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살롱

체코 소설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R.U.R」(1920)로부터 유래한 ‘로봇’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분야는 누가 뭐래도 만화·애니메이션이다. 특히 일본은 세계2차대전 패전 후로 아톰, 마징가Z, 건담 등 수많은 유명 로봇을 만화를 통해 탄생시켰다. 로봇의 변천사는 일본 사회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4차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시기의 로봇은 과거와 또 달라지게 된다.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가 지난해말 출간된 「나는 로봇 커뮤니케이터 켄타로」(늘봄)에 등장하는 로봇 ‘오리히메(織女)’다.
카렐 차페크가 처음 그 개념을 제시했을 때만 해도, 로봇은 인간 대신 노동을 하는 기계노예에 불과했다. ‘로봇(robot)’이란 명칭은 체코어로 일, 노동을 의미하는 ‘로보따(robota)’의 영어번역에서 비롯됐다. 같은 단어가 러시아어로는 ‘라보따(работа)’이다.
기계노예에 불과했던 로봇은 1950년대 일본만화가 데즈카 오사무가 「철완(鐵腕) 아톰」을 발표하면서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로 바뀐다. 패전국인 일본의 국민들은 아톰을 통해 재기와 부활의 기운을 감지했고, 만화 「철완 아톰」을 보고 자란 일본 어린이들은 아톰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길 꿈꿨다.
일본의 경제호황기인 1970년대에는 이른바 ‘슈퍼로봇’이 쏟아졌다. 1972년 방영되기 시작한 마징가Z를 비롯한 그랜다이저, 겟타 로보, 자이언트 로보, 건버스터 등 슈퍼로봇들은 뻗어나가는 일본의 국력을 상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 마징가Z를 모델로 태권V가 나왔다.
로봇의 트렌드는 또 바뀌었다. 1990년대에 로봇은 인간과 같은 형태의 사이보그로 진화를 끝마쳤다. 1990년 첫 선을 보인 유키도 키시로의 SF만화 「총몽」 여주인공은 사이보그로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좌충우돌한다.
2006년 등장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SF만화 「플루토」에서 로봇은 인간과 삶에서 완벽히 공존하는 존재다. 1964년 발표된 「철완아톰-지상최대의 로봇」편을 리메이크한 「플투토」에서 ‘살해된’ 스위스 산악안내 로봇 몽블랑은 전 세계 어린이들의 친구다. 이 작품에서 몽블랑은 철저하게 ‘몽블랑씨’로 소개된다.
만화는 아니지만 「나는 로봇 커뮤니케이터 켄타로」 책에 등장하는 로봇 오리히메를 주목할 만하다. 인간을 대신하는 분신인 오리히메는 인간의 생명을 갉아먹는 ‘고독’을 치유하는 소형 로봇이다. 오리히메는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으며, 사람이 조종한다. 이 로봇을 만든 요시후지 켄타로는 학창시절 외톨이였으며, 고독의 극한까지 간 경험자였다. 그래서 그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시킬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 고립된 인간의 고독을 소멸시키고자 한다. 켄타로는 ‘오리히메에게 장착된 카메라, 마이크, 스피커를 통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들과 마치 함께 있는 것처럼 소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본에서는 오리히메가 주인공이 된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곧 만화로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더 고독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오리히메 같은 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