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살롱

우리가 흔히 족발이라고 하는 돼지발찜은 돼지의 발 부분의 살을 익혀서 기름을 뺀 한국의 음식이다. 하지만 돼지 족발은 우리나라 사람만 먹는 음식은 아니다. 요리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중국, 일본, 필리핀, 독일, 프랑스, 이태리, 브라질 등 많은 나라에서 애용하는 먹거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족발이 산모의 젖을 많이 생산하는 약용 음식으로 여겼고, 심지어는 네 발로 걷는 동물의 발에 모든 정기가 모인다는 생각으로 기원(祈願)의 의미로도 먹었다. 소도 이와 비슷해서 추운 겨울에는 우족이, 더운 여름에는 소꼬리가 원기를 북돋운다고 계절에 따라 구분해서 먹기도 한다.
족발은 산모의 모유분비를 촉진하고, 불포화지방산의 함유량이 높아서 혈관 내 콜레스테롤 축적을 막아주며, 콜라겐이 많이 들어있어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한다. 특히 숙취 예방, 노폐물 배출, 알코올 해독 등의 효능도 있어 술꾼에게는 최고의 안주거리라고 할 만하다. 족발을 조리할 때 간장, 마늘, 생강, 설탕, 후추, 소주 등 다양한 재료들을 넣는데, 그 외 독특한 재료들과 조리 순서에 따라서 냄새도 덜 나고 더 맛깔 나는 족발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초콜릿색과 단맛을 내려고 카라멜을 넣는데, 그럴수록 족발의 참맛은 사라진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족발은 빛깔이 엷을수록 맛있는 족발이라고 보면 된다. 시골에서 잡은 돼지의 족을 그대로 삶은 걸 먹어보면 돼지 냄새가 조금 역겹지만, 족발의 쫄깃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돼지는 앞발이 뒷발보다 커서 앞발은 대자로, 뒷발은 소자로 파는데, 앞발이 훨씬 맛있으므로 서너 명이 가서 앞발을 시켜 먹는 게 족발을 맛있게 먹는 팁이다.
서울에서 족발로 이름이 난 집이 많지만, 경원집은 함경도 경원이 고향인 1대 주인부터 현재의 주인까지 개업한 지가 무려 7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의 족발집이다. 지금은 재개발로 다 사라진 피맛길과 더불어 서울의 맛을 뽐내던 광화문 교보빌딩 뒤에서 50년 넘게 영업을 하다가 2009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왔지만, 사장님이 늘 한복을 입고 조리하는 전통이 그대로인 것처럼 예전 맛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 집의 족발은 일단 빛깔을 보면, 일부러 인공적인 색깔을 내지 않아 다른 집처럼 짙은 카라멜색이 나지 않는다. 따라서 족발의 맛이 쫄깃하고 기름지면서도 깔끔하다. 특히 새우젓에 찍어 먹는 여느 족발집과 달리 어리굴젓에 찍어 먹는 족발은 이 집만의 특별한 맛이다. 아울러 곁들여 주는 시원한 재첩국은 족발에 소주 한 잔을 하다 보면 자꾸 더 달랄 수밖에 없다.
경원집이 워낙 족발로 유명하지만, 주인장이 손수 부쳐주는 녹두지짐의 아삭하고 고소한 맛도 일품이거니와 시원한 조개탕과 구수한 콩비지도 어느 전문집 못지않은 풍미를 자랑한다. 1대 주인부터 자식에게 안 물려주는 게 전통처럼 되어 있다는 경원집은 이제 현재의 주인이 30년 넘게 하셔서 역시나 자식이 아닌 새로운 후계자를 물색 중이라고 한다. 모쪼록 재벌이나 대형교회의 세습을 부끄럽게 하는 훌륭한 전통을 좋은 분이 이어받아 경원집의 명성을 쭉 지켜가길 고대해 본다.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와 뒤돌아보면 있다. 문의02-734-7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