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살롱

현대 유럽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선택할 수 있다. 아버지는 독일사람, 어머니는 이탈리아 사람인데 아들은 스위스 인으로 살 수가 있다. 자신이 처한 경우나 가치관에 따라 나라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현대 사회는 민족주의가 무너졌다고 말한다. 유럽연합이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시대적 상황을 역행하고 직전 세기의 민족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적 경황이 다시 등장한 곳이 동북아시아다.
현대 일본의 뿌리는 ‘메이지 유신’이다. 몇 천 년 지탱해오던 계급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하급 무사 출신들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이라는 민족주의 국가를 세운 시발점이 ‘메이지 유신’이다. 이 혁명적 사건에 가장 앞장서고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들은 ‘조슈한’ 출신인데 근대 일본의 초대 수상인 ‘이토 히로부미’와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조슈사람이다. 현재 일본의 수상인 ‘아베’도 조슈 출신이다. 그의 정치적 대부들은 군국주의 일본을 이끌었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가 요즘 ‘죠수 정신’을 강조하며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꺼려하는 것이다.
현대 중국의 출발지는 산서성 ‘연안’이다. 국민당의 ‘짱제스’에게 쫓긴 ‘마오저뚱’이 몇 십만 명의 희생자를 내면서도 ‘만리장정’을 감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방구인 ‘연안’ 지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연안을 바탕으로 국공연합작전을 펼치며 중국을 공산화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연안을 해방구로 만든 주인공은 시준슁(모택동 정권하에서 부총리로 있다가 문화혁명 때 실각)이었다. 그 시준슁의 아들이 시진핑이다. 그가 장쩌민이나 후진타오를 제치고 자신이 중국의 3기 지도자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현대 중국 탄생의 가장 큰 역할을 자신의 아버지가 했다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연안은 오랫동안 중국의 왕도였던 섬서성 ‘시안’ 문화권이다. ‘시안’은 중화사상의 정신적 뿌리가 되는 곳이다. 시진핑이 중국의 지도자가 된 이후 ‘중화사상’을 강조하고, ‘시안’을 중심으로 한 일대일로 정책을 펼치면서 고대 중국, 특히 한나라, 당나라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지가 드러나는 것은 이런 이유다.
북한정권의 뿌리는 항일독립투쟁이다. 3대 독재 권력의 정당성을 여기에 두고 철권 통치를 해왔는데, 때마침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등이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제국주의적 성향을 보이니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우리나라는 제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이들 나라와는 달리 4.19정신 등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를 나라의 근간으로 삼다보니 이들 나라와는 여러 가지 문제로 부딪치며 살고 있다. 생각의 뿌리가 다르니 마찰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가들의 형태를 보면 병자호란 때 호되게 당했으면서도 여전히 유교적 명분을 중시하다가 결국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조선후기의 정치가들 모습이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족주의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일본이나 중국, 북한보다 앞선 민주적, 정치적 제도를 갖추고 있다. 역사는 인본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근대사를 충분히 공부하고 현 상황을 인식한다면 우려와는 달리 우리는 주변국들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