인 몸짓조차 그 이상의 묵직한 감성과 고뇌가 깔려있다면 예술적인 멋짐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인수가 예술가로서 한두 단계 성장해주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제껏 이인수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예술적인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 음악을 시각화한 한국창작춤, 김윤수의 『다섯 명의 무용수를 위한 거문고 산조』
서울무용제의 사전행사로 11월 8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는 한국무용협동조합의 첫 공연이 펼쳐졌는데, 그중에서 김윤수 무용단의 『다섯 명의 무용수를 위한 거문고 산조』는 거문고의 여섯 줄이 만들어내는 선율을 다섯 무용수의 춤으로 형상화하였다. 예리하고 유려한 춤사위, 다채로운 구도적 변화, 일사불란한 어울림이 미니멀하게 절제된 음악과 조명과 의상과 함께 작품의 심미감을 한껏 돋운다. 마치 음악을 시각화하는 현대발레 스타일이 한국창작무용으로 변환된다면 이러한 형태를 띨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무용수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이 밀도있는 호흡을 이어갔다는 점 역시 작품력을 높였다. 김윤수의 작품들 중 가장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창작으로 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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