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지난달 21일 중국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한 곳인 구이린(桂林) 시내의 강에서 음력 5월5일 단오절(올해는 6월18일)에 대대적으로 열리는 용선(龍船)경주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연습하던 배 두 척이 전복돼 17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사고를 전하는 TV화면을 보면 폭우로 물살이 센 곳에서 한 척이 전복되자 다른 한 척이 구조에 나섰다가 이 배도 전복되는 화를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수심이 2m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57명이 빠져 17명이나 익사했으니 중국 각지에서 용선경주 연습을 하던 수만 명에게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리는 큰 경고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비극적 사고였지만 중국에서 단오절에 대대적으로 행해지는 용선 경기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초(楚)나라의 애국주의 시인 굴원(屈原, BC342~278년 경)의 죽음에서 연유된다는 사실은 흥미를 모은다. 초나라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던 굴원은 날로 융성하는 진(秦)나라의 세력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 가지 건의를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부패한 귀족들의 모함을 받아 강남(양자강 이남)으로 유배를 당한다. 이런 불행을 당하고 쓴 시가 오늘날에도 중국 최고의 장편서사시로 꼽히는 「이소(離騷)」이다. 373행 2,490자로 된 「이소」는 불행을 만나 지었다는 뜻으로 이(離)는 ‘어려움을 만난 것’ 소(騷)는 ‘근심’이라고 후대의 역사가 반고(班固, AD32~92)는 풀이했다.
굴원이 애국시인이었던 것은 「이소」 중 여러 곳에 나타난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서 죽음을 예고하며 굴원의 애국심정은 절정을 이룬다.

다 끝났다
이 나라에서 나를 알아주는 이 없는데
나라를 생각해서 무엇을 하겠나
바른 정치 위하며 손잡을 이 없으니
나는 은(殷)나라 때 팽함(彭咸, 굴원이 숭배한 현인)을 따라 죽으리.
(이수웅 역 인용)

굴원은 초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으로 수도를 잃는 등 수난을 당하자 무력함을 견디지 못해 음력 5월5일 위의 시에서 예고한 것처럼 멱라강(汨羅江)에 투신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굴원이 멱라강에 투신자살한 것을 알게 된 주변 어부들은 굴원의 시신이 물고기에 뜯기는 것을 염려해 댓잎으로 떡을 싸서 만든 쭝쯔()를 강물에 던져 물고기가 쭝쯔를 먹게 하면서 굴원의 시신을 보호했다. 찹쌀을 연잎에 싸서 찐 쭝쯔가 만들어진 기원이다. 어부들은 또 굴원의 시신을 빨리 건져내기 위해 배를 타고 열심히 노를 저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해 용머리를 장식한 배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용선경주가 시작됐다. 이처럼 용선경주는 대시인 굴원을 아끼는 어부들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시작한 것인데 안전 부주의로 17명이나 익사한 것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굴원처럼 불행을 당하며 불후의 문학작품이나 저술을 남긴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중국 최고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 BC145~85)은 스스로 쓴 서문 「태사공 자서(太史公 自序)」에서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으로부터 역사 저술의 당부를 받고 착수 7년 만에 큰 불행을 당했으나 오히려 큰 불행으로 인해 평생작업으로 「사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사마천이 당한 불행은 남성으로서 당할 수 있는 최고의 수치 궁형(宮刑)이었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이유는 흉노족에 투항한 장군 이릉(李陵)이 중과부적으로 어쩔 수 없었음을 변호한 일 때문이었다. 이릉이 8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무기가 떨어져 맨손으로 싸우다 투항한 사실을 들어 사마천은 그를 변호했지만 다른 신하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사형을 언도받았다. 죽음과 궁형의 갈림길에서 사마천은 선친의 당부대로 「사기」를 쓰기 위해 궁형이란 수치를 감수했다.
사마천은 「태사공 자서」에서 “이것이 내 죄란 말인가... 몸은 망가져 더 이상 쓸모가 없구나”라고 한탄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또 다른 불행들을 생각하며 「사기」저술에 오히려 분발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마천은 죽음과 다를 바 없는 불행 끝에 엄청난 업적을 이룬 사례를 「태사공 자서」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문왕은 갇힌 상태에서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곤경에 빠져 「춘추」를 지었다 굴원은 쫓겨나서 「이소」를 썼고, 좌구명(左丘明)은 눈을 잃은 뒤에 「국어(國語)」를 지었다. 손빈()은 발이 잘리는 빈각이란 형벌을 당하고도 「병법(兵法)」을 남겼으며, 여불위(呂不韋)는 촉으로 쫓겨났지만 세상에 「여람(呂覽)」을 남겼다. 한비자(韓非子)는 진나라에 갇혀서 「세난(說難)」과 「고분(孤憤)」편을 저술했다. 「시경(詩經)」 300편의 시들도 대개 성현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마음속에 그 무엇이 맺혀 있었지만 그것을 밝힐 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일을 서술하여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불행 끝에 큰 업적을 남긴 경우는 중국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 초당에서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완성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는 제주도 유배 당시 그린 것이다.
인간이 불행을 당했을 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불후의 업적을 내기도 하고 아니면 자포자기해 술로 몸을 피폐시키고 우울증으로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 2018년은 과거와는 또 다른 격변의 한 해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 일어난 사건만으로도 연말에 헤아려야 할 10대 뉴스가 차고 넘친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미투(#Me too), 드루킹, 조현민 모녀, 박 전 대통령 재판, 이 전 대통령 구속 등.

좋은 일로, 때로는 억울한 일로, 어떤 경우에는 본인의 과오로 인간은 누구도 뜻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좋은 일이라면 그것을 공동체를 위해 유익하게 활용하면 된다. 억울한 일로 인한 불행이라면 신원(伸寃)을 위해서라도 사마천이 발분(發憤)해 「사기」를 쓰듯이 노력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본인의 과오로 인한 것이라면 개과천선(改過遷善)했음을 후세에 전하는 증표로 역사에 남을 업적을 저술이나 작품으로 남겨 보여줘야 한다.

한국은 격변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이런 시기가 우리 무용계, 나아가 예술계에는 굴원이나 사마천, 다산이나 추사처럼 불후의 업적을 만드는 분발의 시기가 되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