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이매방(李梅芳)의 북을 치는 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끼치며 눈물이 납니다. 날라리나 꽹과리처럼 빠른 템포의 소리가 저 멀리 바람결에라도 들려오면 공연히 들뜬 기분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대금이나 시조의 느린 호흡의 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의 평화를 얻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밖에.
반딧불이는 어두운 밤 꽁무니에 달린 불빛의 깜박이는 명멸의 리듬으로 자기의 종족을 찾아냅니다. 수십 종류의 반딧불이가 하늘을 날면서 서로 불을 켰다 껐다 하는, 그 미세한 시간 차이로 이들은 동류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소리의 숨결이 길던 짧던 간에 나는 우리의 것이면 금방 알아내는 기막힌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논리로써 표현할 힘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저 선험(先驗)이라든지 본능(本能)이라는 둔사(遁辭)로 밖에.
조각이나 그림이나 건물이나 온갖 사물에서 우리는 우리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양이나 논리가 아니고 끼리끼리 서로 잡아당기는 그런 자력과 같은 친화력으로 말입니다. 우리 것이면 이유 없이 보아서 좋고 들어서 좋은데 어떻게 합니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서 장구니 춤이니 소리니 하는 것은 묵시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으로 교육받았습니다. 함경도 쪽으로 온 캐나다 선교사들은 이런 것은 근대 문명의 저해 요소로 간주, 터부시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필경 굿과 연결시킨 발상에서였을 테지만 성장기에 내가 이런 우리 전래 정서의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합니다.
내가 여섯 살 때 할아버지의 회갑을 우리가 사는 두만강변 회령에서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마당에 큰 천막을 치고 멍석을 깔고 잔치를 하였습니다. 나는 이때 생전 처음으로 가까이서 붉은 칠을 한 장구도 보고 부끄러움 없이 춤추는 분바른 기생도 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것이 사악(邪惡)이고 귀신들린 사람들의 놀음처럼 생각되어 보면 안 되겠다고도 생각하였고, 우리 집에서 한다는 것에 부끄러움도 있었으나 흰 두루마기의 키 크신 우리 할아버지가 춤을 추게 되면서 나의 이런 생각은 이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는 순간부터 놀랍게도 그 춤이나 장구 소리가 나와 그리도 가깝고 친근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악이 아니고 즐겁고 재미있는, 물론 뭐가 그렇게 나를 즐겁게 했는지 모르나 그날부터 나는 할아버지의 춤 흉내를 곧잘 내는 손자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춤의 흥을 알았던지 모릅니다. 이리의 젖을 먹고 자란 사자가 어느 날 사자의 포효를 듣고 홀연히 잊고 있었던 자기를 알아내는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기 않아도 알아진다는 것은 이상하기만 합니다. 반딧불이의 깜빡임처럼 그 미세하고 델리케이트한 시간의 간격처럼 민족에 따라 심장의 박동이나 피의 흐름에 계산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소리나 그림이나 춤에 그 ‘무엇’, 말하자면 영(靈)의 사이클 같은 것이 있어서 보고 듣는 순간, 끼리끼리의 것은 서로 화합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더 설명할 길은 없지 않겠습니까.

「 이즈음처럼 삶은 분주하고 마음은 늘 쫓기듯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반만년 이어온 역사와 역경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우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나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 민족의 뿌리와 그 정체를 물음으로써 잊고 있던 ‘나’를 찾고자 하는 이 글은 「샘터」 100호(1978년 7월호) 기념 특집 ‘우리는 누구인가’에 실린 글입니다. - 샘터 편집부」

「샘터」 1978년 7월, 2004년 2월 재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