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관무기

* 조재혁&김병조 안무 『미아』(1월4~6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인간의 생을 길에 빗대어 말하곤 한다. 걷다보면 평탄한 길도 나오고 지름길도 나오고 미궁에 빠져 한참을 헤매기도 하고 어떠한 목적이 있는 듯 없는 듯 인간은 그렇게 인생길을 걸어간다. 특히 불확실한 미지의 길을 걷다보면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그 문턱에서 희망이라는 작은 이정표를 삼아 헤쳐 나가려 한다.
『미아』는 인생길에서 만나는 자아와 타아의 관계 그리고 스스로 이를 딛고 일어서려는 단편을 춤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미아(迷兒)’는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라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는 단순하게 길을 잃었다기보다는 일상의 여러 모습을 어리석지만 담담히 살아가는 인간 존재 의미를 전해준다.
무용수들이 등장하면서 흰색의 판으로 천천히 작은 공간을 만들어간다. 이들은 사회 속에서 자기 영역을 만들어가듯 미로와 같은 구조를 완성하고, 음악이라기보다는 효과음에 가까운 소리에 맞추어 일상을 몸짓에 담아낸다. 그러다 다시 좁디좁은 철저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그곳에서 휴식을 얻고, 비눗방울 혹은 종이학을 통해 환상적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희망을 얻으려 한다. 이것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희망과 고통을 함께 주는 일상성으로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이를 담담하게 긍정적 인식으로 표현하려 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상징적인 표현이 유려하게 나타난다. 담담하게 그려낼 부분에서는 무미건조하게 담백하게 표현하면서도 자연의 소리와 일상의 소음 그리고 가뿐 비트 속의 몸짓은 그에 걸맞은 묘사보다 유영하는 듯 자유로운 몸짓으로 흐름에 맡긴다. 이러한 전개는 전체적으로 시퀀스의 흐름이 부드럽게 전개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는 흐름이 단위별로 분절되어 있지만 장면마다 작은 맺음과 풀림을 통해 이어가고, 여러 오브제를 서브 모티브로 기호화하여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또한 종이학이나 비눗방울처럼 희망적이며 낭만적 요소를 지닌 이미지를 활용함으로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인생은 한 번 살아볼만 하다’는 요소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는 후반부에 드러나는 미세한 웃음을 띤 무용수들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주제의식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은은한 향내를 품은 무용수들의 절제된 몸짓 속에서 구현되었기에 잔잔한 잔향을 준다.
그렇지만 역으로 이러한 오브제들은 강한 잔영을 주기에는 역동적 모티브로 미력하였다. 종이학이나 비눗방울이 지니는 단편적인 기호와 고정관념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작품이 표현방법이 진한 감동을 주기에는 추상적 일상성으로 풀고자 한 결과에서 비롯될 듯하다.
『미아』는 공감각적인 이미지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다. 이는 조명을 통한 색감의 변화와 음악 등의 두드러짐에 있다. 흰색에 바탕을 둔 의상과 무대 구성에서 획일성과 그럼에도 변별성이 드러났고, 음악, 효과음으로 중첩되는 흐름 속에서 상승으로 이끄는 반복음은 그 음에 맞추기 보다는 자율성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표현 의지를 준다. 또한 후반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자주색 풍의 색감 그리고 커다란 종이학과 비눗방울이 하나의 프레임에서 조화를 이루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휴먼스탕스의 『미아』는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이다. 휴먼스탕스는 인간성에 바탕을 두면서도 고정관념에 저항하여 새로움을 추구하는 단체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두 남자 안무가에 의한 4명의 여자 무용수 작품이라는 특색이 있다. 그렇지만 안무자와 무용수의 젠더의 다름에 따른 어색함은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조합이 이 작품에서는 조화롭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 정성태 안무 『가장 소중한 것』(1월19~20일 서강대메리홀 소극장)
극장에 들어서면 계단식 하얀 박스모양의 솟아오른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높이가 있는 무대를 활용할 무언가 나오리라 기대감을 갖게 하는데 공연할 단체가 ‘화이트 큐브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정성태 안무 『가장 소중한 것』은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언가를 추상적 서사구조와 몸짓으로 찾으면서도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독특한 공연으로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사업 DOT 선정작이다.
이 작품의 구성은 ‘1. 길들이기, 1.5. 아무 소용없는 일 2. 마흔네 번의 노을, 2.5. 특별한 아름다움, 3. 단순한 거짓말 뒤에 숨긴 연약한 마음, 3.5. 도르레의 노래, 4.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인데 연결고리가 없이 분절되어 있지만 하나하나 의미를 가지고 가장 소중한 것을 무용수들은 찾으려 한다.
첫 장면은 4명의 무용수가 무대를 그냥 걸어 나오고 암전, 안짱걸음으로 걸어오다 암전, 또 한걸음 내딛고 잠시 쉼을 가지는 걸음을 걷거나, 빠른 걸음,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린 걸음 혹은 어두운 조명 속 보통걸음을 걷고 암전이 이루어지는 연속 동작을 보인다. 길들이기라 표현하였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을 통해 서사구조를 집중시키게 하는 일종의 ‘낯설게 하기’를 가져온다.
이어서 4명의 무용수는 잰걸음으로 무언가 찾고 팔을 벌려 걷다가 손을 들고 인사를 하고, 지시를 내리고 그 명령에 한숨을 쉬는 등 일상적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나란히 횡대로 종대로 서기도 하면서 밀어내고 앞으로 나서기도 하며 또 서로 어깨를 딛고 하나의 탑을 만들기도 하며 관계성에 대한 쉼 없는 묘사를 드러낸다.
또한 영상으로 노을이 짙게 드리워진 바다를 배경으로 무용수는 쉽게 옮길 수 있는 상자를 어렵게 이동시키기도 하고 여자 무용수의 고혹적인 장면 그리고 네 명의 무용수가 조금은 빠른 몸짓으로 관계성을 나타나내는 단편적인 모습을 연속적으로 보이다가 무대에 감추어진 트램펄린이 나오면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드러낸다. 게다가 외줄 곡예를 통한 서커스 요소를 도입하여 흥미를 배가시키면서도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묻고 있다.
이 작품은 일정한 서사구조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의 편린과 안무자가 느끼는 존재에 대한 인식에 의존한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으로 전개되다보니 관객은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지만 안무자가 표현한 추상적 인식의 나열에서는 무얼 의미하는지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트램펄린과 외줄 곡예 부분도 엄청난 훈련과 연습 그리고 진지한 성찰에서 이루어진 결과였지만 이것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소중한 것’ 혹은 존재론의 인식보다 관객들에게 흥미가 더욱 앞섰다는 점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단순 접목이 아닌 이면적 의미가 흐르는 삽입이었다면 그 의미가 더욱 배가 되었을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이 의미가 없거나 불필요한 존재는 아니다. 틀에 박힌 한국무용계의 변화 없는 방법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보였다는 점에서 흥미를 준다. 이는 감각적 움직임에서 비롯되지만 기법이 정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에 정성태 안무가만의 개성으로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심주영, 김승록, 박수연, 정성태 네 명의 무용수는 기법적인 측면에서 화려함을 보이기보다는 일상적인 모습을 그려내기에 조화와 자연스러움을 보여주었다. 네 명이 보인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은 결국 그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관객에게 보여준 것이지만 그 전형성을 통해 관객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요소를 전해주었다.

* 최명현 안무 『시간은 무게다』(1월20~21일 엠극장)
최명헌 안무 『시간은 무게다』는 제목처럼 작품 전체에 무게감이 존재한다. 시간처럼 무정형의 존재를 수치로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작품에서 표현하는 시간은 물리적 중력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중력까지 내포하여 작품 전체에 중량감을 전해준다.
태초에 있을 법한 소리와 짙은 무진 그리고 무용수는 그와 비슷한 크기의 장방형 물체를 들고 힘겹게 이동한다. 이는 중력의 무게감과 함께 무중력 상태에서 걸음이 함께 공유되며 힘겨운 움직임으로 상징화한다. 또한 네 명의 무용수는 병에 물을 담거나 와인잔, 손 그리고 바닥에 물을 흘리는 장면은 이 작품 전체의 표상이다.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더 땅에 가까워진다’는 작품 의도의 속내는 4명의 무용수 중 한명이 지속적으로 바닥을 훑음으로 심리적 무게감을 표현하려 한다.
그러면서 점점 격해지는 동작의 리듬 속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그런 혼돈 속에서 와인 잔을 부딪치면서 카오스는 종결되기도 하고, 와인잔을 든 무용수가 바닥에 있던 무용수를 중심을 못 잡고 불균형하게 밟고 지나가는 등 현대적 카오스 요소를 느끼게 한다.
또한 점점 이들의 행동은 바닥에 물을 뿌리거나 옷에 적심으로 인해 물이 가득한 바닥 속 불편한 움직임을 전하려하고, 공사장 소리와 같은 일상적 소음이 지난 뒤 와인잔 바닥에 진열하고 조금은 충격적인 파괴를 통해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종결을 맺는다.
이 작품은 2017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사업 DOT 선정작이고, 2014 인천아트플랫폼 플랫폼 초이스로 초연된 작품이다. 그렇지만 3년 여 전 작품이 타인의 삶과 관계성을 통해 삶의 무게에 대한 질량을 보여주려 하였다면 2018년 현재는 오히려 무게를 감지할 수 있는 오브제 와인잔이나 물 등의 요소를 통해 질량을 배제한 움직임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는 관계성보다는 하이데거가 말한 일상성, 존재와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투영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소리와 그에 따른 움직임에 집중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흥건한 바닥을 몸으로 쓸어 담는 소리나 맨발로 한 발 한발 움직이며 마찰에 의한 긁는 소리 등 무용을 통한 일상적 소리를 몸짓으로 담아내기에 생경함과 진지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스토리텔링에 의존하지 않고, 무용수들의 감각적 움직임을 통해 서사구조를 만들어 낸 변별적 특징을 지닌다. 그래서 마지막 종결의 공포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연민과 공포의 해소를 통한 심리적 완결이라기보다는 ‘본래성/비본래성’의 자기 투쟁에서 나온 일상성의 결말로 맺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최명현 안무가는 일상성과 추상성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안무 색깔이 드러낸다. 이는 현재적 시공간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여러 오브제를 기호화하고 움직임을 통해 담아내려는데 기인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공간적 균형과 시간적 구성의 조화를 통해 수용자와 기대지평이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