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 안영준 안무 『가족놀이(like a family)』(2017.12.29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혼자 있는 모양이 무기력하고 불안하다. 일어나다 자빠지고 중심을 잃고 기우뚱 거린다. 움츠려 바닥을 기는 모습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비척비척 걷다 쓰러지고 만다. 주인공은 왜 이런 꼴이 됐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공장의 상품처럼 컨베이어 롤러에 올려져 끌려 나온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엉킨다. 커플의 논리가 우선이고 개성과 인격은 뒷전이다. 서로 입을 틀어막는다. 남자는 여자를 둘러메고 지탱하며 안아 돌린다. 둘이 겹쳐 바닥을 뒹군다. 등을 맞대고 버티며 일어선다. 고되고 불편하다. 둘은 하나를 짓밟고 으깬다. 하나 뿐인 의지처가 개개인에겐 사납다.

세상의 입구는 가족이다. 여럿을 핏줄로 묶는다. 천륜이란 이름으로 서로의 발목을 잡는다. 감정을 쉽게 할퀸다. 걸핏하면 분노를 표출하고 공격한다. 가족의 문턱을 벗어난다 치면 무자비하게 징벌을 가한다. 여럿이 하나를 밀쳐내고 학대한다. 중심을 잃고 헤매는 걸 보고도 정해진 답만 되뇌며 딴지를 건다. 가족을 명분으로 무거운 짐을 지우고 희생을 강요한다. 어깨와 등, 가슴을 가리지 않고 매달리고 올라탄다. 가장의 무릎에 둘 셋이 올라 시이소오 타듯 내리누른다. 말라붙은 애정을 쥐어짜 달라고 손을 내민다. 몸은 움츠려들고 마음은 삭막해진다. 심신을 저당잡힌 식구들은 가족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듯 감내한다.

관계에 틈이 생긴다. 내 것만을 주장한다. 몸과 마음이 부자연스럽게 부딪친다. 손으로 목을 감아 체중을 싣고 가슴과 배를 타넘는다. 둘이 하나의 등과 어깨에 아무렇지도 않게 업히고 매달린다. 온몸을 깔아뭉갤 듯 무게를 얹는다. 둘씩 마주해서도 목을 붙잡고 휘감아 돌고 거꾸로 매달린다. 미소는 사라지고 말길은 끊겼다. 싸늘한 눈빛이 오가는 공간엔 냉기가 가득하다. 버거워하는 거친 숨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사랑과 우애는 포장용이다. 애매한 감정이 속마음을 채운다. 심신은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다. 가족이라서 어쩌질 못한다. 하나 둘씩 기력을 잃고 바닥에 눕는다. 가족이 쓰러진다.

한 사람이 이집 저집을 헤집고 다닌다. 밀치고 들어간다. 발길질을 하며 남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한다. 그러다 쫓겨난다. 이웃이란 이름으로, 더불어 산다는 명목으로 남의 집 일에 간섭한다. 밀착해 눈여겨보는 통에 사생활은 거덜 난다. 약점이 드러나고 서로를 험담하기 바쁘다. 자주 편을 가른다. 그러다가도 이웃사촌 좋다는 게 뭐냐며 무거운 짐을 지운다. 친하지도 않은데 연배가 아래라며 함부로 하대하고 예의를 까뭉갠다. 성에 안차면 욕을 하고 해코지도 서슴지 않는다. 미움이 소리 없이 쌓이고 머리엔 보이지 않는 뿔이 돋아난다. 이웃끼리 제 풀에 지쳐 무너진다.

직장은 가족과 이웃의 닮은꼴이다. 획일적인 가치를 강요한다. 개인은 더 작아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족이나 이웃보다 덜 밀착됐다고 안심했다가는 큰코다친다. 냉정하게 일을 시키다가 뜬금없이 가족 같은 유대감과 희생을 요구한다. 윗사람들은 느닷없이 감정을 쏟아내고는 감정을 드러낸 아랫사람을 모난 사람 취급한다. 철저히 ‘나’를 숨겨야 살아남는다. 한쪽 다리로 버티고 선 것처럼 늘 불안하다. 살기 위해 줏대 없이 이쪽저쪽 줄을 선다. 앞서려고 아귀다툼을 벌인다. 개인의 인격은 떨어진 낙엽처럼 바닥을 굴러다닌다.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난 가정은 보이지 않는 곳에 쓰러진 채로 방치된다.

사회는 견고한 철제구조물이다. 익명의 군상은 계단과 사다리를 차례로 오르내린다. 겉으로는 질서정연하고 공정해 보이지만 속은 다르다. 갑자기 질서의 호흡이 빨라진다. 층계참에 사람들이 몰려 겹치고 엉킨다. 사다리에선 힘 있는 자가 남의 어깨를 밟고 오르고 힘없는 자는 밑을 받친다. 질서가 반전하자 진로가 180도 바뀐다. 반대 방향으로 오르내리고 테이프도 거꾸로 돈다. 세상의 방향과 속도가 뒤바뀔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변동과 혼란의 고차방정식은 늘 정해진 답, 순응을 요구한다. 진상이 드러난 세상 곳곳엔 힘이 없어 도태된 희생자들이 즐비하다. 무기력한 ‘나’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