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조동화 선생은 192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서울대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충북대와 건국대에서 식물학과 생약학을 가르쳤고 유한양행에 근무한 적도 있다. 동아방송 제작·편성부장을 지내고 1976년부터「춤」지를 발행하고 있다. 1989년 춤 잡지가 우리나라 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로 중앙문화대상을 받기도 했는데, 우리「샘터」독자들에게 조동화 선생은 춤 감상법을 이렇게 얘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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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46세를 일기(一期)로 죽은 발레리나 ‘아나 파블로바’를 절정으로 그 찬란했던 고전 발레는 서서히 빛을 잃는다.
파블로바의 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생상’ 작곡 ‘백조’에 맞춰 3분 동안 추는 『빈사의 백조』라는 이름의 소품이다.
이 작품은 파블로바가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닭이 모이를 줍듯 발끝걸음으로 계속 그렇게 하는 단순한 동작의 춤인데도, 이것으로 해서 그녀가 불멸의 무용가로 남게 된다.
어떻든 그가 죽은 후 런던에서는 그의 추도회가 있었다.
이날 밤도 평소 그녀의 춤음악을 맡곤 했던 ‘콘스탄트 란바드’가 생상의 ‘백조’를 지휘하였다.
이 대목, 파블로바의 친구이며 흥행사이기도 했던 ‘휴록’의 기록문이 아주 감명적이어서 항상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오케스트라의 최초의 음악과 더불어 막이 오르면 무대는 캄캄하고 아무 장식도 없으며 사람도 없다. 그저 천장에서 한 가닥 스포트라이트가 지금은 가고 없는 발레리나를 좇아 이리저리로 무대를 밝혔다. 그리고 관객은, 오케스트라가 이제는 영원히 파블로바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그 생상의 ‘백조’를 연주하는 동안 모두 기립하여 침묵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현대무용은 암만 이해하려고 하여도 모르겠다’는 관객들이 있다.
춤은 어떤 종류이든 간에 그것이 마음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그 움직임이 진실된 마음의 말이라면 같은 마음을 가진 관객에게 통하지 않을 리가 없다.
만일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작품 자체의 내용이나 연기력이 작품 이전의 소박함에서 넘어서지 못하였든지 아니면 보는 이 자체의 부정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곁들여 춤이 관객에게 주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말할 수 있다. 즉 작품의 내용과 연기력, 그리고 테크닉의 완숙도(完熟度)….
앞의 것은 현대무용의 경우인데 이 계열의 춤의 폐단은 내용만을 강조하는 나머지 공연예술로서의 즐거움이 없으며, 뒤의 것은 발레와 같은 재현예술(再現藝術)의 경우인데, 아름다움이나 재주는 있어도 내용이 없어 재미없다.
그러니까 훌륭한 춤이 되려면 이 두 가지가 하나의 조화를 이룬 형체여야 할 것이다.
결국 춤의 가장 행복한 관객이 되려면 자기의 상상력과 환상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일이다. 그래야만 감명의 파도가 인다.
춤은 언제가 보는 이 나름대로의 교양과 견식과 수준에 의해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춤 절정(絶頂)의 감정을 무용가들은 ‘울음’이니 ‘눈물’이라고들 말한다. 춤의 최상의 감정이 슬픔을 말하는 표현용어로서 설명되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역설(逆說)인가.
기도의 최상의 감정이 눈물이며, 섹스의 절정의 감정이 울음일 수 있는 그런 것과 연결시켜 생각한다면 본질적으로 춤은 생명이나 영혼에서 출발되는 것임이 믿어지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 무용가 중에는 웃는 표정을 자랑삼아 춤추는 이들이 있다.
마치 웃으면서 기도하거나, 웃으면서 사랑을 나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희열(喜悅)의 표정은 웃음으로 만들어지지 못한다.
쇼나 놀이를 위한 춤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 샘터, 1989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