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시대를 초월해서 인간이 춤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춤을 우리 삶을 극복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 마사 그레이엄

1. 삶을 극복하는 상징으로서의 춤
2017년 9월22일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그랜드홀에서 임혜자현대무용단의 무용극 『관봉석조여래좌상에 서서』가 올려졌다. 오랜 세월 관봉석조여래좌상에 얽혀 전해오는 설화적 스토리를 무용극으로 재구성한 대작이다. 천년을 전해오는 공동체의 정서를 새롭게 조명하고 우리 삶을 극복하는 상징으로 새로운 해석을 하고 현대성을 가진 평가를 염두에 둔 작품이다.

2. 예술적 형상화
예술이 현실적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실의 재현을 넘어 인위적 구성이 필수적이라고 칼 브레히트는 말한다. 심층적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표면적 현실을 새롭게 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예술은 ‘재현’이 아닌 ‘구성’을 예술적 형상화의 기본 원칙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데에 관점을 두고 무용극 『관봉석조여래좌상에 서서』의 예술적 형상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은 경산의 북쪽에 위치한 명소로서 ‘갓바위 부처’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대에 조성된 이 불상은 해발 850m의 가파른 팔공산 관봉 위에 위치하고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화폭처럼 둘러처진 암벽을 배경으로 한 불상은 자연환경 자체가 유구한 세월 속에 신성한 공간으로 신봉돼 왔음을 짐작케 한다. 스토리의 모티브를 표상하는 실존물로서 불상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은 14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3. 문화적 배경
경산은 고대국가 압독국의 터전이다. 신라불교를 일으킨 원효의 태생지가 압독이라는 기록이 있고 경산시 삼성산 아래가 설총의 고향이라 하고 원효, 일연과 더불어 세분 성인이 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성현들과 더불어 의현대사를 배출한 곳이 압독국 즉 오늘의 경산이다. 2,000년 전 고대 부족 국가로 건립된 압독국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전해진다. 임당동 고분군, 조영도 고분군, 부적리 고분군에 1,500기가 넘는 고분이 남아 있고, 순장 흔적 속에 금동관, 금동신발 장신구, 금귀고리, 은허리띠 등 5,000여 점이나 되는 유물이 쏟아져 당시 융성했던 문화를 짐작케 한다. 특히 무학산,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압독국의 왕릉급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 내 목관묘에서는 청동거울, 철검, 팔찌 등이 대거 출토되어 압독국의 당시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4. 관봉 정상의 약사여래불과 그 기원
팔공산 화강암 주능선부 동쪽 끝에 해당하는 관봉은, 정상에 위치한 갓바위 부처로 유명하다. 갓바위 부처에게 기도하면 한 번의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기복신앙이 자리잡아 전국적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1400년 전 관봉 아랫마을에 살던 석수장이 무억이 약사여래불을 완성했다 한다. 관봉 정상에 앉아 있는 부처는 거대한 하나의 바위로 대좌와 불상을 조각했는데 머리 위에는 거대한 판석이 마치 관을 쓴 듯 올려져 있어 속칭 갓바위 부처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관봉이 갓바위로 불리는 이유다. 아래 위치한 본사인 선본사 사적기에 이 석불은 선덕여왕 때 원광 스님의 제자 의현스님이 사별한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한 미륵불이라 전한다. 조성하는 동안 밤마다 학이 날아와 지켜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불상의 머리에 갓을 쓴 모습이 학사모와 비슷하여 입시생들의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으로도 이름나 있다. 누군가의 소망을 풀어 주거나 그 영험함을 드러내는 신성한 공간이자 의례와 주술의 대상공간으로서 오늘에 이르러서도 전해지고 고대 압독국의 터전이었던 경산 지역 공동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상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

5. 춤, 미의 실현성
춤의 이상은 재현적 내용이 실재를 넘어, 균형을 통해 미의 실현을 이루는데 있다.
첫 장면의 북가락치기는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스물 다섯 무용수들의 통일감 있는 대형 무대로 균형감의 극치를 이룬다. 스물 다섯이 한 가락을 이룬다는 것은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 가락과 장단이 교감하여 이루는 열정이 우주로 무한한 확장성을 이루어 나가는 듯, 몸이 서늘해지는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충만감으로 가득찬 거대한 스케일로 무대는 시작되었다.
편봉화의 춤은 한국 전통 무용의 서정성을 고스란히 이은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안정된 조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 이상적인 가치보다 현실적인 순응에 비중을 둔 모습이랄까 자신의 정화를 통해 염원하는 우리네 옛 모성을 이어주는 데서 동질감을 이끌었다.
남성 무용수들의 힘과 현대적 춤사위가 역동성으로 무대를 이끌어 변화감에 흥과 신명이 돌아 관객하고 일체감을 이루어 내는 것도 흥미로웠다.

6. 예술과제로서의 춤
칸딘스키는 ‘실재를 가리는 것은 실재에 대한 우리의 친숙함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진정으로 현실을 보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사용하던 소지품이라 하더라도 자세한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어느날 한 걸음 물러서서 본다면 손에 길들여진 그 자체만의 형태와 감성이 미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현실 세계와의 관련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운데 살아있는 감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세계로부터 한발 물러서는 발걸음을 내딛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의 과제다.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보게 하는 힘을 예술은 가졌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기복신앙으로 전해 내려온 ‘갓바위 부처’ 스토리를, 재현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된 실재로서의 예술 작품으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대상에 대해 익숙한 관점을 포기하고 실재를 향한 전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새로운 해석으로 다가가 현대성을 가진 평가를 얻어내는데 무용극 『관봉석조 여래 좌상에 서서』는 대단히 큰 의의를 가진다.
가치있는 주제를 서정성과 극적인 방식의 교차로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 냈고 그에 따라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본다. 특히 무용이 역사와 사회 정서 같은 다양한 맥락과 연대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풍요로운 작품 감상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평가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본다.

7. 예술성과 인문학적 깊이를 지닌 점에서 높이 평가
무용극 『관봉석조여래좌상에 서서』는 감각적으로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다. 피상적 접근으로 감상되는 가치 외에 심층적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술작품은 그 생산 과정 뿐 아니라 수용과정에서도 지적수용이 불가결의 조건으로 한갓된 감각적 감상에 거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심층 의식, 세계관은 물론 예술 자체의 정체성이 예술적 구성 내면에 숨겨져 있고 작품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스토리 배경이 작품의 훌륭한 예술적 이미지를 창출한다는데 주목한다.
이 작품은 한국의 전형적인 모성상을 떠올린다. 삼국이 힘을 겨루던 당시에는 호국의 비중이 가장 컸을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기원 속에 호국보다 모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감상자는 예술가가 만들어낸 작품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한 문화적 텍스트의 의미는 그 텍스트를 만들어낸 예술가나 텍스트 자체에 내재할 뿐 아니라 텍스트를 수용하는 소비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작품의 해석은 작품의 일부만 드러낸 것이고 나머지 의미는 그것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경험과 기대가 지니는 가치는 무대 작품 그 자체넘어서 감상자의 의미 부여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예술 작품에 대한 가치를 판단할 때 인간의 경험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주의 이론을 주창하는 루이스에 따르면 대상의 객관적 속성으로서의 가치와 미적으로 지각하는 사람이 가지는 느낌으로서의 가치를 구분한다. 좋은 경험은 우리의 본유적 가치 경험이다. 본유적 가치란 도구적 가치와 상반되는 것으로서 다른 무엇을 위해 좋은 것이 아닌,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을 말한다. 무용극 ‘관봉석조 여래좌상 아래 서서’는 무대에서 의사소통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심미적 표현수단으로서 춤동작이 자유롭고 다양한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과 모성을 바탕으로 한 주제의식이 개인의 일상적인 감정을 넘어 공동체를 생성해내는 힘의 원천이 되는 작품으로 폭넓은 감성의 연대를 이루어 준다. 시대를 초월해서 인간이 춤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춤을 우리 삶을 극복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마사 그레이엄을 말하지 않았는가.

임혜자 교수가 신체영역의 창의적 예술인으로서 자신을 가꾸고 무대예술을 위해 혼신의 열정을 쏟는 것은, 아름다운 자신만의 움직임을 찾아 열정을 쏟은 몸이야 말로 영혼을 발산하는 악기라고 한 세인트 데니스의 말을 되새기게 한다. 음악 미술 연극의 요소를 다 가진 종합적인 예술로서의 무용극을 창작한다는 것은 무용뿐 아니라 다각적 학문 연구를 통한 이론의 축적은 물론 반 세기에 걸친 자신과 제자들을 통한 무대 실험이 이룬 성과가 아니겠는가?
역동적이며 변화 무쌍한 긴장감을 창출하는 대형 무용극을 보면서 대가의 면모가 여실한 대작을 대한 충만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