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살롱

얼마 전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TV역사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20년 전 「팔기군」이라는 소설을 쓴 이후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광해군에 대한 평가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TV쇼에서도 그런 점을 많이 역설했지만 흥미꺼리만 방송되고 그의 공이 편집된 점은 아쉬웠다. 아버지 태종이 정치적으로 문제될 만한 것을 다 해결하였기에 세종대왕은 왕권에 대한 염려가 없었다. 그래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전에는 신성군, 임진왜란 후에는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인해 큰 위기에 빠졌기 때문에 왕권을 지키기 위해 형과 동생을 죽이는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반정이 일어나고 역사에서 임금으로 대접도 못 받지만 요즘의 긴박한 시점에서 가장 교훈으로 삼아야 할 주인공이라 생각된다.
광해군의 가장 큰 공적은 전쟁을 막은 점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부국이면서 군사대국이었던 명나라, 군사대국 일본, 신흥 군사대국 후금, 이들의 조선에 대한 압박을 받으며 임금이 된 사람이 광해군이었다. 명나라에 사대만 하면 국방에 문제가 없었던 이전의 임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왕이 된 것이다. 더구나 명나라와 후금이 전쟁을 시작하면서 양쪽 다 조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상황 속에서 한쪽을 잘못 편들면 임진왜란 후 1/3로 줄어든 국력이 결딴나고 말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립을 지키며 전쟁을 막은 것은 정말 뛰어난 업적이었다.
둘째로 일본과의 수교이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65년 일본과의 수교였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일본이라면 치를 떨었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많은 지식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한 이후 전쟁배상금을 바탕으로 근대화를 시작했다. 광해군도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일본에 사명대사를 보내 국교를 정상화한다. 당시의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생각한다면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로 인해 광해군은 배후를 안정시킨 후 명나라와 청나라의 변화에 집중하면서 이에 적절한 외교를 펼칠 수 있었다.
셋째는 신하들의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명나라에 대한 사대정책을 포기하고 후금을 지지한 것이다. 임란 때 참전했던 광해군은 명나라의 실체를 입으로만 싸웠던 권신들보다 더 잘 알았다. 그는 또한 첩자를 풀어 후금의 실상도 잘 알았다. 그래서 명나라와 후금의 전쟁이었던 사르허 전투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후금의 침공을 막았던 것이다.
넷째는 군사력 강화다. 그는 이전에 함경도에 설치되었던 대 여진정책의 본부를 평안도로 옮긴다. 오늘날 요령성 헤투아라에서 일어난 건주여진족 누루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했기 때문이다. 평양감사가 된 박엽은 명나라보다 발사속도가 빠른 대포를 주조하고 삼수병을 만들어 군사력을 강화했다. 특히 포수들을 잘 조련하여 명나라와 후금이 모두 부러워하고 두려워하는 부대를 만들었다. 이들이 광해군 중립외교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권신들의 반대로 실패했지만 대동법의 시행 등은 획기적이었다. 격동기를 살았기 때문에 많은 잘못도 있었지만 그의 공은 과(過)를 덮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