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1995년 발칸반도의 어느 마을 우물에서 남자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비정부기구(NGO) 구호단체요원이 급한 연락을 받아 출동했고 남자를 밧줄에 묶어 모터로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뿔싸! 낡은 밧줄이 그만 끊어지는 게 아닌가? 그리고 때 마침 마을에 도착한 신입 요원인 소피(멜라니 티에리)가 이 황당한 상황에 마주하면서 한 마디 던진다. “규정대로 하고 있는 겁니까?” 어느 완벽한 날, 「어 퍼펙트 데이」(Un dia perfecto,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 극영화, 스페인 2016년, 106분)는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방식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줄지어 벌어지는, 일종의 ‘소동극’이다. 맘부르와 짝을 이뤄 구호활동을 벌이는 B(팀 로빈스)는 어찌 보면 겉멋만 잔뜩 들은 사람 같지만 내면에는 따뜻한 인간애가 넘쳐난다. 그는 제멋대로 맘부르를 에이(A)라 부르고 자신을 비(B)라 부르며 비밀요원 흉내를 낸다.
소피는 현장에 도착한 첫날답게 매사에 원칙을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구호활동은 벌이면 결국 모든 게 뒤죽박죽되고 말리라 생각해서이다. 안 그래도 온갖 상처를 다 안고 사는 이 곳 사람들 아닌가? 다음으로 요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투입된 현장 분석가 카티야(올가 쿠릴렌코)는 한 때 열정에 넘쳤던 자신의 모습을 소피에게서 발견한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A와 B는 자신이 처음 여기 배치 받았을 적 모습과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보스니아가 어디 어른들의 장난 터인가?
신속하게 사체를 꺼내지 않으면 유일하게 남은 식수원이 오염 되어 주변 마을까지 식수난을 겪을 판이다. 그런데 이 틈을 이용해 교묘하게 탱크차에 물을 실어와 팔아먹는 자들이 있고(혹시, 그들이 일부러 사체를 넣지는 않았을까?) 유엔평화유지군은 휴전협정으로 현지경찰에 모든 게 넘겨졌기에 구호활동도 금지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이들을 가로막는다. 거기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소년 니콜라(엘다 레지도빅)는 한사코 자신의 축구공을 찾으러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우긴다. 실은 할아버지에게 자신을 맡겨놓고 전쟁을 피해 달아난 부모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어 퍼팩트 데이」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영화다. 영화의 기본 틀이 코미디이긴 하지만 곳곳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아 전쟁의 실상을 보여준다. 여기저기 깔려있는 지뢰, 공식적으로는 내전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무리를 지어 폭행과 살인을 행하는 자들, 이 틈에 한 재산 모으려는 자들, 유엔의 안일한 대처, 불안한 치안 질서, 자신을 방어한답시고 권총을 뒤춤에 자랑스럽게 차고 다니는 소년,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과 동물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그깟 밧줄 하나 구할 수 없는 처참한 세상. 전쟁이 진행 중일 때는 물론이고 휴전이 된 후에도 여전히 비극은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비극적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을 소개하겠다. “여기 사람들은 울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갓 태어날 때부터 우는 대신 웃으며 세상에 나오기 때문이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왜 영화 첫 장면에 이런 대사를 배치했는지 감독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