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트러스트무용단 김형희 안무 『두리새로-서로하나』(3월8일 SAC아트센터)
즉흥도 작품이 될 수 있는가.
물론 된다. 큰 소절만 숙지한 채 서로의 호흡만으로 연주하는 재즈곡이 그렇다. 그리고 이와 흡사한 형식으로 연주하는 한국의 시나위 역시 삼현육각끼리의 엇갈리는 선율의 불협화음마저 음악이 되는 독특한 예술 형태로 여겨지고 있다. 혼돈과 불협, 때로는 나도 모르게 일이 술술 풀리는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멋진 선율이 방언처럼 터져 나올 수도 있는 예측불가 한 면이 즉흥의 매력이다. 미술은 음악보다 훨씬 더 즉흥에 가깝다. 특히 모든 추상 미술은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만큼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한, 만족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추상미술 자체가 즉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비해 춤은 즉흥 음악과 추상 미술의 중간단계로 보인다. 혼자 추는 즉흥 춤은 형식면으로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의 붓 터치처럼 자유스러우나 두 사람 이상이 즉흥을 추게 될 경우 재즈나 시나위처럼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어야 기승전결을 이어나가는 것은 물론, 서로의 안전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흥의 또 하나의 매력은 ‘따로 또 같이‘와 같은 자율에 있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상황이란 면으로 볼 때는 예술과 스포츠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2018 평창 문화올림픽 인증사업 일환으로 트러스트무용단(단장 김형희)의 공연이 3월3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춘천 등에서 열렸다. 이중 8일에는 즉흥 안무 공연으로, 노르웨이(존 필립 팔스트룀 & 젠스 제프리 트리니다드), 덴마크(사이먼 베이어 페더슨), 싱가폴(사라 탄), 일본(코구레 가호), 콩고(자끄 바나 양가) 등 6개국 출신 총 10명의 무용수가 한 시간여 동안 공동 즉흥 안무를 선보였다. 한국에서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백경선을 비롯, 트러스트무용단 단원 중 권예진, 성종택, 이형우, 정다인 등 4명의 무용수들이 출연했다. 음악을 담당한 거문고 연주자 심은용 그리고 일렉트로닉 뮤지션 하임이 무용수들의 등퇴장 그리고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때로는 한국적이거나 때로는 현대적이거나 혹은 동남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출연자들의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춤의 색을 입혔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은 트러스트 공연은 즉흥공연이 전부는 아니었다. 3일부터 10일까지 서울과 춘천 등을 오가며 출연한 외국 초청 무용수들의 소품 순서, 그리고 한국 장애우들과 라오스 불발탄 지역 장애우들의 공연, 청소년 브라스 밴드 연주와 대안학교 청소년들의 공연 순서 등도 포함되었다. 언어가 서로 다름에도 움직임이라는 만국 공통어로 조화롭고 또 안전한 공연을 이끈 무용수들의 즉흥 연출은 그 어느 안무 작품보다 이번 공연의 의미와 어울렸다. 미국의 노장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Seymour Bernstein)이 “(삶과 마찬가지로) 음악에도 불협화음(dissonances)과 화음(harmony) 그리고 해결화음(resolutions)이 있다. 불협화음이 없다면 해결화음의 묘미를 즐기지 못 할 것이다. 불협화음이 없다면 화음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라고 삶과 음악에 대해 피력한 말이 생각났다.
이번 트러스트무용단은 인종과 국가는 물론 장르, 남 vs 여, 전문인 vs 비전문인, 장애 vs 비장애 등 달라도 너무 다른 무용수들과 연주가들이 모여 점점 하모니를 이루어가는 과정으로 작품의도와 대본 그리고 기승전결이 없어도 한 시간여를 이끌어가기에 손색이 없었다. 관객들 역시 마음으로 그들과 참여하고 느끼고 그 에너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공연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평창 패럴림픽의 정신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은 문화 올림픽의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