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살롱

이방원의 아들 세종은 아버지의 정적 정도전이 꿈꾸던 성리학적 이상국가의 꽃을 활짝 피웠다.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은 할아버지가 힘들게 얻은 나라를 성리학자들에게 넘기기 싫었다. 그래서 그는 유학자들이 떠받드는 조카 단종을 제거했다. 이른바 계유정난이다.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을 영월에 유배시켰다가 사육신으로 대변되는 유학자들의 역모가 발생하자 마침내는 그를 죽이고 말았다. 단종의 나이 14세였다.
계유정난의 일등공신은 칠삭둥이 한명회였다. 살생부로 대표되는 그의 책략으로 인해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같은 무시무시한 세력들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능지기 출신 한명회에게는 엄청난 부와 명예가 뒤따랐다. 그의 딸들은 수양대군의 아들, 손자들과 결혼을 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단종의 죽음을 가장 애석하게 생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세종으로부터 특별히 손자 단종을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들은 집현전학자들도 있었지만 단연 단종의 부모였을 것이다. 문약하여 오래 살지 못했던 문종과 그의 부인 현덕왕후. 하지만 그들은 단종이 원통한 죽음을 당할 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귀신세계의 일을 알 수가 없다.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단종을 죽인 세조가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형수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에게 ‘더러운 놈, 나쁜 놈, 죽어라’라는 말과 함께 침을 뱉었다고 한다. 세조는 깜짝 놀라 잠을 깼는데 그 후부터 침을 맞은 자리에서 종기가 생기고 피부병이 심해져 온몸에 농이 흘렀다고 한다. 결국 그는 피부병으로 인해 고통 받다가 죽었다.
단종 사촌인 수양대군(세조)의 아들들의 삶 또한 우연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괴이했다. 세조의 첫째 아들 의경세자(덕종)는 세자 책봉 후 2년 만에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스무 살에 죽었다. 둘째 아들이 세자가 되었다가 왕이 되었는데 그가 예종이다. 그 또한 재위 2년도 채 되기 전 스무 살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뿐 아니다. 세조의 단짝 한명회 딸들의 삶도 이상하긴 마찬가지. 셋째 딸(장순왕후)은 예종에게 시집을 갔지만 아들(인성대군)을 낳은 후 산고로 인해 열일곱 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더구나 그 인성대군마저 5년 만에 죽고 만다. 넷째 딸은 의경세자(수양대군의 장남)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에게 시집을 갔다. (이들 자매는 시댁 촌수로는 조카와 숙모가 되는 이상한 관계가 된다.) 그녀의 시아버지인 의경세자는 왕위를 잇지 못하고 죽고 동생이 왕이 되었지만(예종), 그 또한 요절하자 왕위는 그녀의 남편인 자을산군에게 돌아온다. 그가 성종이다. 성종은 왕위 계승 서열이 4위였지만 그의 장인이 한명회였던 관계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한명회의 넷째 딸은 왕비(공혜왕후)가 되었지만 그녀 또한 별다른 이유 없이 앓다가 열아홉의 나이로 죽고 만다.
결국 단종의 사촌이자 수양대군의 장차남인 의경세자와 예종은 약관의 나이에 요절을 했고, 그들과 혼인관계로 얽인 수양대군의 소울메이트 한명회의 딸들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고 만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섬뜩하다. 다른 사람에게 한을 심어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