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지난 1월 와이즈발레단의 동화발레 『피터와 늑대』에 대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에 고무돼 비슷한 성향의 공연을 자주 기획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후속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2월호 「춤」지(76~79쪽 ‘가장 고귀한 예술은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참조) 기고에서 “700석 공연장에 400여 명의 어린이 관객과 이들 ‘꼬마 손님’을 동반해 온 부모관객들로 좌석이 넘쳐났다”고 썼었다. 지난 해 국립발레단의 갈라를 했을 때도 만석을 이뤘을 뿐 로비에서 TV화면으로 볼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동화 발레에 대한 열렬한 호응은 개인적으로 어린이 관객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매달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기로 하고 3, 4, 5월 프로그램을 우선 마련했다. 2월에도 하고 싶었으나 기획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평창 올림픽까지 있어 공연불황 기간임을 감안해 3월부터 기획했다.

지난 30일 올린 공연은 그림자 동화극으로 비발디의 「사계」가 연주되는 가운데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가는 과정을 동화 구연(口演)과 그림자극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린이 관객들은 천연색 그림자로 나타나는 애벌레와 나비 형상에 몰입했고 비발디의 「사계」 중 하이라이트 음악은 덤으로 듣는듯 했다. 그러나 음향시설과 조명이 갖춰져 있고 무대가 있는 정규 공연장을 처음 왔거나 몇 번 왔더라도 그림자 동화의 신기함을 경험한 어린이들에게는 이 날의 경험이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날 객석을 가득 메운 어린이들은 애벌레가 꿈을 갖고 인내하며 나비가 되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림자 동화 그 자체를 만화책 보듯이 즐겼다. 어린이 관객 상당수는 엄마는 물론 금요일인 때문인지 아빠와 온 경우가 많았다. 아빠들은 아마도 귀가하는 차 속에서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세상을 날아다니듯이 어릴 때부터 꿈을 갖고 노력해야 세상을 위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보았다.

사실 부모와 함께 본 공연에 대한 어린이의 추억과 경험이 성인이 되어 관객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많이 나와 있어 정설이 된 지 오래다. 그 같은 연구 결과의 대표적 사례가 1985년 미국 클리블랜드재단이 실시한 어린 시절의 공연관람 경험과 교육, 성인이 된 후에는 공연에 같이 갈 동반자 유무 관련 조사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린 시절 부모와 공연 관람을 한 경험이 있고 예술교육을 받았으며 성인이 되어 공연을 함께 볼 동반자가 있는 경우, 현재 관객이 될 가능성은 48퍼센트로 나타났다.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와 공연관람을 한 경험이 없고 예술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공연도 함께 볼 동반자가 없을 경우, 현재 관객이 될 가능성은 6퍼센트로 낮게 나타났다. 어렸을 때의 공연 관람 경험이 미래 관객이 될 가능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 조사 결과는 말해 준다.
이런 조사결과에 힘입어 어린이와 부모가 동반하는 공연을 하도록 하자는 제안은 더욱 환영을 받고 있는 분위기이다. 좌석이 넘치도록 어린이와 부모관객이 찾아오도록 하기 위해 4월에는 13일 금요음악회에 가족 오페라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올릴 계획이다, 주인공 커플 파미나와 타미노의 러브스토리에 조연 커플인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등장은 마치 이도령과 춘향, 방자와 향단의 조합 같은 구성이어서 가족 모두가 불 수 있는 음악극으로 손색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림자 동화가 유치원 어린이 대상이라면 가족 오페라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그리고 그 부모가 대상이다.
5월에는 어린이날 하루 전인 4일 금요일에 다시 동화발레를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김순정 교수(성신여대)가 안무하는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이다. 단짝 소년 소녀였던 카이와 게르다의 우정을 그린 동화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발레로 공연돼 공연을 본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 확실 시 된다. 희망이 있다면 이 공연이 어린이와 부모들의 큰 호응을 얻어 크리스마스 시즌의 『호두까기 인형』처럼 어린이날이 있는 우리나라 5월의 대표적 레퍼토리가 되는 것이다.

이같이 매월 한 공연을 어린이와 가족용으로 기획하면 연인원으로 약 5,000명의 어린이가 공연장 경험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10분의 1만이라도 성인이 된 후 공연관객이 되어 준다면 대성공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10년만 계속한다면 구청 단위의 작은 공연장에서 모두 5,000여 명의 미래 관객을 양성하는 셈이 된다. 결코 작은 규모의 관객이 아니다. 더구나 요즘 어린이들은 휴대폰의 게임이나 만화에 빠져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들리는 게임 영상을 본 탓에 시력도 나빠지고 혼자만 게임에 몰두하느라 사회성도 떨어진다고 한다.
어린이를 공연장으로 오도록 유도하는 일은 여러 면에서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우선 당장은 틈만 나면 중독이라 할 만큼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게임에 빠져 드는 어린이와 학생들을 구해낼 수 있다. 특히 게임의 주제가 폭력적인 것이 많아 인성의 고양을 위해서도 클래식 공연 감상 기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악을 비롯해 클래식음악, 연극, 무용 전공자가 수요보다 훨씬 많이 배출되는 현실에서 미래 관객을 개발하는 일은 문화예술계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절체절명의 지상 과제이다. 나아가 이 일은 예술인 자신은 물론, 지역 커뮤니티, 중앙과 지방의 문화예술기관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