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수명은 이제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만큼 예전에 비해 나이 든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이제는 노인의 수가 신생아 보다 앞질러 고령화 사회를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인생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러니까 어른들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는 더욱 성숙하고 건전해지리라는 기대도 해봄직 하다. 그러나 뉴스만 접해도 어떻게 된 것이 시대가 지날수록 더욱 경박해지고 착오가 늘어나고 험하고 거친 일들만 늘어가는 것 같다. 또한 어른이라는 지위에 대한 책임 보다는 이를 악용하는 그저 ‘나이든 사람’들만 늘어나는 것 같아 보인다.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른이 된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이런 모습으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직장, 교회, 평론가회 그리고 무용계 등등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 속에서 다양한 연령대에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어려운 점을 나누다보면 일 보다는 연령대로 나누어지는 인간관계에 때문에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실력으로 겨루어야 할 예술계, 가장 공명정대해야 할 교육계, 가장 거룩해야 할 종교계 역시 나이와 서열이 더 심하면 심했지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 때문에 필요이상의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는 부조리들이 생기기도 한다.

과연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란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이 정의 한 바대로, 어른을 약 다섯 가지의 의미로 내릴 수 있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4.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5.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여기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인식하는 것은 나이가 많은 사람과 몸이 다 자란 사람이다. 그러니까 아무런 검증도 없이 나이가 많다면 무조건 어른으로 모시는 풍조가, 특히 만나자마자 나이, 서열을 묻는 대한민국이라서, 어른이라는 참 뜻을 망각한 사이비 어른들만 양산해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됐든 나이를 오래 먹은 만큼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어른이 어른 될 수 있음은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힘을 빼고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공평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보통 ‘어른’이라면 권리만 생기는 걸로 착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어른으로서의 의무 역시 주어지는, 결코 쉬운 위치가 아니다. 진정한 어른이란,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이를 낳는다고 모두 부모노릇을 잘 할 수 있다고 말 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자신의 일만 잘 하고 빛난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부류의 사람이 우리 사회에 이미 널리 잠복해 있다.

그렇다면 소위 “어른“이라 불릴만한 자격은 요건은 무엇일까.
어른, 나름 그 자격요건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그렇게 많은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은 거두절미하고 어른이 되기 위해서의 가장 첫 번째 요건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를 흔히 남을 놀릴 때나 많이 쓰지만, 먼저 자기 자신을 아는 과정은 모든 4대 성인들이 수행을 하면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일인 만큼 가장 중요한 단계다. 자기 자신을 파악한다는 것은 가장 힘든 일이지만 이 숙제를 풀어야만 다른 것에 대해서도 안다고 말 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다른 건 다 아는데 자기 자신만 모른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상대방을 가르칠 때는 아는 척도, 모르는 척도 말고 그 중간을 유지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지혜와 무지의 중간을 점차 상대를 알아가는 ‘사랑’이라고 했다. 상대방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고 대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는 마음자세, 즉 사랑의 마음을 늘 가지며 대해야 진정한 어른의 마음자세 일 것이다.

연장자를 공경해야 함은 당연하다. 누구나 젊을 때가 있는가 하면 쇠할 때도 있으니까. 그들 모두도 어린이만큼 약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사람 역시 노약자를 대하듯 조심히 대우해야 한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연장자 모두 어른이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흔히들 노인이 되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다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경험을 너무 믿어 몸도 마음도 남의 말이 들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메마른 심장의 연장자는 그저 철부지 아이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해보니 어른 노릇은 의외로 힘들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 하듯 젊은 세대가 하는 행태는 바로 어른들의 행태를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지금 어린 세대들이 영악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어른들의 처신술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각자의 영달만을 위한 행동 하나하나가 어떠한 악영향을 끼칠지 모르고 마음가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어른이라 칭할 수 없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예전보다 못하거나 뚜렷한 목표와 발전 없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면 그 안에 진정한 어른의 유무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4월이 되면 특히 생각나는 분이 바로 조동화 선생님이시다. 그리고 선생님의 부재는 선생님을 더욱 그립게 만든다. 선생님 생전, 자주는 아니지만 주로 토요일 오후에 선생님을 찾아뵙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비해 내가 드릴 이야기가 없어도 선생님을 뵐 때 마다 자주 들르라는 말씀에 의무감으로 계면쩍게 찾아뵌 적도 적지 않다. 뵐 때마다 선생님은 “그동안 뭘 하고 지냈어?”라며 근황부터 물으시는 게 마치 추궁하시는 것 같아 늘 부담스러웠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무언가를 하길 바라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물음이 나에 대해 알아가고 싶으신 관심이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실제로 선생님은 대화 중에 나의 관심사를 알아두고 계셨다가 관련 자료를 주시기도 하셨는데 그때는 선생님의 심중을 깨닫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춤계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선생님과 어떤 의논조차 드릴만한 수준도 못 미쳤다. 지금에야 드릴 말씀도 많겠지만, (아니, 지금껏 계셨으면 드릴 말씀이 여전히 없으려나) 어른의 부재는 생각보다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늦게나마 선생님을 알게 된 것에 내 인생의 행운이라는 생각과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는지의 사이에서 결국 나 자신이 선생님을 닮아가는 어른이 되도록 노력하자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다독여본다.
모두 아다 시피 선생님은 언변이 좋으신 편이 아니셨다. 그럼에도 그분의 말씀에 권위와 힘이 담겨져 있던 것은 말씀에 앞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것이 어른다운 것인지를 늘 고민하면서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생님은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춤이 가장 어울리시는 분이시다.
어른은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정작 인성을 제대로 가르칠 어른이 없어 힘들어져버린 세상이다. 조동화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신 4월을 보내고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한데 모여 있는 5월을 맞이해 선생님이 더욱 더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