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좌담

이동하 (李東河 / 툇마루무용단 단원)
정석순 (鄭錫淳 / 프로젝트에스(Project S) 대표)
정수동 (鄭水同 / 수디아트앤코(Soo d Art & Co) 대표·아지드현대무용단 단원)
심정민 (沈廷玟 / 춤평론) - 사회자



최근 무용계 최대 수혜자인 젊은 창작자들, 예술적 정체성 확립이 관건
심정민 _ 오늘은 ‘젊은 창작자들에게 주어진 풍부한 기회와 그 이면’이라는 주제로 논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좌담에는 작년에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좋은 창작으로 주목을 받은 젊은 창작자 세 분을 모셨습니다. 신진과 허리세대 사이에서 발전적인 창작을 하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현장의 유동성 있는 젊은 흐름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허리세대로 올라서야 할 분들이므로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많으리라 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자기소개를 해주시죠.
정석순 _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안무가와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성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했고요.
심정민 _ 정석순 씨 경우에는 실력 있고 개성 있는 무용수로 알고 있었는데, 지난해 「크리스틱 초이스」에서 『아수라 발발타』를 보고 ‘저렇게 안무를 잘 했었나’ 하고 놀랐습니다. 컨템퍼러리댄스의 최근 스타일 중 하나에 대한 감각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던데요. 서유럽 창작자들 중에서 대중적이고 감각적이면서도 예술적 근간을 잃지 않은 안무가 부류가 있는데 그런 스타일을 실현하고 있더군요.
정석순 _ 「서울무용제」 경연대상 작품을 5년 전에 했는데 그게 마지막 대극장 작품이니까, 『아수라 발발타』는 무척 오랜만에 하는 대극장 작품이었죠. 저도 오랜만에 하는 거라 어떻게 할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리고 사실 그 4년 사이에 저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 전에 작업할 때는 대중성에 대해 관심도 많고, 겉멋도 많고, 좀 보이는 것에 많이 집착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춤을 잘 춰야 한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4년 동안 나이도 먹고, 결혼도 하고,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을 겪었어요. 사실 전에 작업할 때는 그냥 나를 위해서 작품을 만들고, 더 잘 해야 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작품을 할 때 밖을 많이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단지 나를 표현하고 경제적인 효과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밖에 나가면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다보니 사회적인 책임도 갖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치유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번에 작품을 함께 한 무용수들은 저와 한 번도 같이 하지 않았던 무용수들이에요. 다 제자들이고 저와 나이 차이도 10살 가까이 나는데, 그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들이 다 이 작품으로 더 용기를 얻고 앞으로 무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도 갖고 있어요.
정수동 _ 안녕하세요. 저도 안무가 겸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성균관대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고, 계속해서 박사과정 재학 중이고요. 제 이름 이니셜을 딴 ‘수디아트앤코(Soo d Art & Co)’라는 무용단으로 활동하면서 2014년도부터 트리오, 솔로, 듀엣, 단체, 군무 작품들을 가지고 국내외 페스티발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2014년, 2015년에 국외 활동을 하고, 이후 2016년에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안무기획 작업을 하면서 그때부터 무용수들을 좀 키워서 작업할 수 있었어요. 이후에 남자 무용수들이 10명 정도 함께 하는 단체 작품이 있었는데,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 공연을 올리면서 무대 메커니즘이나 무대 공간에 대한 고민, 그리고 활용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작업 이후로 동문 단체인 아지드현대무용단에서 ‘하객들’이란 작품을 하면서, 보다 확장된 무대작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 과정들이 지금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라는 무대에 제 아이디어와 고민들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 같아서 감사하죠. 올해 ‘크리틱스초이스’에 선정돼서, 신작을 구상 중입니다.
심정민 _ 정수동 씨는 재작년, 작년에 작품이 나올 때마다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성장도 성장이지만 작품도 기획이나 공간에 맞게 다변화시키더군요. 특히 공간이나 장치를 쓰는 것에 대한 감각이 있는 듯합니다. 안무적 짜임새도 급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고요.
정수동 _ 무용수로 활동하며 경험했던 현장성, 그러한 과정들이 안무자 역할이 되어 자신의 상상과 호기심들을 무대에 표현할 수 있었던 기회들에 감사하고 더불어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듯합니다. 특히 안무과정 속에 초반 리서치 단계에서 무용수들의 경험을 통한 신체의 기억들을 노트하고 즉흥으로 찾아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때 무용수들이 순간적으로 표현하는 신체의 움직임들을 포착하여 무대로 확장시키려 합니다. 또한 무용수들의 즉흥적 요소들을 앙상블의 구조와 함께 유기적으로 구성하려고 합니다.
이동하 _ 안녕하세요. 무용수 겸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종대 출신이고요, 툇마루무용단 단원입니다.
심정민 _ 이동하 씨의 장점은 그 또래에서는 드물게 스케일이 큰 안무를 한다는 겁니다. 많은 수의 무용수들을 동원하는 작품은 동작과 대열, 공간과 장치, 음악 등 여러 부분들을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안무하고 연출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신진들이 지나치게 하나, 둘, 셋, 넷 정도 나오는 작품만 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스케일이 큰 안무를 하는 창작자들이 희소가치가 높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동하 _ 기회가 주어지면 색다른 시도를 계속 하고 싶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도 기존에 했던 방식과는 다르게 구성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옴니버스 식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작년, 재작년 「크리틱스 초이스」 공연 작품같은 경우는 30분 내내 이야기가 전개됐는데, 이번에는 이야기의 전개나 흐름보다는 옴니버스 식으로 새롭게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창작적 역량을 갖춘 무용가들이 도리어 지원프로그램에 취약
심정민 _ 최근 무용계 최대 수혜자는 젊은 창작자들인 것 같습니다. 지원 프로그램도 상당히 많고 갖가지 공연 기회도 풍부하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 무용계를 보더라도 이렇게 많은 지원과 기회를 풍부하게 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여 집니다. 하지만 아직 예술적인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도 못한 상태에서도 지원과 기회를 얻다보니 스스로 뭘 잘하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체 휩쓸려가는 경우도 왕왕 봅니다. 무용계 주축 무용가들도 창작지원금 1~2천만원 받기 힘든 현실에서 어린 분들이 3~4천만 원씩 받는 경우도 왕왕 있고요. 신진들이 스스로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 상황입니다. 사실 그 세대가 가장 취약한 상태입니다.
정수동 _ 네. 지원 사업을 통해 작업을 이어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지만, 저는 그것보다 무용수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그 다음에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찾아서 하면 좋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기회들이 많이 생겨서 공모에 지원해서 지원비를 받고 현장에서 부딪히며 작업을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공간, 스태프, 연출적인 부분들에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멘토가 붙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조언자들이 붙어서 디자인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좋은 것 같진 않아요.
심정민 _ 외국 무용가나 평론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빈번하게 하는 말이 ‘창작을 시작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우리 신진들은 끼나 감각만 가지고 덥석 창작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외국에서는 지원과 기회를 얻기가 무척 힘들고, 그렇기에 이를 얻기 위해서는 창작자로서 기본 노력을 일단 오랫동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스튜디오 공연처럼 자기네들끼리 하는 것도 많이 합니다. 스스로 뭘 잘 하고,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예술적 정체성과 독창성 등을 확립한 다음에 창작자로 데뷔를 하는 것이 상식이죠. 우리 신진들은 그런 것 부족한 상태에서 그냥 덥석 지원과 기회를 얻고 그 다음에 뭔가를 찾으려고 하니 아쉽습니다.
정석순 _ 저는 지원금을 아직 한 번도 안 받아봤거든요. 저는 그래서 방금 말씀하신 걸 듣고 좀 놀랐어요. 그렇게 지원금을 받고 하는 건 좋은데, 그 후가 명확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얼마나 무섭고, 큰 책임이 따르는 건지 생각해 봐야 하죠. 정말 노력하는 창작자들이 많거든요. 그 사이에 다른 데로 빠질 수도 있지만, 그 계획이라든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멘토가 붙는다든지, 지원 내용이 좀 더 세분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요.
이동하 _ 저도 지원금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요. 제가 다행히도 기획공연들이 많이 잡혀있어서 그런 것까지 할 시간이 없어서 배제하고 있어요. 주위에서도 다른 안무가들이 지원금을 많이 신청해서 받는데, 내가 이 작품을 정말 하고 싶어서 지원금을 받는 게 아니라 지원을 받았으니 공연을 올려야 되는 입장인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좀 예술성이 쌓여있지 않는 상태에서 공연을 올리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지원서를 다 서류로 내다보니까, 누가 서류를 더 잘 쓰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무용은 현장예술이잖아요? 그러니까 서류로만 심사해서 승인해주는 것보다는, 오디션과 서류 심사를 병행하는 식으로 개선되면 좋을 듯 합니다.
심정민 _ 지금 창작적 역량을 갖춘 무용가들이 도리어 지원프로그램에 취약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최근 맞춤형 기획을 하는 지원프로그램이 많은데 거기에 맞출 수 있는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신진들 밖에는 없어요. 더군다나 이러한 신진들이 지원을 많이 받는 듯하지만 실상은 관여된 기획자, 드라마트루기, 스태프, 평론가, 코디네이터 등만 이익을 취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적당이 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최근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모든 것은 역량있는 예술가가 훌륭한 예술창작을 할 수 있도록 뒤받쳐주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심의과정에서도 전문성, 공정성, 현장성을 갖춘 심의위원들을 구성해서 정당한 결과를 내도록 해야겠습니다. 심사를 한다는 것 자체를 무슨 감투를 쓴 것처럼 행동하는 이도 없지 않는데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역량있는 무용가로 하여금 훌륭한 작품을 낼 수 있게 하는 과정에 불과한 겁니다.
정수동 _ 문화예술, 무용이라는 분야에서 제일 최상위로 인정받아야 할 사람들은 안무가, 창작자라고 생각해요. 안무자 이름으로 공연을 하지만 그 안에 많은 기획자와 스태프들이 동원되는데, 그 중심이 무척 중요합니다.
저는 작년에 서울문화재단의 「유망예술지원사업 닻(DoT)」에 선정되어 올해 2차년도 진행 중입니다. 만 35세 이하의 안무가들이 지원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과거에는 1년 내에 진행해야 하는 사업으로 공연까지 올라가는 형태였는데, 2017년도부터 1~2차년도 사업으로 나뉘어서 안무가에게 2년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무가 개인에게 2년간 지원을 해주면서 작업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그 과정에서 안무가 본인의 작품을 보다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들인 것 같습니다. 1차년도 부족했던 과정들을 다음해에 더욱 완성도 높은 작업으로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 과정들은 단기적인 1회성 기회보단 안무가 개인이 작품에 대한 연속적인 고민들, 협력, 책임감 등 많은 것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이끌어 가도록 만들어줍니다.
심정민 _ 일종의 기획을 세워 놓고 거기에 무용가들을 끌어 들여 일련의 사업을 펼치는 경우도 많은데 거기에 끌어들일 수 있는 무용가 수준이란 것이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겁니다. 실력자들이라면 예술적 정체성과 독창성이 탄탄하기 마련인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고 해서 시킨 대로 하지는 않습니다. 제발, 100명의 예술가가 있으면 예술에 있어 100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예술에서 도대체 뭐가 주일까요. 바로 훌륭한 예술 작품입니다. 따라서 이를 창조해내는 역량있는 예술가에 대한 존중은 필수적입니다.
정석순 _ 그만큼 안무가의 위치와 책임이 중요한 거 같아요. 힘들어도 기획의 단계에서부터 작업에 대한 안무가의 준비가 철저해야 하고 그에 맞춰져서 스탭이나 협업하는 아티스트가 붙어야 하는데 단순히 지원금 신청에 맞춰진 사례가 많은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이동하 _ 신기한 것은 공연이 올라가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연습을 하고 제일 수고한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공연 출연료는 가장 적게 가져가는 시스템이 무척 아이러니하더라고요. 물론 사진작가 영상작가 조명감독 무대감독 기획 하시는 분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들에 비해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사실인데 출연료는 가장 적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정수동 _ 창작 작업을 하다보면 소극장, 중극장, 대극장의 단계들을 거치잖아요. 그러면서 본인의 안무 작업에 잘 스며드는 스태프들을 찾는 것도 안무를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안무가의 아이디어와 컨셉을 공유하고 그것이 무대에 구현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스태프의 중요성. 그들과 때론 부딪치기도 하며 그 과정을 거쳐야 될 것 같은데, 지원사업의 폭이 커지다 보니 스태프들을 일단 채우고 봐야 하기 때문에 많은 활동을 하는 스태프들부터 인맥으로 연결되다 보니까 끼워 맞추기 식이 되는 듯해요.

융복합 시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지원
심정민 _ 컨템포러리댄스의 주요 특질이라면 장르나 분야 간 융합과 통섭을 들 수 있습니다. 이제 춤작품이라고 해서 안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양한 매체들을 끌어들여 융복합된 창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적인 창작자들의 작품을 보면 상상한 그대로가 무대 위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무대에다가 엄청난 양의 물을 뿌리거나 불을 내기도 하고요, 무대 자체를 전면적으로 개조하기도 합니다. 이런 작품들을 제작할 때 테크니컬한 문제에 대해 말이 없었을까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이 나왔더라도 창작자가 강력하게 원하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실현시켜주려고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명작을 나오게 하는 원동력인 겁니다.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내한한 작품들만이라도 보세요. 더군다나, 해외 무용가가 요구하는 것은 국내 무대에서도 그대로 재현하는데, 비슷한 요구를 하는 국내 창작자들의 요구는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정수동 _ 그러한 가능성을 위해선 지원비의 문제를 들 수 있어요. 또한 무대에서 함께 존재하는 스태프들이 가능성을 열어줘야죠. 많은 지원비가 들겠지만, 생각의 여지를 열어 주는 스태프들이 필요해요.
정석순 _ 사실 저도 지원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가 뭐냐면, 너무 복잡해요. 하나하나 지원 폼에 맞춰서 일일이 해야 하는 게 힘들어요. 스태프, 드라마 트루기 등 필요한 부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게 너무 일반적인 게 돼버리는 것 같아요. ‘이런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지원 서류를 내기가 좀 두려워요.
그리고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그 다음 현실적으로 이걸 어디서 연습하고, 어디서 리허설을 하고, 이 장치는 어떻게 쓰고 이런 과정들이 너무 복잡해요. 제 돈이 엄청 많이 들어가더라도 페스티벌이 더 마음편한 거예요. 일단 제가 안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잖아요. 홍보도 해주고, 극장도 대관해 주고, 스태프야 제가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저는 페스티벌에 낼 작품을 작업하는 게 훨씬 편해요. 물론 지원금을 받아서 하면 더 좋겠죠. 무용수들에게도 돈을 더 많이 줄 수 있고, 제가 상상하는 것도 더 실험 많이 해볼 수 있고요.
이동하 _ 저도 그 부분이 안타까워요! 작년에 저는 공연 중에 하늘에서 계속 돈이 떨어져서 돈 위에서 춤추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는 작품을 올렸어요. 30분 공연이었는데 30분 동안 돈을 계속 떨어뜨리고 싶었지만 30분 동안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하셔서 작품을 수정해야만 했어요. 30분 동안 일정하게 돈을 떨어뜨리려면 다른 장치가 필요한데 그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투자되어야 했거든요. 제가 받은 지원금으로는 어림도 없었죠. 안무자의 상상을 무대에서 실현시키는 것도 결국에는 돈이 투자되어야 하는구나 하고 그때 느꼈어요.
정수동 _ 뭔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지원 사업의 지원비를 받으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상상을 크게 만들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은 면도 있긴 한데, 정책을 좀 바꿔서 더 활동력이 있는 안무가들한테 지원금을 분배해도 괜찮을 듯해요. 젊은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장은 상당히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요. 더 열심히 해야 할 듯합니다.
심정민 _ 허리 세대부터 굵직한 지원프로그램은 사실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산실」 밖에 없어요. 무용가들이 거기에 엄청나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압니다. 시연회만 해도 천오백만 원을 받으니까. 그런데 거기에서조차 아직 한국을 대표하는 레퍼토리를 만들 수 없는 역량이 부족한 젊은 무용가들이 시연회까지만 가도 좋다고 출사표를 내고 실제로 천오백만 원을 받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품의 퀄리티가 다르기 때문에 동급 레벨로 논의할 수 없는 무용가들이 있습니다. 심의에서 최상급 그룹에 A, B, C, D란 무용가가 있으면 관점의 차이로 ‘나는 A가 더 낫다, 나는 B가 더 좋다’ 하는 건 괜찮아요. 이런 건 관점의 차이니까 논쟁을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하위 그룹에 있는 무용가를 뽑으려고 떼를 쓰는 심의위원이 있으면 황당한 것이죠. 최하위 그룹의 무용가를 뽑으면 최상위권의 누군가는 떨어지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잖습니까. 더군다나,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 때 다른 무용가들이 ‘아 저렇게 해도 뽑히는 구나’하는 그릇된 판단을 하게 만들 수도 있으므로 무용계로 돌아가는 피해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수동 _ 이런 말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서류 같은 걸 좀 보고 심사하는 데 참고하지 않나요?
심정민 _ 지원 서류는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하지만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면 오판을 할 수 있습니다. 서류만으로 한 무용가의 작품 퀄리티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획자나 드라마트루기, 이론가, 평론가 등이 대신 서류를 써주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성과물은 결국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그 성과물을 잘 낼 수 있는 최상의 지원자를 뽑는 것이 가장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겠죠.
정수동 _ 그렇지요.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한 안무가 선배가 과거 활동을 하던 당시의 일을 우연히 들었는데, 그 당시 다수의 해외 안무 페스티발에서 초청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하셨어요. 국내 지원 사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지원서의 준비과정에서 몇 차례 심의평가에서 떨어졌다고 들었어요. 결국 안무가의 작품 활동도 필요하지만 서류상의 형식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창작자라면 활동의 주(主)와 부(附)를 가늠할 수 있어야
심정민 _ 지원 여부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어요. 근래 들어 일반인들이나 장애인들과 함께 하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프로그램이 사실상 액수가 꽤 높은 것들이 있습니다. 창작의 스트레스를 상대적으로 덜 받으면서 단체 운영에도 도움이 되니까 많이들 합니다. 문제는 이게 주가 되어버린 듯한 창작자도 생겼다는 겁니다. 예술적인 마인드와 경제적인 마인드는 뇌의 거의 반대편을 이루고 있는 듯해요. 무조건 배고픈 예술가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와 부의 균형은 맞출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계속해서 창작의 예술적 퀄리티를 유지하고 싶다고 한다면요.
이동하 _ 아무래도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죠. 힘들죠. 예술 활동을 계속 하고, 작품을 계속 올리고 싶은 마음은 너무 많은데,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많죠.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함은 항상 있어요. 작년까지는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서른 살까지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막연한 거잖아요. 그런데 올해 들어서 앞으로 뭘 해야 되지, 뭘 먹고 살지 하는 이런 걱정이 들어요. 저는 상대가 없어서 그렇지, 결혼은 무척 하고 싶거든요.(웃음) 딸 낳고 재밌게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뭘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이 계속 생기죠. 항상 불안정하니까요. 삶이라는 것 자체가 완전한 건 없지만요. 그래서 그냥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자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고요.
심정민 _ 이게 우리나라 무용계의 구조적인 문제점인데요. 외국에서는 오히려 젊었을 때 무용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깊이 있게 고민을 하고, 이후 재능과 역량을 인정받고 단계를 올라설수록 안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받침을 받게 됩니다. 극장, 기획자, 스태프진, 지원재단, 후원자 등이 유기적으로 창작자들을 받쳐주는 것이죠. 그래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건 아니지만 자기 작업을 매년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받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힘든 것 같아요. 기대는 커지는데 재정적으로는 더욱 어려워지고… 지원프로그램부터가 검증된 무용가들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원로든, 갓 시작한 신진이든 매년 똑같은 라인에 놓고 심의를 하는데, 지원프로그램 자체가 좀 분류를 해서 심의를 하고 혜택을 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신진들만을 위한 갖가지 지원프로그램을 만들게 아니라요. 허리세대를 위해서는 창작산실 같은 굵직한 지원프로그램도 좋지만 상주단체를 좀 더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프랑스에는 20개 이상의 국립현대무용단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우리 실정에 이를 따라하는 건 어려우니 만큼 대안으로 상주단체를 통해 단체 운영에 도움을 주는 것도 고무적이라고 봅니다.
정석순 _ 제가 이쪽으로 정말 생각을 안 하고 살았나 봐요. 저는 사실 지원금 자체를 생각을 안 하고 했어요. 왜냐하면 너무 어릴 때 그걸 크게 느낀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건 내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된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 됐어요. 지원금을 받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다 좋지만, 저는 그게 결과적으로 가치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요즘 더 대중성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거든요. 지원금을 받아서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해도 그 안에는 예술성도 있을 수 있고, 대중성도 있을 수 있으니까 평가가 무척 모호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온 다음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계속 끌고 가려면 누가 밀어주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오래가야 된다고 생각 하거든요. 비단 무용계뿐만 아니라 예술계 전체에서도 가치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먼저인 것 같아요.
지원금은 삭감되고, 많아지고 그러지만, 저는 사실 작품의 가치에 희망을 품고 있거든요. 무용계, 예술계 안에서의 좋은 작품의 가치가 어떻게 그 다음 연결고리, 우리 삶, 우리가 활동하는 환경으로 이어질지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대중성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저는 사실 좋은 작품이 나온 후에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경제적이든 어떤 부분이든 가치를 이끌어내야 그 아티스트가 성장하고,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더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작품이 나와서 외국에 나가고 투어를 하고 그게 다가 아닌 것 같거든요. 제가 2012년 정도부터 4~5년 동안 뉴욕에서 지원금 한 푼도 안 받고 20회 정도 공연을 했었어요.
심정민 _ 재원은 어떻게 충당했는지요? 결코 쉽지 않을 텐데…
정석순 _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만들어냈죠. 저도 작품 활동을 한참 할 때 4년 동안 거의 모든 페스티벌에 다 참여했어요. 1년에 한 2~3천만 원씩 썼던 것 같아요. 한 4년 동안은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감사하게도 일이 많아서, 주말 없이 낮에는 무조건 항상 일하고 저녁엔 항상 리허설하고 그랬어요.
심정민 _ 이런 분들이 자생력이 강합니다. 어디에도 기대지 않으니까 크게 영향을 받거나 흔들리지도 않고요. 지원금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작품이 널뛰기를 할 수도 있죠. 많이 받으면 맘껏 하다가 못 받는 경우 휘청거리기도 하고요. 정석순 씨처럼 자생력 있는 분들은 화려하진 않아도 자기 페이스를 꾸준하게 유지하면서 흐트러지지 않은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무용계에서 이렇게 살아가기가 힘들거든요.
정석순 _ 지나고 보니 저도 그게 무척 감사해요. 어떻게 해서든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가 작업을 계속 해왔고, 외국도 계속 나갔고요.
제가 작업을 할 때마다 좋은 작품이 무엇인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 늘 고민을 하는데, 고민을 하다보면 대중성에 대한 고민도 하게 돼요. 그런데 제가 대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티스트적인 부분이 있는지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작품마다 대중성에 맞춰진 작품도 있고, 예술성에 맞춰진 작품도 있고, 공익적인 목표에 맞춰진 작품도 있고 목표가 다 다르잖아요. 그렇지만 목표에 따라 작품이 다를 뿐이지, 모든 작품은 가치가 커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은 도리어 예리하고 어려운 관객
심정민 _ 대중성 얘기가 나왔는데, 대중성을 잘못 이해하는 무용가들이 쉽고 감각적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만 대단한 착각입니다. 엘지아트센터에서 피나 바우쉬 작품을 올릴 때마다 일반 관객이 엄청나게 들어서고 때론 기립박수까지 나옵니다. 따라서 대중의 감상 수준이 낮다고 여기면 오판하기 쉬운 것이죠. 어렵고 난해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면 누구나 감흥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특히나 무용예술을 관람할 정도의 대중은 상당히 지적 수준이 높은 분들이라고 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대중이 가장 무서운 관객인 것 같아요. 예리하고 객관적인 눈을 가진…! 무용계 내부에 있는 관객들은 서로 고생하는 일가친척 같은 관계라 아무래도 감안을 하고 볼 수밖에 없거든요.
정수동 _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해요. ‘작품의 가치라는 게 뭘까, 티켓 파워인가? 무용계 외부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게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데요. 극장 밖을 벗어나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관객들이 발걸음을 해서 감흥을 받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우리는 어쨌든 공연을 올려야 하는 행위자들이니까요. 그건 계속 물음표인데, 안무가로서 창작자로서 고민하고 노력해야 되는 부분인 듯해요.
이동하 _ 무용공연이 어떨 때는 집안 잔치인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그러다 보니까 공연이 끝나면 허하더라고요. 내가 무용계 안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나의 존재가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사회로 나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아직 생각하고 있는데,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어요.
정석순 _ 사실 무용예술이 소비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좋은 작품이 더 좋은 작품이 되고 가치가 생기는 것 같아요. 또 우리는 어쨌든 무용계에서 허리 세대로 성장을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우리 세대 안에서 변화가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원금은 사실 우리는 잘 몰라요.
심정민 _ 우리나라 무용가들의 지원금 의존도는 상당히 높습니다. 그걸 상대적으로 줄여가야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기업 후원이나 개인 후원 유치, 일반 관객들에게 티켓 판매, 갖가지 교육프로그램 및 예술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 수입원을 다각화시켜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현재 지원금 의존도가 80~90% 정도라면 30~40%로 낮추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중성 확보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불가능하다고만 할 게 아니라 정석순 씨 같은 경우에는 이미 실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 수준과의 격차는 어디에서부터 야기되는가
심정민 _ 예술성에 대해 한 번 냉정하게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순회공연을 온 작품들을 최근 몇 년간만 살펴보도록 하죠. 2013년 시디 라르비 세르카위과 데미안 잘렛의 『바벨(Babel)』, 2014년 호페쉬 쉑터의 『썬(Sun)』, 2015년 올리비에 뒤부아의 『비극』과 크리스티앙 리조의 『실화에 따르면』, 2016년 아크람 칸의 『데쉬(Desh)』, 2017년 드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위대한 조련사』 등이 국내 관객에게 세계의 무용 경향과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경이로움과 함께 자괴감까지 이끌어냈습니다. 왜 이런 작품들이 국내에는 안 나오는 걸까요. 물론 근원적이고 본질적으로는 창작의 고유성 확립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동작 구성만큼 주제 의식과 개념 탐구에도 집중력을 갖춰야 하며, 세계 무용경향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도 필요하고, 융복합의 진정한 의미 파악과 실천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이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동하 _ 저는 일주일 전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무용이라는 게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듣고 공부도 해야 되지만, 나에게 3억 원을 주고 작품을 만들어보라고 했을 때 내가 어떤 작품을 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제작비를 준다고 하면 내 멋대로 늘 상상하던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상상을 무대화할 때, ‘이거 안 되는구나, 이번에는 돈이 5백만 원밖에 없어’ 하면서 배제하는 것들이 많거든요. 상상의 그림들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되면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해외 단체들의 좋은 작품이 많기 때문에 돈을 많이 주면서 불러 오는 것도 있지만, 한국 안무자들을 육성해서 그 작품을 해외로 수출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정작 후자보다는 들여오기 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안타까워요.
정수동 _ 우선 첫 번째로는, 제 나름대로의 대안은 작업의 활동 영역을 더 넓히자는 거예요. 극장을 벗어나서 다른 환경에 적응해보자는 거죠.
두 번째로는 작품들의 무대 사이즈나 설정에 대해서, 저는 숫자 개념이 서른 살까지만 해도 전혀 없었거든요. 요즘에서야 겨우 생겼어요.(웃음) 저 와이어의 활용과 비용, 무대에 물이 떨어지면 비용이 얼마나 들고 하는 개념이 없었는데, 이제는 이 정도 설정이나 사이즈면 비용이 얼마가 나오겠구나 하는 걸 대략 알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것이 지원 사업을 통한 현장에서의 긍정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고요.
안무적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한 우물만 계속 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페스티벌, 무대라는 메커니즘 안에서 제가 관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확장된 곳에서 안무가의 생각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극장에서 채워나갈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 외에 돌출되고 실험적인 것들도 가능하잖아요. 저는 스무 살 때부터 항상 극장 공연만 해왔는데, 언젠가부터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머릿속에 있는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도 해볼 수 있고요. 그래서 사이즈에 대한 생각이 점점 확장돼가고 있고, 고민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공부를 해야 되는 건 당연하고요. 그래서 극장이 아닌 다른 곳이나 극장을 변형시켜보는 등의 대안이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예전에 이십대 때는 서울에 있는 모든 극장에 다 서보자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그게 바뀌어서, 내가 섰던 극장들을 다 바꿔볼까 그렇게 구조적인 상상들을 하면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정석순 _ 이게 지원의 문제도 있지만, 한국사회 특성의 문제라 생각해요. 예를 들어 좋은 작품이 나오고 제한 없는 상상이 나오려면, 그 사람들도 다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사는 환경과 삶으로부터 나오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는 당장 내년에 뭐하지, 내년에 뭐 써내야 되지, 빨리 결혼을 해야 되는데, 전세 만기가 다 돼서… (웃음) 너무 틀에 갇힌 삶을 살 수 밖에 없단 말이에요. 상상력을 발휘한 안무 작품이 나오려면, 그 사람은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한국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볼 수 있고, 자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야 한다고 봐요. 물론 유럽이나 미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삶의 여유 측면에서 차이가 있겠죠.
홍상수 감독이 지금 건대 교수잖아요. 그 감독만 유일하게 교수가 되고 나서 작품의 질이 안 변했대요. 그 이유는 뭐냐면, 그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부유했고, 사실상 사회의 제도나 사회의 위치에 있어서 자유롭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서 질적인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간혹 어떤 분들은 한창 열심히 하다가 교수 딱 되면 바뀌고요. 그런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저희도 다 꿈은 꿔요. 좋은 작품을 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작품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그 삶이 달라야 된다는 거예요.
심정민 _ 사실상 우리 무용계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피나 바우쉬나 지리 킬리안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피나 바우쉬나 지리 킬리안이 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이 있지요. 그냥 우스개 소리로 치부하기엔 뼈아픈 심지가 있습니다. 해외의 선진적인 무용계가 예술천재들의 명작을 셀 수 없이 많이 양산해낼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예술과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높이 사면서 이를 받쳐주기 위한 무용계의 노력이 상당하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사회적, 국가적 노력도 함께 하고 있죠. 이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창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분들이시니 만큼 앞으로 계획을 간략하게 말씀해주시죠.
정석순 _ 저는 계획을 많이 잡는 편이 아니라서, 기회가 되는대로 작품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정수동 _ 저도 열심히 준비해야죠. 국내외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안무가 그리고 무용가가 되겠습니다. 최근 제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하반기에 말레이시아 출신의 무용가와 공동 협력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국외의 아티스트들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 많은 공감과 아이디어들이 생기겠죠. 국내 사업을 통해서 숙박 및 항공권 지원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그렇게 국내외 활동을 하며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요.
이동하 _ 저는 이번에 「모다페」와 「크리틱스 초이스」, 또 빛소리무용단이라고 장애인 무용단에서 안무 의뢰가 와서 작업하고 있어요. 사실 그 전에 요번 「평창 패럴림픽」 안무도 했는데 재밌었어요. 이번 안무는 휠체어 타는 사람 6명을 데리고 30분짜리 안무를 짜야 했는데, 되게 힘들 것 같았지만 끝나고 났을 때 공부가 많이 되고 느끼는 것이 많을 듯해서 수락했어요. 그리고 11월부터 12월까지 한 달 동안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게 하나 있어서, 그 작업을 하고 나면 올해가 끝날 듯해요.
심정민 _ 장애 및 비장애 무용이 예전에는 장애와 비장애 무용수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정도에도 큰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DV-8피지컬씨어터(DV-8 physical Theater)를 이끄는 로이드 뉴슨이 『삶의 대가(the Cost of Living)』라는 창의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장애 및 비장애 무용에 대한 기대를 엄청나게 높여버린 것이죠. 천재적인 예술가가 등장하면 이후 등장하는 창작자에게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예술의 신세계를 보여주는 만큼 감사할 따름이죠.
이동하 _ 그 쪽에서도 원하는 게 항상 휠체어 타시는 분들이랑 전문 댄서들이랑 같이 했기 때문에, 빛소리무용단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해요. 그래서 빛소리무용단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리서치도 하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심정민 _ 오늘 최근 좋은 창작 작업을 하고 계신 정석순, 정수동, 이동하 씨와 함께 젊은 창작자들에게 주어진 풍부한 기회가 그 이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있는바 좋은 작품 선보이시기를 바랍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