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내가 심소(心韶) 김천흥(金天興) 선생 춤을 처음 대한 것은 1956년도에 있은 그의 첫 무용발표회 때였다. 당시 나는 조선일보에 무용평을 기고하고 있었는데 김천흥 평(評)만은 문화부장 Y씨의 특별주문에 의한 것이었다, Y씨는 무용가에 관한 말만 나오면 「국악원의 김천흥…」을 들고 나오는 그런 버릇도 갖고 있는 분이었다. 나는 Y씨 주문을 받고 우선 종로도서관 골목에 있는 김천흥무용연구소를 찾아갔다. 연구소는 10여 평 정도 되는 2층 마루방인데 공연 준비로 붐비고 있었다.
김 선생을 만나고서 안 일이지만 김 선생은 문화부장 Y씨라는 사람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컨대 예술 딜레탕트인 Y씨가 어떤 기회에 본 김천흥이란 인간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든 내일 모레 90세인 오늘의 김천흥 옹의 인상이 그때 본 40대인 긍정적이고 평화롭고 정력적인 젊은 김천흥 씨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은 정말 신기하다.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하는 것은 춤에는 천재라는 것이 따로 없다. 그저 열심히 공부하는 일밖에. 자기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고 하던 그의 말이다. 바로 이것이 춤의 선비를 꿋꿋이 지켜온 김천흥 예술의 철학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김 선생의 춤의 경우 결코 천재나 놀라움이나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꾸준히 노력하여 터득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광채와 향기가 있을 뿐이다. 나는 이런 김천흥을 이미 알아보고 흥분했던 그 문화부장 Y씨의 안목에 감탄한다. 그의 김천흥 숭배론은 단호했다. “훌륭한 춤은 음악에 정통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 그것이 국악원의 김천흥이다” 라는 식. 그리고 명무(名舞) 한성준(韓成俊)도 명(名) 고수(敲手)였다는 말을 꼭 덧붙이곤 하였다.
때로는 Y씨의 무용론(舞踊論)이 나의 영역을 침범해와 저항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어느 때부터인가 나도 그의 김천흥 논(論)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편에 서 있었다.

방일영국악상 팸플릿, 1997년 11월 18일(코리아나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