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1964년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확전되는 시점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공산당을 저지하기 위해 9년간 라오스에 58만 번의 폭격으로 약 200만 톤의 확산탄이 뿌려지며 이 나라는 세계 역사상 가장 극심한 폭격 피해국이 되었다. 라오스는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불발탄이 제일 많은 나라이다. 오늘날 베트남전 과정에서 라오스에 투하돼 터지지 않고 남아있는 불발탄의 비율은 30%, 무려 8000만 개가 된다. 이는 라오스 국민 700만 명 한 사람당 10개가 넘을 정도로 많은 숫자이다. 라오스의 총 17개 주 중 베트남과 국경을 접한 14개 주는 아직 폭발하지 않은 불발탄의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이 중 사반나켓(Savannakeht), 시엔쿠앙(Xiengkhuang), 사라반(Salavan), 캄무안(Khammouan)의 4개 주가 가장 심각하다. 불발탄은 땅을 개간할 때 괭이질을 하는 물리적 충격이나 요리를 할 때 나오는 열과 같은 일상생활의 여러 가지 활동으로 터질 수 있다. 이로 인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또한, 떨어진 불발탄은 마치 금속으로 된 페탕그(Petanque, 프랑스의 전통 공놀이)와 크기와 모양에서 거의 흡사하다.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는 국가들 대부분은 페탕그 놀이가 있는데 이는 라오스국민들이 대표적으로 즐기는 게임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숲 속에 떨어져 있는 쇠 구슬을 발견한 아이들은 호기심에 갖고 놀다가 터져서 팔, 다리를 잃거나 사망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터지지 않은 불발탄의 피해자 60% 이상이 아동 청소년들이다.

불발탄의 피해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 그리고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2017년 12월14~17일, 3박 4일간 춤으로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파이프 웨이 위드 크러스트(PIPE WAY WITH TRUST)」 프로젝트로 트러스트무용단과 라오스 현지 노동부 사회복지과, 월드리뉴센터의 도움으로 어렵게 불발탄 지역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워크숍이 진행된 씨엔쾅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두 마을에서 온 16명의 아이, 16명의 보호자 그리고 공무원 5명이 함께하였다.

사바히디. 안녕하세요
라오스 사회에서는 장애인들을 향한 대우가 매우 열악하다. 더군다나 장애아동을 가진 부모는 아이를 돌봐야 하므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어떤 아이들은 한 번도 차를 타 본 적이 없고, 외국인을 본 적도, 도시로 나가본 적도 없다.
워크숍 전날 저녁, 우리들은 참가자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아이들과 보호자가 함께 머무는 숙소로 찾아가 한 명 한 명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아이들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경계가 가득했다. 긴 시간 버스를 타고 오느라 지쳤는지 일찍 잠이 든 아이들도 있었다. 불발탄을 공으로 착각하고 놀다가 터져 한쪽 눈과 손가락을 잃은 아이, 불발탄 피해로 트라우마가 생겨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된 쌍둥이 형제, 어릴 적 갑자기 고열이 났으나 약이 없어 민간요법으로 아버지가 양귀비를 먹이며 갑자기 지체 장애가 되어버린 아이, 녹슬고 낡은 나무판자 휠체어를 탄 지체 장애 어린아이… 이 아이들과 도대체 앞으로 3일간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의 아픔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부모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은 상황에서 앞으로 3일간의 짧은 만남이 어떤 의미이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깜짝 이벤트밖에 되지 않는 우리들만의 축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복잡한 감정과 고민이 머릿속에 맴돌며 무거워진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시골의 작은 유치원
벽면 여기저기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붙어있다. 책장과 서랍들은 옆 방으로 옮겼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플라스틱 카펫을 깔고 깨끗이 닦았다. 한국에서 누가 오셨다는데 무엇 때문에 왔는지, 이곳이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친구들이 대부분인 듯하다.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 자기소개도 부끄러워 나서는 것을 어려워했다. 앞으로 삼 일간 함께 할 친구와 선생님의 이름을 익히기 위해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공을 건네주는 게임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2분도 안 걸렸다. 아이들의 내면에 숨어있던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 것이. 공을 던지는 속도가 느린 친구는 기다려주고, 목소리가 작은 친구는 서로가 한목소리로 이름을 크게 불러주었다. 작은 사물을 통한 움직임 수업을 시작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찾아가고, 서로를 따라 하고, 뒹굴고 뛰며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자신의 움직임과 목소리로 표현하였다. 구르지 못하는 지체 장애 아이를 안고 함께 굴렀으며 쉬는 시간에는 신나게 공을 차고 점심은 따뜻한 밥을 나누어 먹었다.

이튿날
한쪽 눈을 보지 못하는 친구는 걷지 못하는 친구를 들어 안고 교실로 들어왔다. 쌍둥이 형제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으며 가수가 꿈이라고 고백한 말없이 조용했던 아이는 선생님과 함께 소리꾼이 되어 소리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마음이 차츰차츰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언어는 안 통하지만, 마음은 통했으며, 자유를 외치는 움직임들을 통해 천천히 아이들 내면의 숨겨진 보석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수업
워크숍 장소까지 들어가는 길 저 멀리, 아이들은 일찍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소리 지르며 공을 차고 뛰며 놀면서, 선생님들이 도착하니 손을 흔들며 활짝 웃어준다. 지난 3일간 함께 발견하고 만들어낸 움직임들을 모아 부모님과 관계자들 앞에서 발표하는 마지막 날. 선생님들이 구상한 시나리오대로라면 1시간 길이의 작품이다. 구상은 했지만, 내심 걱정이었다. 과연 아이들이 이 순서를 소화해낼 수 있을까? 과한 욕심으로 준비한 건 아닐까?
16명의 아이는 2시간 동안 한마음으로 모아 준비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자연의 역할을 맡았다. 물이 흐르니 꽃이 피었고, 바람이 부니 나무가 흔들렸다. 여기저기서 동물 소리가 들렸고 천둥과 번개가 치니 바위 옆에 숨었다. 물고기 한 마리가 나와 뻐끔뻐끔. 모두가 강이 되어 주변에서 맴돌았다. 팔락팔락 분홍 나비가 날아와 피어난 꽃 위에 앉았다. 모두의 목소리는 높아지며 온몸으로 흔들흔들 쿵쿵, 하얀 티셔츠가 땀에 젖기까지 뛰며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
가슴 깊이에서 흐느끼는 한 아이 어머니의 눈물은 나의 어깨를 타고 내려왔다. 지난 세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나가는 구름도 날아가는 나비도 알지 못 할 거다. 누구도 만져주지 못했던 그 마음. 자유를 향한 아이의 몸짓은 돌처럼 딱딱해진 어머니의 마음을 눈처럼 녹여버렸고, 남겨진 상처의 흔적들을 만났다.
헤어짐은 늘 가슴을 쓰리게 한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부모님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헤어짐이 싫어서, 너무 행복해서, 그리고 감사해서.

춤은 소외되어 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이들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던 이야기들이 담긴 몸짓은 세상이 만들어낸 기준의 ‘장애’의 벽을 뚫고 아름다운 영혼의 춤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춤은 우리의 내면에 과거 경험과 지식의 바탕으로 세워진 기준의 ‘완전함’에 대한 추구의 결과물인 편견이라는 색안경의 상대적 기준가치 앞에 ‘불완전함’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게 하였다. 안 그런 줄 알았는데, 어쩌면 우리는 자신 안에 세워진 기준에 갇혀 자유를 잃어버린 장애인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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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예진: 1991년 출생, 2000년에 중국 상하이발레학교에 다녔으며 2002년도에는 몽골에서 1년간 살았다. 그 이후 트러스트무용단에서 잠시 활동했으며 2008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예술대학 무용과에 입학해 4년의 학사과정을 이수하고 그 이후 프리랜서 예술가로 독일, 폴란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의 유럽국가에서 활동했다. 중간에 1년간 잠시 춤을 접고 중동지역을 여행하며 다양한 국가와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과의 깊은 이야기와 독일에 있는 난민 친구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비 롱잉』을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