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인천시립무용단 전성재 안무 『건너편, Beyond』(4월13~14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3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시립무용단은 근래 들어 동시대적인 한국창작춤에 대한 혁신을 꾸준하게 추구하고 있다. 작년 봄 윤성주 예술감독을 맞이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로의 가능성은 더욱 활짝 열려졌다. 윤 예술감독은 국립무용단 시절부터 동시대적인 한국창작춤에 있어 여러 시도를 단행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에 근거한 새로운 창작에서부터 현대춤과의 구분이 무의미한 급진적인 창작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였는데 전자는 주로 자신의 작품들에서, 후자는 젊은 안무가를 등용하여 실현해왔다. 인천시립무용단에서도 이러한 방향성은 유지되는 듯 보인다. 4월13~14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있었던 82회 정기공연 『건너편, Beyond』(전성재 안무)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순환을 담은 윤회라는 개념을 소재로 한 『건너편, Beyond』는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의 경계를 부수는 동시대적인 창작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 전 세계를 아우르는 주도적인 창작춤 경향을 컨템포러리댄스라고 하는데 기존의 무용미학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장르파괴적이고 융·복합적인 실험을 단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현대춤에 발레나 민속춤 혹은 일상적 행위를 접목시키기도 하며, 무용에다가 연극이나 서커스 같은 타 분야를 끌어들이기도 하는 것이다. 새로운 창작춤 경향은 현대무용 계열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나 곧바로 발레나 한국춤에도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한국춤과 현대춤 사이에 경계를 부수는 『건너편, Beyond』 같은 작품은 컨템포러리댄스 시대에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안무를 맡은 전성재는 한국무용을 전공한 후 유럽으로 건너가 현대무용단의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활약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한국춤의 원리적 근간에 지금 이 시대의 현대춤을 입힌 『건너편, Beyond』 같은 작품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낮은 무게중심이나 순환적인 호흡 혹은 맺고 끊는 악센트에서부터 한국춤사위 특유의 원리적 근간을 읽을 수 있으며 전신을 활용하는 움직임이나 관절을 꺾어 쓰는 움직임에서부터 현대무용적인 동작성을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이따금씩 현대춤으로 완전하게 치우치는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한국춤사위의 풍미를 지나치게 상실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솔로나 듀엣도 그러하지만 특히 서너 명이나 대여섯 명의 군무는 서로 면밀한 호흡으로 반응과 작용을 통해 전체로 하나의 춤이라는 구조를 이루어간다. 서로의 움직임으로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안무를 실현하는 것인데 이는 서양의 안무 개념에서 소위 ‘짜임새 있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12명에 달하는 인천시립무용단 무용수들은 안무가가 요구하는 짜임새를 상당부분 구현해냈다. 이전보다 날렵하고 엣지있는 몸놀림에서 훈련의 양과 질을 가늠할 수 있다.
『건너편, Beyond』에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 어딘가를 배회하는 인간 군상들 같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배경 속에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장치나 조명을 제시하는 방식은 최근의 창작자들이 자주 활용하곤 한다. 여기서는 장치를 배재한 채 조명으로만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러 차례 쏘아 올리는 레이저빔과 빈번하게 변화를 주는 라이트들로 말미암아 후반에 이르러서는 다소 과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으며 때론 강한 빛으로 인해 춤의 유려한 흐름이 방해받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조명이 끊임없이 춤과 상호작용하면서 장면 장면마다 중심 이미지들을 생성하기 위해 분투했다는 점은 읽혀진다.
이렇듯, 최근의 창작춤 경향에서는 소재나 주제를 일련의 이미지나 분위기로 추상화시켜 놓곤 한다. 『건너편, Beyond』에서도 소재에 대한 내면의 근원적인 동기가 표출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분위기 속에서 인간 군상들이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춤 이미지가 생성되었다. 이와 같은 작품에서 내러티브나 인과관계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본질과 더 멀어질 수 있으며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편이 보다 현명하다. 마치 추상화(抽象畵)를 감상하듯 말이다.
인천시립무용단이 발탁한 전성재의 경우 창작자로서 극복해 가야할 과제가 없지 않으나 안무력과 같은 기본 요소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무엇보다도 동시대적인 한국창작춤의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려는 인천시립무용단의 확고한 목표의식을 『건너편, Beyond』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

* 보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자 하는 「한국현대춤 작가12인전」(4월3~8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1987년 시작된 「한국현대춤 작가12인전」이 올해로 32회를 맞이하였다. 초창기에는 활동의 중심 세대들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10년, 2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점차 최고 연령층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한국현대춤 작가12인전」의 참가 무용가들이 지나치게 높은 연령대로 올라가면서 초창기의 신선한 작가정신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았다. 근래 들어서는 이러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좀 더 아래 세대들에게 참가의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올해 「한국현대춤 작가12인전」의 경우 (공연 순으로) 한정미, 김성훈, 조원석, 장윤나, 전혁진, 정신혜, 최소빈, 안영준, 이준모, 마혜일, 이고은, 김영미라는 참가자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서 4월7~8일에 공연한 네 명의 무용가를 조명하고자 한다.
이준모의 『다비2』에서 ‘다비’는 불에 태운다는 뜻으로 죽은 이의 시신을 불에 태워 그 유골을 거두는 불교의 상례절차를 의미하기도 한다. 잔잔한 수면 아래서 요동치는 소용돌이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생(生)에 대한 미련, 죽음을 미루고 싶은 욕망, 사사로운 갈등과 번뇌 등을 담은 움직임이 펼쳐진다. 이는 순환적인 호흡을 유지하면서 웨이브, 파동, 나선형의 움직임으로 실현된다. 마침내 강하게 맞잡은 두 손과 낮게 읊조리는 구음을 통해, 모든 것을 감내하고 끌어안는 그럼으로써 모든 것을 비워낼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간다. 그 순간 느끼는 완전한 자유는 생(生)의 희로애락을 초월한 것이리라.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이준모의 그림자나 심연 혹은 페르소나로 작용하는 검은 세 남자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어둡게 처리되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마혜일의 『결-나의 춤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선형성과 정확한 박자감이 두드러진다. 이는 오랫동안 예술중학교나 예술고등학교의 전임교사를 한 무용가들에게 왕왕 볼 수 있는 특질로서 선형과 박자를 정확하게 가르쳐야 하는 기본자세가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크지 않은 신장이지만 작은 얼굴과 긴 사지로 인해 전체적인 프로포션은 좋았는데 이로 인해 정돈된 춤의 미감은 한층 두드러졌다. 따라서 그녀의 춤의 결은 매끄러운 편이었으며 이따금씩 보다 거칠게 살아있는 춤의 결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다.
이고은의 『명&암』은 여성무용가로서의 삶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무대와 그 이면의 어두운 현실을 대비하여 그려낸다. 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중년의 여성무용가라면 으레 느낄 수 있는 대외적인 성공 이면에 여성으로서의 각박한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 화려한 동작 기교나 안무 대열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진솔한 표현적인 춤이 펼쳐졌다. 하지만 내면의 진지한 표출에 있어서 신선도 높은 안무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고려해봐야 한다.
김영미의 『어바웃타임(The about time)』은 시간의 아주 작은 단위들이 모여 삶의 일상이 되고 이는 곧 인생이 된다는 것을 감각적인 춤 이미지로 그려간다. 대담한 검정 시스루 의상에서 위화감이나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용수로서의 자태는 잘 다듬어져 있었다. 유연한 웨이브와 절분적인 꺾기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춤사위는 밀도와 정교함을 함양하고 있다. 50대 중반에 들어선 김영미가 무용가로서의 관리에 얼마만큼 신경 써서 노력해왔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액자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몸짓이야말로 주제를 함축한 결정적 장면이 되었다,
이준모, 마혜일, 이고은, 김영미는 올해 「한국현대춤 작가12인전」에 참가한 무용가들 중에서는 가장 연령대가 높은 축에 속한다. 절대적인 나이가 젊다고는 할 수 없으나 여러 해 전에 거의 원로급으로만 구성되었던 경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현대춤 작가12인전」이 앞으로 40년, 50년을 지내면서도 작가적 신선도를 유지해가고자 한다면 지금과 같이 보다 아래 세대들과 소통해가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