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귤의 섬 제주도가 바나나 재배에 다시 나선다. 1990년대 초 ‘과일 수입 개방’ 이후 수지를 맞출 수 없어 사라졌던 제주도 바나나가 최근 “위생적이고 당도나 식감에서 경쟁력이 높아” 농가에서 다시 재배에 들어갔다. 제주도 바나나는 수입 바나나보다 2배 정도 가격이 비싸지만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판로 걱정은 없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바나나가 다시 생산된다고 해서 바나나를 영원히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짧으면 5년, 길면 10년 내에 바나나가 멸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응용생태학자 롭 던의 「바나나 제국의 몰락」은 바나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먹을거리들이 인간의 탐욕에 의해 획일화·단순화되어 가는 과정을, 종래에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파괴될 자연의 질서에 대해 풀어낸 책이다.
먼저 바나나부터 보자. 1950년대 중앙아메리카는 당시 소비되던 바나나 대부분을 수출했고, 그 중 과테말라는 핵심 지역이었다. 하지만 과테말라 바나나 농장 운영은 미국 기업 유나이티드프루트 사의 몫으로 “크기와 맛이 똑같은 예측 가능한 작물”, 즉 “상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만 재배했다. 꺾꽂이로 번식하는 바나나의 재배 방식은 경제적으로는 이점이 많았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겨우 “바나나 하나를 죽일 수 있는 어떤 병원체가 바나나 전체를 다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바나나에 치명적인 파나마병이 돌았고 ‘그로미셸’ 바나나는 멸종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거대 기업들은 품종을 ‘캐번디시’ 바나나로 바꾸고 이제까지 버티고 있다. 이제까지 버틴다고 한 이유는 캐번디시를 대체할 바나나 품종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나마병을 옮기는 병균은 진화했고, 그걸 이겨낼 것 같았던 캐번디시도 전 세계에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다.
바나나뿐 아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점차 생산량을 중시했고, 그 결과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높은 품종만이 살아남았다. 전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는 감자는 물론 북아메리카의 옥수수, 유럽의 밀, 아프리카의 카사바, 아시아의 쌀 등은 점차 한두 가지 품종 외에는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 정작 위험은 이때부터다. 바나나에서 보듯, 한두 가지 품종만 남겨진 각각의 작물들이 더욱 더 강력해진 병충해를 이겨낼 수 없다면? 어느 한 지역만 살아남을 수도 없다. 비행기와 배로 빠르게 연결되는 지금, 병충해는 작물의 이동 속도보다 빠르게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작물에 닥친 위험은 우리가 농업을 단순화한 정도에 정비례한다”는 저자의 말은 두렵기까지 하다. 병충해라는 원인, 나아가 이 모든 것이 인간 탐욕에 기인한다는 원인은 밝혀냈으되 그 해결책은 미지수다. 원인이 밝혀졌다고 인간의 탐욕이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전 세계가 생산성을 신념 삼아 살고 있으니, 풍요의 시대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그런 세계를 향해 저자는 책 말미에 “식량을 덜 낭비하면 된다. 고기 소비를 줄이고, 버리는 음식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소소하게 참여할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바나나 없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저자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세계를 바꿀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