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최근에 신선한 메일 하나를 받았다. 8월 28일 새벽 3시 21분의 제주도 소리였다. 메일을 보낸 이는 대금을 전공하고 2009년에 류시화 시인의 시 「여섯 줄의 시」로 노래곡을 만들어 데뷔한 차승민이다
그는 십여 년 동안 시인들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차승민 프로젝트 시로(詩路)」를 비롯 「골목환상」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해왔는데 올 봄부터 제주도 종달리에 살면서 다가오는 제주도 음악앨범 제작에 앞서 ‘제주도에서 보내는 소리’ 유료 서비스 회원을 모집했다. 주 1회 연재되는 차승민의 ‘제주도 자연의 소리’ 구독료는 일만 원이다.
와디즈나 텀블벅을 통해 제작비 모금을 위한 사전 펀딩은 익숙한 터였지만, 아티스트가 직접 월간 구독자를 SNS를 통해 찾아 나선 용기와 자신감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 어디 무슨 소린지도 궁금하니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구독해볼까 하는 즈음, 우리 음악을 사랑하는 윤중강 평론가가 선수를 쳤다.
아름다운 그의 음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악 전공자가 아니고, 차승민이란 아티스트를 모르는 열 명의 지인들에게 ‘제주에서 보내는 소리’ 유료서비스를 선물한 것이다. 나도 그 열 명 중 한 명이 되어 앞으로 자연의 소리를 받아볼 행운을 누리게 되는데 관련해서 보내온 메일이 초록초록하여 내용을 조금 옮겨 본다.
「제주에서 보내는 소리」 구독을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소리 연재는 제주도에서 제가 치유를 위해 자주 가는, 혹은 사는 곳 주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여 보내드립니다. 더불어 그곳에서 느꼈던 것을 소소하게 음악으로 풀어내어 함께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여행지에 간 친구가 감동을 꾹꾹 펜으로 눌러 담아 보낸 순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소리를 녹음할 때 자연이 말을 걸어오는 그 신비로운 순간을 알아차리고 녹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자연으로부터 받는 사랑과 응원, 그리고 치유의 힘을 여러분께 나눠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프롤로그로 보내드리는 음원은 오늘 (8월 28일 수요일) 새벽 3시21분의 소리입니다.

위의 내용에서 나는 ‘끼리끼리’ 와 ‘뿔뿔이’ 요소를 동시에 찾아 본다. 끼리끼리적 요소는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자연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 그런 감각들이 ‘끼리끼리’ 모여 있는데 있다. 한편 ‘뿔뿔이’적 요소는 그간 협업도 많이 해 온 차승민 아티스트가 ‘제주에서 보내는 소리’ 유료 구독서비스를 오롯이 혼자서 집중하는 데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이 말을 걸어오는 신비로운 순간’이다.
자연의 소리를 담겠다고 무작정, 혹은 폭력적으로 일방적으로 녹음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바람은 바람대로, 풀들은 풀들대로, 갈대는 갈대대로, 흙속의 미생물은 미생물대로 ‘뿔뿔이’ 머물되 어느 순간 ‘끼리끼리’가 비로소 되었을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중하게 담아서 고스란히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유사한 사례를 독립출판 분야에서 찾아보면 「일간 이슬아」 작가 사례가 있다. 그는 지난 해 2월 「일간 이슬아」를 창간해 독자들에게 이메일로 직접 글을 보내주고 한 달에 20편을 서비스 하면서 구독료로 일만 원을 받고 있다. ‘아무도 청탁하지 않았지만 쓴다’라는 패기와 성실함으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가며 구독료와 독자의 사랑과 비난을 두루 받아가며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취향 공동체인 ‘끼리끼리’의 진화는 고무적이다. 학자금 대출금 마련을 위해 시작한 「일간 이슬아」에 공감하는 구독자들은 무채색의 일상에 알록달록한 활기를 그의 글을 읽는 동안 누린다고 말한다. ‘따로 또 같이’가 자연스레 연재 노동의 현장에서도 무르익어 간다.
본디 ‘끼리끼리’는 건강한 정서이다. 김종상 작사의 ‘끼리끼리’ 동요만 보아도 ‘끼리끼리’는 정겹다.
숲속에는 맷새들이 모여 모여 노래하고 / 들길에는 들꽃들이 모여 모여 함께 핀다 / 새들도 끼리끼리 꽃들도 끼리끼리 / 학교 길에 우리들도 끼리끼리 모여 간다 / 높은 하늘 구름들은 모여 모여 비가 되고 / 산골짜기 시냇물은 모여 모여 강이 된다 / 구름도 끼리끼리 냇물도 끼리끼리 / 운동장에 우리들도 끼리끼리 모여 논다

하지만, 취향과 가치가 아닌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무조건 이어지는 ‘끼리끼리 문화’는 그 양상이 다르다. 취향과 가치 존중 공동체에서는 기준이 확고하지만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뭉쳐진 ‘끼리끼리’ 사단(師團)들은 몰이성적으로 기준을 무시하고 이익에 담합하며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배제를 일삼아 사단(社端)을 일으킨다.
아쉽지만 현 정부의 인사에서도 비전으로 삼은 포용국가 기치에 걸맞지 않게 전대협, 참여연대 중심의 ‘끼리끼리’ 인사라든가, 문화예술공공기관의 기관장 및 문화재단 대표들도 설립 초기인 2000년대에 비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캠프에서 역할을 했다거나, 앞으로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는 인사로 채워지는 경향으로 현장의 볼멘소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나 문화예술의 역할은 삶에서 다 채우지 못하는 2%를 새롭게 느끼거나 발견하게 하고 98%가 한 목소리를 내도 다른 목소리를 2% 낼 수 있는 저항과 불온의 상징일진대 다른 생각, 다른 관점, 다른 행동을 포용하지 못하는 실태라 구태의연하다. 반면 세상은 변하고 있고 시민 개개인의 인식은 앞의 두 사례를 보았듯이 오히려 공공을 앞선다.
지난 2015년에 한국여성민우회가 20~30대 여성 20명을 집중 인터뷰한 결과, 인터뷰 대상자들은 직업에 있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일자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직군에 따라 처우를 달리 하는 식의 차별적 환경을 가장 견딜 수 없어 했다.
또 희망제작소의 2017년 연구에 따르면 20~30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좋은 일의 요건은 ‘업무 자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가’와 ‘업무 또는 조직에서 배울 점이 있는가’였다.(희망제작소: 좋은 일의 새로운 기준)
이런 가치관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들이라 조국 논란에 더 민감하다. 후보자의 장관 임명 여부를 떠나서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 내 계급, 신분, 계층에 대한 개념과 그것이 작동하는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볼 일이다. 여기에 개인으로서 앞서 두 사람이 보여준 ‘뿔불이’ 행동양식이 유의미해 보인다. 기존의 일방적이며 폭력적인 사회 시스템, 소비시스템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만의 소통 시스템,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작당해 보는 것이다. 진정성이나 창의성, 열정은 계급, 신분, 계층을 뛰어 넘어 전파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당초, 자연 속의 ‘끼리끼리’를 다시 상상해본다. 여름날의 끝을 매미들이 끼리끼리 울어대며 알리고 가을날은 가로수 나뭇잎들이 끼리끼리 빛바램으로 시작한다. 자연속의 끼리끼리는 약점과 비밀을 그네들끼리 음모하며 쉬쉬하지 않는다. 다 드러내고 다 함께 한다. 생명이라면 달라도 다 끌어안는다
예술가는 창의적이다. 기존의 시스템이 아닌 세상에 없던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자양분으로 또 다른 협회니, 단체니 유사 권력을 키울 노력보다 개개인 스스로, 자신만의 고유한 ‘뿔뿔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다. 우리 음악 하는 차승민 아티스트가 ‘9월 9일 오전 6시 첫 번째 소리와 음악을 배달해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한 것처럼! 이슬기 작가가 ‘ 일간 이슬기’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재하는 것처럼! 안은미와 엠비규어스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과 ‘누구나 댄스’를 함께 추는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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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간 이슬아 관련 부분은 한겨레 인터뷰 ‘오은의 요즘은’을 참조 (20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