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지난 몇년 간 만들어진 미국영화들을 보면 묘한 공통점이 눈에 띈다. 백인우월주의가 영화의 소재로 유난히 많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경향에 대해 대체로 짚이는 바가 없지는 않다. 전형적인 사업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미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를 잡아가는 싸구려 백인우월주의를 풍자하는 것이다.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마틴 맥도나 감독, 극영화, 미국/영국, 2017년, 115분)에 나오는 경찰관 딕슨(샘 록웰)은 전형적인 인물이다.
“죽어가는 동안에도 강간당했다.” “그리고 아직 체포를 못했다.” “뭐하는 겁니까? 서장” 이 문구를 읽으면 가장 불편해할 사람은 바로 마을 경찰서장 월러비(우디 해럴슨)다. 그리고 이런 광고 문구를 써 붙여야만 했던, 딸을 잃은 엄마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입장이 곤란해진 월러비는 밀드레드의 집에 찾아와, 사건은 아직 수사 중에 있으며 자신은 췌장암에 걸렸다고 고백한다. 불쌍한 처지를 봐서라도 광고를 내려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밀드레드는 대차게 받아친다. 서장이 죽으면 수사가 중단될 테니 경각심을 깨우치기 위해 일부러 내걸었다는 것이다.
설득을 하려는 월러비와 달리, 흑인을 괴롭히는 데 전념하는 딕슨은 밀드레드에게 고의로 시비를 건다. 광고판을 대여해준 레드 웰비를 괴롭히고, 그녀의 입장을 지지하는 제임스를 ‘난쟁이 놈’이라 부르며, 마침내 그녀의 친구까지 이민법으로 몰고 가 체포한다. 게다가 허리에 총을 차고 거들먹거리며 거리를 활보하지만 딕슨은 엄마 말에 꼼짝도 못하는 마마보이였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인종주의 외에도 미국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이 등장한다. 이민자와 장애인 등의 소외자 혐오와 집단 이기주의가 영화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딸을 잃은 상처로 모진 세월을 살아야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있다.
밀드레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용감한 여성이다. 딸을 잃은 분노 때문에 용감해졌는지 아니면 원래 배짱이 좋았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영화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역할을 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연여우상은 프란시스 맥도먼드에게, 조연남우상은 샘 록웰에게 돌아갔다. 딸의 죽음으로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는 어머니 역과 백인우월주의를 잘 표현한 덕일 것이다. 월러비 서장의 부인 앤 역으로 나온 애비 코니쉬의 연기가 눈에 띄었다. 죽은 남편의 편지를 밀드레드에게 전하러 온 장면에서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엄마를 지키려는 루카스 해지스의 연기도 좋았고 말이다.
내친 김에 작품상이나 감독상까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작품성이 워낙 강력한 작품들이 많아서 꿈을 이루진 못했던 것 같다. 자료를 살펴보니 마틴 맥도나 감독은 아직 영화를 4편밖에 만들지 않았기에 앞으로의 여정에 기대를 걸어본다. 감독의 사회의식이 이 정도 경지에 올랐다면 앞으로 더욱 큰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머니들이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