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좌담

남성호 (南聲鎬 /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전임연구원)
남종진 (南宗鎭 /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전임연구원)
허동성 (許東星 /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전임연구원)
허영일 (許榮一 / 세계민족무용연구소장•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신태영 (申太永 /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전임연구원,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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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민족무용들을 다채롭게 선보일 20주년 기념공연
신태영 _ 1999년에 개설된 세계민족무용연구소가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무용전문잡지인 「춤」지에서 간담회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작하기에 앞서서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허영일 _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소장 허영일입니다. 한예종의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집행위원장이기도 합니다.
남종진 _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2011년도에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 연구소에 몸담게 됐습니다. 벌써 8년째가 됐네요.
남성호 _ 저도 남종진 선생님과 같이 동 연구소의 전임연구원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공부를 했고, 사실 무용과는 거리가 멀지만 제 전공이 일본 연희여서 연구소와 인연이 됐습니다. 2015년부터 여기서 같이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허동성 _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1999년 연구소 개소 초기부터 연구소의 연출, 기획 작업을 맡아 진행해왔습니다. 중간에 몇 년 공백도 있었지만, 대략 14년 정도 연구소와 관계해 여러 작업을 추진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20주년 기념 공연 연출을 맡고 있습니다.
신태영 _ 오늘 사회를 맡은 저도 역시 같은 연구소에 전임연구원으로 있습니다. 2012년 11월에 연구소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현재는 한국 쪽 파트를 맡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연구소가 20주년을 맞아서 어떤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지부터 소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허동성 _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주년 기념 공연이 있습니다. 학술 포럼도 포함해서 9월 6일부터 9일까지 4일 간 여러 공연장에서 진행됩니다. 첫날은 극장 공연인데,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 이강숙 홀에서 저녁 7시 반에 합니다. 미국 하와이, 인도,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발리, 카자흐스탄, 스페인, 말레이시아, 한국 등 세계 각국의 민족 무용 공연들을 다채롭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둘째 날인 9월 7일에는 오전 11시와 오후 3시 1, 2부에 걸쳐서 공연을 합니다. 이날은 연구소가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추진한 공연을 하게 됩니다. 순조 무자년 때 왕비였던 순원왕후의 음력 6월1일 40세 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의 아들 익종 효명세자가 직접 창사를 했고, 춤은 김창하를 시켜 창제한 것입니다. 그 공연을 9월 7일에 창덕궁 연경당 내원에서 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의 잔치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의례 팀을 별도로 참여시켜서, 당시의 춤은 물론이고 의례 순서, 복식, 음식까지 최대한 고증해서 복원 공연을 시도합니다.
셋째 날인 9월 8일에는 학술행사로, 연구소의 20년 궤적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허영일 소장의 기조 발제로 시작해서, 일본의 하라다 미카, 사토 고지, 다무라 히로미, 모리시타 하루미, 그리고 중국 북경무도대 덩원잉 교수가 참가해서 국제포럼인 ‘발자취 모임’ 을 가지게 됩니다.
마지막 넷째 날 9월 9일에는 오후 7시 반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예술극장에서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1부는 「연경당 진작례」 복원공연을 축약해서 하고, 2부에서는 다채로운 세계 민족무용 공연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특별히 축하공연으로 2부에서는 김해숙 교수님의 가야금 산조 독주, 그리고 기악합주 시나위가 공연될 예정입니다. 그 외에 일본, 인도, 스페인, 카자흐스탄,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의 민족무용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신태영 _ 요약하면, 9월 6일 첫째 날에는 세계민족무용 초청 공연, 그 다음날에는 「연경당 진작례」 공연이 있고, 셋째 날에는 20주년을 기념하는 포럼, 그리고 넷째 날에는 20주년을 축하하는 세계민족무용 공연이 있습니다.
이제 연구소 얘기로 본격적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우리 연구소가 어떠한 계기와 목적으로 설립되었는지, 그리고 설립 당시의 무용계 상황은 어떠했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국내 최초로 민족무용 커리큘럼 개설
허영일 _ 무용계의 상황이라기보다는, 그 때 국내에 무용분야에서는 최초로 이론과가 생겨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지요. 저와 김채현 교수가 이론전공을, 홍승찬 교수가 예술경영을 담당했습니다. 민족무용이 전공인 저는, 실기와 이론을 융합해 참여현장실습으로 이끌어갔습니다. 대학원은 학부와 달리 전문적인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민족무용, 무용과학, 미학비평 파트로 대학원을 나누게 됐죠.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무용 커리큘럼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론과에 개설됐습니다.
그때는 DJ 정권 때인데, 한·일 간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를 해소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뜻으로, 한·일문화정책자문위원회가 설치되었어요. 그리고 문화교류에서부터 시작되었지요. 문화관광부 주도 아래 팀이 만들어졌고, 그때 무용 쪽 전문가로 제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지인이 학교에 1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저는 그 1억 원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면서 여러 선생님과 의논해봤더니, 그래도 소신껏 하려면 연구소를 외부에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해보니, 학교에 재직하면서 받은 것이니 학교 안에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 한·일교류는 만화와 영화 등 대중문화 예술교류로 가닥이 잡혔어요. 하지만 제가 일본 오차노미즈 여자대학에서 처음 논문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한·중·일 삼국에 모두 『춘앵전』 이 있다는 걸 문헌에서 봤습니다. ‘한자문화권’의 전승과 교류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보아, 전통예능과 대중예술을 함께 교류하자는 의견을냈지만 수렴되지 않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한·일교류의 맥은 전통과 현대의 공존으로 끌어간다는 묘한 사명감이 생겼죠. 원래는 일본 궁중춤인 부가쿠를 초청해야 역사성이 있지만, 시기적으로 불가능해서 일본의 노가쿠(노+교겡)에서 교겡을 모리시타 하루미 선생님을 통해서 어렵게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공연 준비는 연구소에서 하고 있었고, 노 무대 설치 문제로 허동성 선생과 동경에 가서 야마모토 도지로 선생을 만났어요. 그때까지 하지 못했던 연구소 개소식을 같이 하자고 말씀을 드렸죠.
그런 과정에서 연구소가 구멍가게에서 대형 슈퍼마켓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신 분은 초대 총장이신 이강숙 총장이세요. 제가 그때 회의를 통해 마련한 정관을 보여드렸더니, 여러 조언을 해주셨어요.

한·일문화정책자문위원회 설치와 문화교류
신태영 _ 그 당시에 국내에 최초로 이론과가 생겼고, 민족무용 커리큘럼이 생겼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게 굉장히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민족무용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허영일 _ 우리 대학교 4년 커리큘럼 중에 ‘에스닉 댄스(Ethnic Dance)’라는 개념은 없었고, ‘포크댄스’란 이름으로 민속춤의 개념으로 대학 교육이 이뤄졌어요. 그런데 제가 하와이에 가보니 민족무용 파트가 있더라고요. 저에게는 무척 새로운 분야였어요. 제가 한국에서 포크댄스는 들어봤어도 ‘민족’, 에스닉 댄스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봤거든요. 그래서 ‘이걸 좀 배워보자,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자’ 마음먹고 시작하게 됐죠.
신태영 _ 그럼 국내에는 ‘민족무용’이란 개념이 아예 없었다고 봐야겠네요?
허영일 _ 그렇죠. 없었죠. 세계적으로는 하와이에서는 이미 민족음악 연구가 있었고, 민족음악에는 또 무용이 수반되잖아요. 거기서부터 에스닉 댄스라는 무용 개념을 쓰게 된 겁니다. 제가 하와이에 간 게 1982년도였는데, 이미 민족무용 커리큘럼이 다 개발돼 있었어요. 특히 하와이는 다민족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자바니스 댄스, 오키나와 댄스, 또 대표적으로는 훌라 등 여러 가지 민족무용들이 커리큘럼에 다 포함되어 있었어요.
신태영 _ 연구소를 학교 내에 설립할 것인지 밖에 설립할 것인지로 갈등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교내에 연구소를 만들기로 결심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허영일 _ 저는 이 학교에 오기 전에 강사로 있다가 교수가 됐기 때문에, 초창기에 이 학교에 감사한 마음이 정말 큰 상태였어요. 그래서 이 학교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넓은 의미로 학교에 연구소를 두기로 결정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런데 또 남편이 중요한 얘기를 해줬어요.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졸업을 한 후에는 취직을 하는 게 관건이라고 하더군요. 한편으로는 이강숙 총장께서 어느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예술교육에만 집중해서 취직까지는 신경을 못 썼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조직을 만들면 일자리가 생길 것 같다고 생각한 거죠. 처음에는 구멍가게처럼 시작했지만 그런 꿈을 계속 가지고 있으니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태영 _ 선생님은 그 짧은 시기에 한·일문화정책교류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하셨고, 한·일 전통 예능 교류도 추진하셨고, 거기에 연구소 설립까지 하셨잖아요.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다 하실 수 있었어요?
허영일 _ 힘이 들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보이지 않는 길이 이미 만들어져 있고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그런 케이스였던 거죠. 처음에는 저도 연구소를 설립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이론과지만 이론과 실기를 접목시킨 현장감이 있는 공간을 연구하고, 세계 여러 나라 민족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관심이 많아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신태영 _ 혹시 그 당시에 그 일들을 다 해야 한다고 마음먹게 한 신념이나 가치관 같은 것이 있었습니까?
허영일 _ 제가 외국에 있을 때 크게 영향을 받은 선생님이 있습니다. 하와이 대학 입학부처장인 수미 멕케이브(Sumi McCabe)이시죠. 제가 그분 면담을 갔는데, 그때 영어가 너무 서툴러서 남편과 함께 갔어요. 그런데 그 분이 남편이 설명하니까 ‘남편이 너무 말을 많이 하니 아내의 영어가 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제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계속 배려하고 응원해주셨어요. 제가 그 분 신세를 많이 지고 귀국하게 됐어요. 제가 너무 많은 빚을 지고 떠나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분이 ‘나한테 신세 갚을 생각하지 말고 네 도움이 필요한 사람한테 언제라도 도움을 줘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제 좌우명, 신념이 된 거죠. 그래서 제가 여러 가지로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도움이 필요하면 항상 달려가서 많은 역할을 했어요. 제가 열심히 하니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이론과 실기를 접목시킨 현장감이 있는 연구공간을 목표로
신태영 _ 민족무용연구소는 사실 최초이지 않았습니까? 민족무용이라는 개념도 처음이고, 연구소도 처음인 상황이었을 텐데요. 그럼 민족무용을 연구하고 공연하고, 널리 알리고 활성화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을 위해서 여러 사업을 많이 하셨을 텐데, 연구소가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해왔는지, 어떤 종류의 공연을 하려고 노력했는지 말씀해주세요.
허영일 _ 제가 ‘민족무용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문화관광부에 처음 서류를 제출했어요. 그랬더니 좌파 느낌이 난다고 ‘민족’이라는 단어를 절대 못 쓰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종족’이라는 단어를 대신 썼어요. 저는 종족이라는 단어는 좀 아닌 것 같아서 이강숙 총장께 임시로 쓰겠다고 했고, 그걸 나중에 ‘민족’이라고 바꾸게 됐죠.
처음에는 그냥 민족무용 커리큘럼만 가지고 북경에서 초빙 교수를 데려왔어요. 그런 과정에서 민족무용과 한국 무용사를 연구하다 보니 ‘항장무’가 나오더라고요. 이 항장무가 무극적인 요소가 있어요. 대사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 학교가 ‘한국예술종합학교’니까 항장무를 가지고 전통예술원, 무용원, 연극원이 협력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그 당시에 국립국악원에서 20년 전에 공연한 작품을 저희가 재구성해서 재공연 했어요.
항장무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 보니 정민 선생을 통해 성무경 선생이 여기에 대해서 논문도 쓰고 연구를 잘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연구소에 성무경 선생을 모셨어요. 그 당시 제가 항장무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도 했어요. 그 이후 성무경 선생 제안으로 학술진흥재단 프로젝트인 인문학 프로젝트를 3년 동안 진행했어요. 아무튼 그런 과정에서 ‘아마 장학생’ 같은 것도 생겼어요. 한국연구재단의 프로젝트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연구소 20년 동안에 14년을 받았으니까요. 그렇게 학술진흥재단의 프로젝트를 받았기 때문에 연구소가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거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죠.

올해 22회를 맞는 세계무형문화재 초청 공연
신태영 _ 세계민족무용연구소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셨는데요. 우리 연구소의 대표적인 공연이라고 하면, 세계무형문화재 초청 공연이 있고, 저희 연구소의 대표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연경당 공연도 있습니다. 특히 저는 세계무형문화재 초청 공연이 정말 의미가 있고 대단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벌써 22번째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허영일 _ 제가 그 당시에 문화재 위원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무형문화재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노 가부키’는 일본에서 전승되는 가장 대표적인 전통 예능이에요. 그래서 제가 문화재 위원이니까 여기에 무용가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허동성 선생이 가서 야마모토 도지로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노 가부키 무대까지 거의 흡사하게 만들었어요. 전반적인 것은 다 허동성 선생 주도로 만들었어요. 아무튼 제가 문화재 위원이어서 그런 무형문화재라는 개념을 접하게 돼서 시작하게 된 거죠.
신태영 _ 그럼 연경당 공연을 처음 주관했던 분이 허동성 선생인 거죠? 그럼 그 당시에 연경당 최초 공연과 관련한 얘기를 좀 해주세요.
허영일 _ 제가 먼저 조금 얘기를 할게요. 우리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인문학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김천흥, 박은영 선생을 비롯해서 여럿이 함께 모여서 ‘연경당 진작례’, ‘궁중정재무도홀기’의 동작을 고증하고, 「정재무도홀기」 라는 책을 번역해서 출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성무경 선생이 연경당에 대한 연구가 대단했거든요. 이거 해보자고 막 내미는 거예요. 그때가 2006년 1월이니까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어요. 이렇게 시작된 연경당 공연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어요. 그 이후 저는 연경당 공연을 국가브랜드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침 이명박 대통령 때 G20 정상회담이 우리나라에서 열렸어요(2010년 11월).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연경당을 살려보자, 국가 브랜드로 만들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기획서를 썼고, 또 외무부에도 기획안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연경당에서 이영희 한복쇼가 진행되었죠.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문화예술은 정치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념이 정책에 의해 휘둘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의궤번역에 대본집필 고증을 거쳐 복원된 「연경당진작례」
신태영 _ 그 당시에 첫 공연이라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 때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허동성 _ 우선 일종의 사후 기록들 먼저 검토했죠. 사후 기록에서 의례 절차, 의궤, 홀기 등의 부분을 이의강 선생이 번역을 했고요. 그리고 그 때 당시 팀장으로 있었던 성무경 선생, 최진영 박사 같은 분들이 프로젝트 팀이었죠. 박은영 씨는 보조연구원이었고요, 그 때 이의강 선생이 주임으로 번역했던 게 ‘홀기’였고, 그 당시에 의궤 부분은 출간이 안 돼 있어서 그것만 별도로 번역을 했을 거예요. 일단 그걸 받아서 대본을 짰어요. 그리고 주변에 의례를 잘 안다는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해서 의례 부분 연출을 했습니다.
시간은 넉넉치 않았어요. 모든 행사가 그렇듯이 1회 차에 처음 시도할 때가 가장 난감해요. 고증하는 부분, 춤을 엮고, 나레이션 하고, 무대에 조명 입히는 것은 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춤은 어떻게 보면 부차적인 것이죠. 전체 행사에서는 왕비에 대한 선물이니까 중요한 부분이겠지만요. 의례를 재현하는 것은 이전에도 큰 공연들이 있는데, 제가 큰 공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공연을 크게 하느니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서 연경당 안채에서 벌어지는 소박하고 작은 잔치, 연회를 하기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규모는 크지 않았어요. 허영일 소장이 기획하실 때, 하려면 제대로 해보라는 지시를 하셨어요. 그래서 연출 입장에서는 춤은 빼고 그 외의 복식, 기물, 무대, 상화, 궁중음식 등 여러 요소들을 신경 썼어요. 그래도 그 때 예산이 어느 정도 확보가 되어서 비교적 여유 있게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를 부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복원’이라는 의미에 맞는 무대 재현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어요.
허영일 _ 세계무형문화재초청 시리즈 덕을 연경당 공연이 본 거예요. 그때는 기업이 후원을 해줘서 그 후원금이 축적돼 있었어요. 무형문화재 시리즈에서, 말하자면 종자돈이 모여서 우리가 연경당 공연까지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 자금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고증하려고 노력했고, 어려운 상황에도 최선을 다했죠. 우리가 무형문화재초청공연을 시작할 때만 해도, 허동성 선생과 제가 동경에 가서 무대를 직접 볼 정도로 연구소에 여유가 있었는데, 연경당 공연을 하면서 가난해졌어요.(웃음)
신태영 _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2006년 1월에 제안이 왔다고 했는데, 그리고 바로 음력 6월1일에 공연을 했으니 그 사이 기간이 몇 달 안 된단 말이죠. 그 사이에 의궤 번역하고, 대본 만들고, 의례 다시 만들고, 전문가 모셔서 고증까지 하고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그 당시에는 연경당이 공개되지 않았던 장소 같은데요?
허영일 _ 그 당시 2006년 1월에는 훼손의 위험 때문에 폐쇄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창덕궁 소장께 꼭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하셨어요. 제가 심의를 받으러 갔는데, 그 때 제가 한 말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옷도 옷장에 오래 있으면 삭는다. 이런 유형 문화재에 사람의 따뜻한 숨결이 닿아야 건물도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인지 허가가 떨어졌어요.
어렵게 허가는 받았는데 급히 서둘러 하다 보니까 같이 하는 분들이 고생을 했죠. 게다가 관람객이 있는 날에는 우리가 또 못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휴관일인 월요일에, 기록으로는 그때가 6월 26일에 저희가 연경당에 최초로 들어갔어요. 거기에 공연당일 비가 와서 허동성 선생이 고생을 무척 많이 했어요. 비가 와도 공연을 늦출 순 없었어요. 우리가 딱 하루 빌릴 수 있었거든요.
허동성 _ 전날 무대 설치를 다 하고 보니까, 비가 올 확률이 80%가 넘더라고요. 그래서 조연출과 같이 천막을 줄에 매달고 바닥에 파이프를 박아서 고정했어요. 물론 허락을 받았고요.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6시쯤에 조연출에게 전화가 왔어요. 천막이 다 무너졌다고 빨리 오셔서 다시 세워놓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급하게 새벽에 가서 천막을 다시 설치했는데, 공연 중에 비가 더 많이 왔어요. 천막은 더 찢어지고 공연자들은 도망도 못 가고 물벼락을 맞으면서 공연을 했어요.
신태영 _ 관객들은 괜찮았습니까?
허동성 _ 우산 쓰고 앉아 있었죠. 그 때 어차피 외부 관람객들은 관람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에, VIP 분들만 한 서른 분 정도 계셨어요.
허영일 _ 그러다 보니 끝나고 나니까 모시옷이 황톳물에 다 젖어서 그 물이 안 빠지더라고요. 돌이켜보니 연구소의 대표 브랜드인 세계무형문화재 초청공연시리즈나 연경당 공연 때, 공연 자체나 관객에게 지장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어요. 마치 어둠이 깊어진 후에 새벽이 오는 것처럼, 폭우가 연구소의 대표적인 브랜드를 더 기억에 남게 해준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아까 얘기했듯이, 한국연구재단(당시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3번 받았잖아요. 9년, 2년, 3년짜리 이렇게 3번을 받았는데, 그게 참 행운이었어요. 그 덕분에 여러 선생님들도 만나게 됐고요. 우리는 무용을 하니까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인데, 무용을 하는 사람들과 인문학을 하는 선생님들과 만나니까 연구소에서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무경, 이의강, 최진영 선생 등이 초창기 연구소 발전에 역할을 많이 했어요. 그 분들이 기초 체계를 세워주셨어요.
지금 세 번째 프로젝트로 아시아 쪽에 한중일 한자 문화권을 연구하고 있는데요. 제가 이 한자 문화권을 마지막 중점 프로젝트로 선택한 이유는, 제가 연구소를 설립하고 이론과 교수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내 역할은 한자 문화권에서 끝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 나머지 역할은 유럽의 민족무용이든, 인디언의 민족무용이든 제자들 몫이라고 했었어요.

무용과 인문학의 만남을 주도하고 성과를 거둬
신태영 _ 인문학 연구자들이 들어와서 공연과 접목해서 연경당 공연도 했고, 그 덕분에 연구재단 프로젝트도 계속 할 수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남종진 선생님께서는 대학중점연구소 지원 사업에서 초창기 멤버잖아요. 그 당시 얘기를 좀 해주세요. 어떤 준비를 했고,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요.
남종진 _ 사실 준비 과정은 제가 들어오기 전에 이뤄져서 제가 정확히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중일 3국의 악무 문화에 대해서 연구하자는 제의를 받고 이름을 올리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사업을 구상하고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앞서 있었던 두 차례의 인문학 분야의 성과가 현장으로 이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보게 된 거였죠. 그래서 단순히 춤만 추는 단체가 아니라 이론적, 학술적인 것들도 지향하는, 그래서 좀 더 내용 있는 연구소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앞선 경험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게 된 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주관하는 여러 사업 중에서 특정 연구소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후에 연구소가 자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바로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 프로그램이에요. 우리 연구소가 거기에 선정이 되었고, 3년, 3년, 3년씩 끊어서 3단계에 걸쳐 9년 동안 사업이 진행되죠. 그래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9년 동안 지원을 받게 됩니다. 지금 8년차가 되었어요. 그동안 우리가 주요하게 다뤘던 내용은,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전통적인 악무 문화에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그 뿌리를 따져보면, 특히 궁중의 악무 문화는 사실은 모두 한 뿌리에서 출발했거든요. 그 동질성을 알아보고, 또 나라마다 이형화, 지역화, 개별화 되는 양상을 6년 동안 살펴봤어요. 최근에는 근현대에 서구 문화를 수용하면서 나라마다 다르게 변모하는 양상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한중일 전통춤 연구, 아카이브 구축과 콘텐츠화 시도
신태영 _ 우리가 처음 3년 동안은 한중일 전통 무용의 본질, 동질성, 개별성이 어떤지 살펴봤고, 그 다음 3년 동안은 어떻게 서로 국제 교류를 이루면서 자국의 문화를 형성해 갔는가를 연구했잖아요. 그리고 현재 마지막 3년차에는 근대, 현대를 걸쳐서 어떻게 미래로 가는가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인문학적 관점에서 무용을 봤을 때, 지금까지 연구를 해오시면서 느낀 점을 말씀해주세요. 아니면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부분, 아쉬운 부분도 좋습니다.
남종진 _ 전통적인 시대, 우리가 역사에서 얘기하는 고대, 중세 시대에는 춤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의식의 한 부분으로서 제도화되어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감상을 위해서, 유희적인 대상으로 삼는 성격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렇게 된 것은 근대 이후로 서양 문명들이 들어오면서 서구적 관점으로 춤을 바라보게 됐고, 춤이 개인화되고 오락화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하면서 조금 어려웠던 점은, 근현대로 넘어오니까 나라마다 개별화됐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난 6년 동안은 우리가 옛날 것들을 문헌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공부하는 데에 익숙해졌는데, 근현대로 넘어오니까 현장에서 함께 따라가야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준비하고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고, 한국, 중국, 일본의 사정이 정말 많이 달라져 버렸고요. 이런 부분들이 연구하는 데에 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허동성 _ 저는 중간에 문화콘텐츠 팀이 새로 개설되면서 그 팀으로 옮겨서 4년 정도 있었어요. 거기서 콘텐츠 구축 작업을 하다가 다시 이 팀으로 복귀를 했습니다. 올해 공연을 위해서 다시 복귀한 것도 있고요.
신태영 _ 콘텐츠 개발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콘텐츠 개발팀이 만들어진 상황과 하는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허동성 _ 원래 프로젝트 기획안을 토대로 하면, 아시아 전통 안무 데이터베이스, 문헌, 시청각자료 구축을 우선적인 중점 연구 대상으로 냈어요. 그러다 보니까 아예 콘텐츠 구축을 해보자고 해서, 문화콘텐츠 구축팀, 개발팀 명목으로 생긴 거고, 원래는 아시아 안무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목적이었어요.
허영일 _ 제가 이 연구소가 구멍가게로 처음 시작했다고 했는데, 연구소를 처음 열 때는 간사 한 명하고 일했어요. 그 당시에 한·일문화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주로 공연 쪽으로 예산을 썼었어요. 그런데 한국연구재단 대학중점연구팀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떠나잖아요. 그래서 제가 20년 동안 중국 소수민족과 일본의 의상과 장신구, 악기 등을 비롯해서 자료를 많이 모아놓았는데 이것들을 아카이브화하고 콘텐츠화하는 과정이 연구소에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서 콘텐츠 연구팀이 필요하다고 제가 요청을 했어요. 그래서 박사급 직원 3명을 뽑아서 시작하게 된 거죠. 제가 떠나든 누가 떠나든 이 연구소를 계속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국가 기관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자료들을 잘 보관해서 아카이브를 만들고, 콘텐츠 개발로 이어져야 하니까 이 팀을 만들게 됐죠.
신태영 _ 사실 자료라는 게 체계화하고 분류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게 되거든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DB 구축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것 같아요. 또 우리끼리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되니까, 아카이브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한 거죠. 사실 연구소는 거기까지만 해도 대단한 건데, 소장님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그 자료들을 가지고 콘텐츠를 개발하려는 생각까지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DB구축 및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팀을 새로 만드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중점 연구 사업에 한중일이 있잖아요. 한국과 중국은 유학이나 관료 체계 등 그래도 문화가 좀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일본은 좀 이질적이에요.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씀해주세요.

일본문화의 구석구석에는 한반도의 춤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어
남성호 _ 일본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얘기하려면 좀 길어질 것 같아서 간단히 얘기를 해볼게요. 일본의 역사를 간단히 보면, 무형 문화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고대 시대에는 중국이나 한반도를 통해서 들어간 귀족 중심의 춤 문화가 형성돼 있어요. 반면 중세에 들어오면 사무라이들의 문화가 중심을 이룹니다. 그러다 근세에 들어오면 서민 문화가 꽃을 피웁니다. 어떻게 보면 신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상층부에서 중류층으로, 중류층에서 하층부로 내려가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게 현재까지도 연결되는 거죠. 일본은 역사적으로 식민 통치를 당한 적이 없어서 중국이나 한국과 같이 문화적 단절이 덜 하다 보니, 중국, 한국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역사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내려오고 있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는 한중일 3국 중에서 일본의 독특한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문화적 단절을 겪으면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과거에 잃어버렸던 것들이 많잖아요. 일본의 일부 학자들 중에는 한반도를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통로 정도로 생각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문화의 구석구석에는 한반도의 춤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아무튼 일본의 전통악무와 중국의 악무 그리고 한국 악무를 서로 비교한다는 취지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저도 거기에 아주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참여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거점이 되는 민족무용연구소로 거듭나는 게 목표
신태영 _ 저희 연구소가 20주년을 맞이했는데, 우리 연구소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계획하고 계신 것이 있는지, 아니면 어떤 바람이 있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저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 연구소가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인문학을 할 수 있는 학자들이 있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러려면 예산이 문제니까 프로젝트도 부지런히 따야 하겠죠. 아무튼 연구 분야가 계속 이어져야 제2의 연경당, 제3의 연경당 같은 걸작이 또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연 분야를 보면, 우리 연구소가 이름은 세계민족무용연구소인데 다 아시듯이 예산이 많이 부족하고, 아직은 세계로 나가기 위한 중간 단계입니다. 현재는 아시아의 거점이 되는 민족무용연구소로 거듭나는 게 목표입니다만, 지금까지의 공연을 보면 대체로 동남아시아나 중국, 일본 쪽으로 제한돼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환경이 어렵긴 하지만, 시야를 넓혀서 남태평양이나 서역 쪽까지 범위를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남종진 _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조금 다른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사람으로 치면 유년기, 소년기를 지나고 성년이 될 때 자립해서 먹고 살 수 있어야 되는 거죠. 그 동안에는 우리가 이런 걸 하겠으니 이런 걸 좀 달라고 했다면, 이제는 남들이 우리에게 이걸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얻어 올 수 있는 프로젝트는 얻어 와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걸 해야죠. 대표적인 예로 수년 전에 문화재청에서 우리가 일을 받아서, 진도에 가서 아시아 샤머니즘 공연을 했잖습니까. 그런 식의 의뢰가 우리한테 자꾸 와야 한다는 거죠. 그게 학술적이든, 공연적이든, ‘저 연구소는 이런 걸 할 수 있으니 맡기자’고 할 수 있는 정도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허동성 _ 좋은 말씀입니다. 연구소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아까 말씀하셨듯이 인문학에 기초를 둔 공연 활동, 실천적인 연구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굳이 제 욕심이라고 한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아시아 안무 관련 콘텐츠도 생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공연을 하려면 제작비가 드니까 하다못해 구상이라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거죠.
내년 이맘때쯤이면 지금 연구소의 9년 프로젝트가 종결되기 때문에 이제 이 연구 활동은 접고 다들 개인 연구실로 복귀하실 텐데요. 조금 전에 피력하신 희망은 후발 연구원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잘 메꿔줘야 가능하겠죠. 그런데 문제는 연구재단을 중심으로 한 지원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면 연구원 확보는 불가능 하거든요. 그러면 지금 있는 중점인력 3명과 보조인력 2명 해서 5명 정도의 팀을 가지고 공연 중심의 프로젝트를 이어가거나, 자료 정리, DB 구축 작업 같은 걸 하게 되겠죠. 그 팀만 남게 되면 이제까지 해온 이런 식의 연구나 공연의 활력이 과연 유지가 될 수 있을까 싶어요. 그건 차기 연구소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죠. 그래서 아무튼 제가 14년 정도 몸담았던 연구소에 지속적인 발전을 바란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남성호 _ 20년이라는 세월이 어떻게 보면 긴 세월이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20년 동안 연구소를 유지해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민족무용연구소라는 게 세계적으로 봐도 사례가 거의 없어요. 무용이라는 특수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의 탈장르화라는 경향을 참고하여 보다 영역을 확장시키는 과욕을 부려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비록 학교 안의 부설 연구소이긴 하지만, 무용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민족박물관 같은 식으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문화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요. 경제적 사정, 사회적 인식 문제도 있지만 발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동성 _ 그런 것들에는 구체적인 재정적 문제가 따르죠. 방금 말씀하신 민족학 박물관도 그쪽의 DB 구축량이나 직원 규모는 비교가 안 돼요. 이건 일개 학교의 부설로 딸린 연구소죠. 예산 지원은 한정돼 있고, 그것도 프로젝트를 받을 때만 제공되는 거라 지속적인 것도 아니에요. 그 지원금을 가지고 20년 동안 연구를 수행한 연구원들이 있었던 거고, 또 그 연구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거죠. 그렇지 않았다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간사 하나 두고 무슨 연구가 되겠습니까? 간사 바뀔 때마다 제대로 임무 교대가 안 돼서 자료 소실도 많이 됐어요. 그래서 민족학 박물관 같은 건 감히 엄두도 안 나는 프로젝트고요.
그리고 이 연구소 이름을 ‘세계민족무용연구소’로 정해놨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따른 한계성이 있어요. 일부 사람들은 에스닉 댄스, 그러니까 민족 무용이 뭐냐, 종족무용과는 뭐가 다른 거냐 물어보는데, 그 개념도 분명히 해야 되겠죠. 또 일반사람들은 민족무용에 대한 개념 인지가 잘 안 돼 있단 말이에요. 이것은 그럼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 있는 아이템인가 하는 의문도 있어요. 유네스코 민족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는 이상 세계무형문화초청 공연 시리즈 아이템으로 부르기가 좀 그렇거든요. 절반 정도는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됐어요. 그렇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선별하는가, 민족무용으로 한정돼 있는 문제도 있고요. 서역이나 중앙아시아 쪽에서는 부를 만한 게 있겠지만, 서구 쪽으로 가면 기독교 문화 안의 춤들은 대부분 중세 때 사라지고 거의 단절됐죠. 그러다 보니까 서구권에는 잘해봤자 발레, 플라맹고 정도 외에는 몇 개 없어요.

‘민족무용’은 그 민족을 대표하는 예술적인 춤을 의미
허영일 _ 이건 중요한 문제니까 제가 부연해서 말씀드릴게요. 제 선배인 한옥희 선생이 쓴 논문을 보면, 1972년에 승무와 살풀이춤이 독일 뮌헨 올림픽에서 처음 소개가 됐어요. 그 때 프로그램이 ‘포크댄스’라고 나와 있어요. 제가 「민족무용학」 에도 썼지만, 포크댄스와 민족무용은 다릅니다. ‘포크’는 말하자면 소고춤 같은 우리가 쉽게 출 수 있는 것들을 말해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춤이죠. 그렇지만 ‘민족무용’은 그 민족을 대표하는 예술적인 춤을 의미해요. 경제대국의 대열에 높이 올라갈수록 무형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요. 중국도 최근에 와서야 관심을 가졌지 그 전에는 무형문화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후진국들도 그 나라의 역사를 통해 전승된 춤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 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무형문화재’라고 불렀어요. 우리가 무형문화재를 주제로 초청시리즈 공연을 스물두 번 했는데, 유네스코에 등재가 안 돼 있어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나라의 대표성을 띄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다 결정을 했습니다. 전통이 어떻게 변화하고 전승돼 왔는지를 중시했어요.
그리고 아까 민족박물관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도 20년 전에 민족박물관에 가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별 건 아니더라도 작게라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호랑이를 그리려고 하다보면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민족박물관에서 힌트를 얻어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한편으로 제가 이 연구소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보수로 일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후원으로 재정적 여유가 있었는데, 학교에 연구소만 있는 게 왠지 미안했어요. 그래서 20년을 무보수로 일했어요. 어제 저녁에 제가 정리를 하면서 생각을 한 게, ‘20년을 벚꽃 미소로 시작해서 매화 향기로 끝내네.’ 이런 표현을 생각했어요.
제가 구상하는 건 우리가 작은 자료관이라도 만들어서 소장 자료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연구원들의 업적도 많이 쌓여있기 때문에 이 연구소는 계속 발전할 거라 믿습니다.
신태영 _ 자료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군요.
허영일 _ 네, 그 자료관에 아카이브도 만들고요. 앞으로 연구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이제 연구소가 20년 됐으니 저는 여기서 끝내야죠. 저는 연구소에서 한국연구재단 프로젝트를 받아서 운영하면서 타 분야의 선생님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인연이 되어 오랫동안 연구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신태영 선생은 처용무를 배우고 있는데, 무용 쪽에 관심이 생졌다는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여기 계신 분들이 자의든 타의든 나름대로 춤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신 거죠. 여러분들은 어떤 춤인지도 구분할 수 있고, 우리가 워크숍을 하면서 춤 동작을 보고 춤을 감상하기 때문에 공부가 많이 됐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연구소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9년을 같이 한 건 엄청난 인연이기 때문에, 앞으로 맡겨보겠습니다.

아시아 제의식 무용 중에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인도의 사원 무용 ‘바라트 나트얌’ 공연
신태영 _ 예 알겠습니다. 말하자면 이제 20주년이면 사람 나이로는 성년이니까, 연구소도 자기 인생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거네요. 마지막으로, 지금 20주년 기념 공연을 허동성 선생이 맡고 계시고, 또 허영일 소장께서도 프로그램 짜는 데 굉장한 공을 들이셨습니다. 20주년 공연들 중에 다른 건 다 못 봐도 딱 하나만 봐야한다면 뭘 추천하시겠어요?
허동성 _ 그건 좀 그렇죠.(웃음) 다 열심히 선별한 건데요.
허동성 _ 이번에 중국 공연 쪽에는 고전무용, 궁중무용 형식이더라도 창작들이 많아요. 그리고 인도의 ‘바라타나티암(Bhārata Nātyam)’이나 ‘카탁(Kathak)’은 인도 4대 무용에 포함되어 있으며, 고형을 그대로 전승시켜온 작품들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아시아 전통춤, 특히 아시아 제의식 무용 중에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인도의 사원 무용 ‘바라트 나트얌’을 추천하고 싶어요. 근데 문제는 이걸 인도 무용수가 아닌 말레이시아 무용수가 추는 거긴 해요. 그렇지만 인도 사람보다 더 잘 춥니다. 듀엣으로 추는데요. 제의적으로 꽃을 바치고 관객들에게 헌화하고 경배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중심으로 춥니다. 굉장히 제의적인 분위기와 화려한 기교를 보여줍니다.
허영일 _ 저는 훌라로 민족춤을 시작했으니까 훌라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전통 훌라에 ‘울리울리’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 멜레(mele)가 우리나라 판소리 같은 형식으로, 그 노래가 관객들 가슴 속에 묘하게 파고드는 매력이 있어요. 와서 음악을 들으시면 아실 겁니다.
신태영 _ 기대가 됩니다. 춤지 독자 여러분께서도 많이 보러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모든 공연은 무료로 진행합니다. 사전에 꼭 예약하고 오시기 바랍니다.(02-746-9347) 그럼 이것으로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