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 대구시립무용단 『스핀오프』
대구시립무용단의 『스핀오프』 공연은 2019년 7월19일(금), 20일(토) 이틀간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소극장)에서 있었다. 낯선 영어 제목이 조금 부담이 되긴 하나, 그 의미를 보니 신선한 단어였다. 새로운 경제 용어로 기업분할제도에서 유래하여 내부 잠재 창업자들에게 신기술 및 신사업 기회를 제공하여 지원하는 방식을 말한다. 비록 경제 용어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좋은 뜻은 예술계에서도 널리 사용되어 왔다. 원 작품에 기반을 두고 근간을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더욱 더 창의적인 2탄과도 같은 작품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구시립무용단에 뿌리는 있으나, 안무자와는 또 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제목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기대하는 것은 관객의 권리이다. 돌이켜보니 이름만 바뀌었지 전임 안무가들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단원들의 창작공연을 기획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가능하면 단원들의 공연도 역사를 가질 수 있게 좋은 이름이라면 승계를 하여 관객들에게 단원 창작공연이 익숙하게 다가서면 좋을 것이다. 실제로 춤으로 기록한 역사보다 명칭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하다.

『수평적 곡선-숨쉬는 몸 I』은 현 대구시립무용단 트레이너 이준욱의 안무작이다. 독일 가곡에 몸을 맡긴 무용수들은 둘셋 무리를 짓기도 하고, 각자의 움직임에 도취되기도 하며 그들 몸의 근육과 관절을 조금씩 분산하여 움직인다.
무대 중심에 서 있는 마르코 루쏘 볼페의 관절 움직임과 근육의 다양한 움직임이 시선을 끈다. 물론 외국인이라 시선을 붙잡는 것도 있지만, 잠깐이 아니라 자주 그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움직임으로 무대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무용수들은 둘셋으로 나뉘어 충돌과 결합 등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만들어갈 때, 그는 고집스럽게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가끔 다른 무용수들도 그와 같은 유사한 동작을 하니 어색하게 느껴졌다.
또 다른 외국인 여성 춤꾼 필라르 빌라단고스가 나타났다. 그녀의 외적 강점은 작은 무대를 그녀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마음 한편에 그녀가 우리나라 단원들과 같이 무대에 서는 것은 재고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적 우월함은 의외의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안무자는 고려해야 할 것이다. 외모가 출중한 그들의 등장은 관객의 시선을 가로채기 쉽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혼자 남아서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때, 그녀의 동작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둔탁해 보이는 그녀의 동작은 긴 팔 다리의 덕을 입어 유려함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장신의 키로 다른 단원들의 날렵한 움직임을 압도하는 것이 조금 아쉬운 중에 혼자 남은 그녀의 모습은 작은 무대에서는 넘쳐나는 느낌이다. 그래도 혼자 작품을 마무리함으로써 시작을 연 남자 외국인과 대칭을 이루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스핀 오프』의 첫 무대는 예상치 않게 ‘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언노운(Unknown)』은 객원 안무자 권효원 작품으로 단원 김혜림의 솔로 무대였다. 춤의 느낌은 제목과 내용의 노트와 상관없이 고독한 여인의 몸부림으로 다가왔다. 무음악의 고요 속에 그녀의 동작은 분절의 꺾임으로 이어져갔고, 소음 속의 그녀는 갈 바를 모르는 듯 무대를 휘적대고 있다. 머리를 풀고 정리하고, 2리터의 물병을 숙제처럼 비우고, 화려한 음악 속에 앞의 분절 동작은 계속된다. 무용수의 반복적인 동작만큼 관람은 불편했고, 제목처럼 관객도 춤의 내연을 알기 어려운 무대였다.

『한숨』은 단원 김동석의 안무작이다. 제목처럼 심장의 박동소리와 같은 부드러운 소리와 2인무로 시작한다. 2명의 무용수들이 더 등장하여 4명의 군무는 타악기 북소리에 몸을 싣는다. 2대 2로 또는 1대 3으로 대형을 바꾸어 가며 무대를 미끄러져 가며 춤을 춘다. 그들의 관절 꺾임은 몸의 울림처럼 다가온다. 객석에 앉아 있는 내게도 울림이 다가오고 내 속의 깊은 울림이 반응한다.
피아노 단음에 4명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암전되었다가 관객의 박수소리에 다시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천천히 회전하며, 아직도 그들은 춤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춤의 도반들이 마치 도를 닦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다. 관객을 실어 가는 그 무대에서 어느새 관객도 함께 도를 닦는다.

『폭풍전야』는 차석 단원인 신승민의 안무작이다. 제목과 달리 춤의 내용은 전야가 아니다. 폭풍 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는 그들의 무대는 관객을 댄스홀릭으로 몰아간다. 신체적 조건이 수려하지 않은 신승민이지만 그의 춤은 서서히 관객을 흡입하기에 모자라지 않다. 그렇게 만드는 큰 이유는 듀엣의 상대자인 박정은에게도 큰 몫이 있다. 서로의 무게를 덜어주기, 서로의 힘이 되고 받침이 되어 서로의 몸을 들어주기, 서로의 몸을 이용하여 끝없이 던져지는 그들의 춤은 상대를 밀어내려는 몸부림 같기도 하다. 그런데 느낌은 사랑이다. 가끔 내뱉는 여자의 한숨, 어두컴컴한 무대에서 여자의 흐느낌과 같은 슬픈 동작들은 그들의 사랑 완성을 위한 지난한 과정인가? 결국 남녀의 듀엣은 서로 뒤엉키고, 서로 보듬고, 서로를 소중히 다루며, 알 수 없는 세계로 심취한 듯 아름답게 막을 내린다. 훅하니 감동이 물결쳐 온다.

이틀째 공연은 객원 안무자 노진환의 『블러버랜드(Blubberland)』이다. 다소 생소한 제목이지만, 그 의도는 충분히 읽혀지는 내용이다. 6명의 출연진을 함께 세우기 위한 안무자의 선택은 뒷막을 올리고 출입구를 드러내고 조명으로 더 깊이를 주고, 여러 소품을 이용하여 현대인들의 물욕과 허세를 보여주려고 한다.
노진환의 안무는 다소 설명적이다. 난해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젊은 안무가들의 소통부족에 비하면 친절한 그의 작품이 고맙기도 하다. 그냥 춤만 보여주기도 하고, 그의 뜻을 드러내는 몸동작이 함께 하면서, 관객은 쉽게 안무자의 뜻을 따라갈 수 있다. 자주 보는 김분선의 듀엣무대는 신선하지는 않지만, 김인회와의 호흡이 작은 무대라 가깝게 다가왔다. 「문 리버」 곡조가 나오고 인회의 등에 탄 분선의 노를 저어 가는 동작은 마치 고향을 찾아가는 모습 같다. 작은 집을 표현하는 전통 창문을 세워 놓고 안식을 취하는 무용수들의 마지막 쉼은 주제를 편안하게 설명하고 있다.

수석 단원 김홍영 안무와 출연의 『해후』는 제목도 내용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순간의 감정과 몰입을 즉흥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을 향해 가는지 따라가기 어려운 그의 춤은 생음악으로 연주되는 전자기타 소리와 무관하게 흘러가서 더 불편했다. 라이브 음악의 즐거움을 찾기 어려웠고, 휴대하는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도 무관한 듯한 몸의 율동은 그냥 몸짓이다. 무대를 통하여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만난다는 것은 관객과의 소통이 이미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안무자는 자신의 생각을 춤을 통하여 객관화하려는 작업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안무자 김홍영은 자신의 주관을 양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작은 순간』은 단원 김초슬이 안무하고, 3명의 다른 단원들과 함께 춤을 췄다. 백팔 배를 하는 3명 여자의 같은 춤, 그런데도 느낌은 자유롭다. 산사인 듯 새소리 들리고, 1명의 남자무용수는 선문답을 하듯 공중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물구나무를 서고, 한가로이 누워 있다. 손을 비벼 서로의 얼굴에 대며 서로를 인식하려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장작 타는 소리가 들리고, 연기가 날아오른다. 이람의 솔로가 아름답다. 우주를 향하여 나아가는 그녀의 몸짓은 우주에서 유영하는 듯 부드럽게 물 흐른다. 그녀의 정진을 지켜보는 무심한 세 사람이 있어 그녀의 춤이 더 아름다운가?
이번에 대구시립무용단은 8개의 작품을 이틀간 소극장 무대에 올리고 막을 내렸다. 작은 무대에 걸맞게 작품을 창작하려 했던 고민의 흔적들이 보였고, 안무자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무대이기도 했다. 이번 무대를 통하여 단원들 각자의 춤 세계를 보였으니, 스핀 오프는 시작이 되었다고 하겠다.
한편 관객의 입장에서 아쉬웠다면 춤동작이 현대춤 정신에 맞지 않게 매우 일률적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 점이 관객으로 하여금 춤을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 독창적인 모습, 자신만의 색깔이 더 진하게 그려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무가와 춤꾼 여러분! 이제 자신만의 특유한 춤으로 본격적으로 스핀 오프 하라!”

* 비사현대무용단 세 번째 정기공연(7월13일 봉산문화회관 가온홀)
비사현대무용단은 대구 계명대학교 현대무용 전공 출신자들의 단체이다. 연혁을 보니 1985년부터 임혜자 교수 중심으로 활동하던 무용단이 10여 년의 공백기를 두고, 임 교수의 퇴임 이후 최두혁 교수 중심으로 다시 힘을 모으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가 있는 단체를 사라지지 않게 다시 정비하는 힘은 역시 졸업생들이 한 마음으로 뭉쳤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다시 일어난 지 세 번째 공연 제목이 『킵업(Keep Up)』이다.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잘 해보자는 그들의 의도가 읽혀진다. 그간 그들의 실력과 짜임새는 어떨까? 궁금함도 적지 않았다.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생각을, 그들이 사고하는 방식들을 춤으로 표현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눈에 띄는 의도 중 하나는 단연 의성어이다. 다소 극대화된 의성어는 거의 모든 작품에 크든 작든 그들의 의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며, 관객의 귀를 자극했다. 자극적인 소리는 세대 간 격차인가? 격차를 내려놓고 보려 애써도 여전히 소리의 잔상은 크게 남았다.

특히 『인간식사』(안무: 나혜민)라는 다소 과한 패러디의 이 작품에서 처음과 끝은 실제로 먹는다는 제스처를 소리와 함께 비닐 뜯는 것으로 보여준다. 그들 의도의 다소 원초적 표현이라 감동적 메시지를 주는 건 아니지만, 비닐 먹는 소리와는 달리 깨부수고 우적거리며 음식 씹는 소리는 마치 실제로 인간을 씹는 듯 소리의 불쾌함이 관중에게 파고들었다. 혐오함으로 남겨지는 현대예술의 충격까지는 아니었어도, ‘먹는다’는 약육강식의 세상을 패러디하려는 의도는 관객에게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밟고 밟히며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모습을 바디 마네킹을 이용해 옷 벗기기 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그들의 의도를 표현하는 데 충실한 작품이었다.

『재생: 상실한 인간에게』(안무: 박지수)는 그들의 주제도 다소 추상적 표현을 썼지만,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생이란 단어에 대한 설명의 친절함은 프로그램에서도 찾지 못했다. 보여주는 무대는 그들의 간구였다. 무엇을 찾아 헤매는 그들의 여정을 표현한 무대는 음악과도 같은 의성어가 삽입되어 있었다. 그들이 사용한 의성어는 왜 사용되었는지 그 의도가 읽혀지지 않았다. 지루한 일상을 보여주려는 소리였을까? 그들은 높은 탑 위에 올라가서 찾다 내려오고, 땅에서도 계속 뭔가를 일관되게 찾고 있었다. 그들이 동경하는 초인을 바라는 행위로 보기에는 다소 소극적인 행위라, 그들의 의도를 읽어내기 어려웠고, 주제와 달리 그들의 긴 치마는 어울리지 못했다. 설마 팸플릿에 표기한 ‘16세기’와 르네상스의 부흥을 동경하여 그런 의상을 입은 것은 아니겠지.

『번아웃신드롬(Burnout Syndrome)』(안무: 신은경)은 다소 주제가 진부하다는 선입견이 먼저 들었다. 소진한 인간의 모습, 패잔병과 같은 그들의 실체를 어떤 식으로 보여줄까? 안무가와 남자 무용수 3명이 출연한다. 갑자기 한 남자 무용수의 특별한 모습은 백 마디 말보다 더 진하게 ‘번아웃’을 보여주었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도 놀랐으리라 짐작이 된다. 무용수 문진학이었다. 힘을 뺀 그의 춤은 곧 흐느적거리며 쓰러질 듯 춤을 췄으나, 그것은 땅에서가 아닌 무중력 상태인 것처럼 관객에게 다가섰다. 얼마나 많은 무용수들이 지구의 중력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가? 그것을 얼마나 극복하는가는 감동의 크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문진학은 그 감동을 관객에게 선사한 것이다. 작품의 의도를 십분 이해한 듯 그의 몸짓은 무대를 장악하였고, 관객은 작지 않은 선물을 받은 것이다. 안무가의 춤은 여자만의 섬세함을, 남자 무용수들의 군무는 더 큰 자유로움 속에 지쳐가는 인간을 그려내고 있다.

『1632H』(안무: 윤경진) 해시태그 기호를 써서 안무가에게 연결되는 단어들을 춤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68일, #1632H, #베를린, #파리, #나홀로, #유럽, #여행, #일기 이 일련의 단어들을 엮어보면 유럽을 홀로 68일간 여행한 감상을 무대로 옮겨보려는 안무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큰 여행 가방을 끌며 등장하는 주인공과 가방 끄는 소리, 왁자지껄한 군중들과의 만남에서 의성어는 실제 생활에서 나타나는 소리를 조금 극대화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들의 몸짓과 춤으로 관객은 더 큰 상상을 해도 좋을 수 있다. 사다리에 조명을 이용한 에펠탑 상징물로 관객은 유럽을 충분히 상상하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의 힘을 빌고, 무용수들은 그들의 여정을 춤추고 있다. 남자 무용수들의 더 활발한 움직임과 군무의 절정이 좀 더 크게 다가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그들이 보여주는 무대는 짧은 호흡이지만, 안무가의 의도를 향해 나아가는 즐거운 몸짓이었다.

동문들의 모임은 소소한 듯하나, 그 잠재력은 적지 않다. 그들이 단합만 되면, 내재된 힘은 크게 뿜어 나올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젊은 안무가들이 무대에 등용할 수 있는 기회는 밀어주고 당겨주는 동문들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용기를 낼 수도 있다. 문화재단 지원금을 너무 적게 받았는데, 4개의 작품을 올렸으니 경제적 지원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러나 춤에 뿌리를 두고 성장해보려고 발돋움 하는 안무가들에게 무대를 만들 기회가 주어진 것은 다행한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좀 더 실질적인 지원으로 힘을 북돋울 필요가 있다. 열정 하나로 뛰어든 젊은 안무가들이 한 번의 무대로 지쳐버리면 안되지 않겠는가? 현실에 맞는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무대에 올리기까지 쉽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을 생각하니, 작품마다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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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명: 이학박사(무용사, 경북대, 2000년), 「한국춤축제」(2010, 2011, 2017년, 위원장)
현 한국민족춤협회 대구지회장. 저서: 『춤신을 만나다-대구무형문화재 살풀이춤 권명화』(2인 공저, 대구 동구팔공문화원, 2010년), 『공연예술의 이해와 감상』(3인 공저, 도서출판참,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