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지금부터 40여년이나 되는 옛날이야기이다. 그 무렵 나는 모교에서 처음 강의를 맡았었는데 어느 날 놀라운 소문을 들었다. 모교의 젊은 교육학 전공교수가 여학생을 몇 명 성추행하다가 소문이 여성총장의 귀에 들어갔는데 총장 말씀이 ‘이 사람아, 얼마나 시원찮으면 여자문제로 이렇게 소문이 나게 만드냐’ 하고 야단치면서 1년간 미국에 가서 공부나 하고 오라고 도피를 하게 했다. 자신이 여성이고 여성운동 지도자로서 화려한 경력을 지닌 총장으로서 이러한 성추문에 호의적이었다는 소문을 듣고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는 전통사회의 인습을 부정하면서도 남성의 성추행, 성폭력보다는 누구나 먹고살기에 관심을 집중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후 20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이와 너무나 비슷한 내용의 소문을 들었다. 모대학 연극학과의 교수가 자기의 여제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생겼는데 학장이라는 사람이 문제의 교수를 1년간 미국에 가서 공부한다는 조건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하는 소문이었다. 이 소문의 진위는 자세히 알 길이 없지만 문제의 교수가 그 무렵 미국에 공부를 하러 나간 것은 틀림없고 그런 후에 아무런 문제없이 20년에 이르는 교수생활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이 시절에는 한국사회가 빈곤의 질곡에서 벗어나서 경제자립과 민주화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마음만 먹으면 남성의 전제와 폭력을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경제자립과 민주화의 정착에 안도하면서 무사안일한 세월을 흘려 보내던 한국사회가 대규모의 촛불 데모가 불씨가 되어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는 결과로 무섭게 번지면서 적폐와 미투운동이 사회정화를 위한 투쟁으로 선두에 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미투운동이 다른 예술계이면 몰라도 연극계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연극계에서 집중적으로 문제가 터졌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연극계가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많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제작방식이 집단적이기 때문에 자연히 남녀가 부딪힐 기회가 많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다른 예술분야에도 얼마든지 많고 집단적 제작방식보다 일대일 제작방식이 성추행적 사건을 일으킬 여지가 더 많다. 문제는 인간에서 찾아야 한다. 성숙한 인격의 예술가는 이런 추악한 일을 벌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의 미투운동을 통해 드러난 성추행, 성폭력범 중에는 유별나게 대학의 연극전공 교수가 많다. 학생을 인격적으로 교육해야 하는 연극교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누구든지 교수로 나설 때는 예술가보다 인격자로 올바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 교수 중에는 억지로 떠밀려서 교수가 되었다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대개 교수가 부업이다. 교수 월급은 방송 드라마의 1회 출연료도 안된다고 불평한다. 교수를 계속하고 싶다면 돈보다 교수자리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도 교수자리를 단순히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연극교수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마땅히 도태되고 축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