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시

춤, 황홀한

조명제

뱁새들의 자잘한 소리 돌아와
나지막한 울타리 가지 사이를 쏘다니는
햇볕 따사로운 날, 검은 슬픔은 아직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네.
사랑은 가고, 사랑의 시만 남은
미라보강 다리의 추억
마리 로랑생전(展)은 끝났어도
흰분홍 슬픔은 아직 한가람을
떠나지 못하고 있네.
암록의 얼룩 무대 위 연분홍,
다홍, 주황, 담청, 황톳빛 춤옷의
‘무희들’은 뭉게구름 춤을 추고,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의
눈썹이 흐린 여자 커플의 가느다란
발끝 춤을 따라, 한쪽 다리를 무릎에 걸치고
흙빛 밴조를 켜는 여악사(女樂士)의
긴 손가락은 애수에 젖은 음률을 들려주네.
사랑을 잃고, 그늘진 먹빛 눈동자들이
슬픔을 침묵 속으로 밀어 넣을 때,
쑥부쟁이 곤쟁이 오는 길
마을 밖 복사꽃 환히 피어난 터널 끝
아지랑이 같은 사람들은
느리고 둥근 어깨춤을 추네.
기쁨보다 황홀한 슬픔의 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