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삼천리가무단은 이름 그대로 삼천리 곳곳에 퍼져있는 다양한 계층의 한국 전통춤과 음악의 정수를 모아 그 부제가 말해주듯 당대의 전통예술의 정상급 예술가들에 의해 미국에 소개한(First All Star Company from Korea) 첫 전통 예술 단체였다. 그뿐만 아니라, 명창으로 잘 알려진 김소희나 가야금 연주자로 유명한 지성자 그리고 승무와 태평무만 출 것 같은 한영숙 등이 분야를 막론하고 탈춤을 추고, 정재를 추고 검을 돌리는 등 한국의 전형적인 예술형태를 보여준 단체였다. 물론 정재는 궁중에서만 행해졌었지만 춤, 기악 등 분야를 구분 짓지 않은 전인적 예술관과 교육방식은 지금과 같이 전공분야를 나눈 서구식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고유의 아우르는 예술교육방식으로 돌아간다면 오히려 세계에 모범적인 예술교육의 사례가 될 뿐만 아니라 좀 더 전인적 사고방식을 가진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전인적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비단 창의력 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인성에도 연관이 있으며 각각의 분야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폭이 좀 더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천리가무단의 공연은 미국으로 떠나가기 전부터 미국으로 공연을 떠나는 대한민국 첫 예술단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공연 초반부터 현지의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종전 9년 여 만에 소개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음악과 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컸다.
1964년 워싱턴에서의 미국공연 데뷔 후 뉴욕시티에 온 삼천리 가무단은, 1월26일 오후 헌터 칼리지 회관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농악」, 「대금산조」, 「관등놀이」, 「탈춤」, 「가야금 산조」, 「학무」 등을 올렸는데 「뉴욕 타임스」는 이 공연의 내용과 객석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각 분야에 탁월한 무용수들, 명창들, 그리고 연주자들은 한국의 전통 예술의 즐거움의 연속을 선사했다. 5,000여 년에 걸친 춤 작품들은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농부들의 축제에서부터 격식 있는 궁중무용과 종교적인 춤으로 이어졌다. 많은 작품들은 신비롭고 주술적인 요소들이 배어있는 동시에, 한국 역사 속에 큰 영향을 끼친 도교, 유교, 불교의 종교가 반영되어 있다…. 학 두 마리가 연꽃 망울을 터뜨리자 선동이 나타나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큰 즐거움을 주었다. 비록 어린이 관객들에게는 춤의 형태와 음악이 낯설었지만, 공연의 색과 우아함 그리고 매력에 홀린 듯했다.”1)

낯선 동양의 전통춤과 전통음악 공연을 연속적으로 관람한다는 것은 한국의 어린이들에게도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을 미루어보아 한국의 전통예술이 미국 어린이들의 눈에도 매력적으로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어린이 프로그램에 삼천리가무단 공연을 편성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전통춤과 전통음악은 확실히 세계인들에게 어필할 만큼 보편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레퍼토리 중 특히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지성자가 연주한 「가야금 산조」와 한영숙, 김천흥이 학춤을 추고 김소희가 선동으로 나온 『화관과 학무』로, 섬세하고도 신비로운 음색과 색채에 더 호응이 높았을 것이다.
링컨센터 등의 공연장을 비롯하여 다트머스대학교, 미시간대학교, 그리고 캘리포니아대학교,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 등 미국 전역에 있는 대학 여러 곳을 다니며 공연 및 음악과 춤에 대한 강의를 했다. 단장인 헤이먼은 강연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한국음악은 중국과 일본 음악과는 구별되는 그 나름대로의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로 시작하여 중국과 일본 문화밖에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이라는 고유문화를 가진 나라가 있음을, 그리고 이 나라의 문화예술이 얼마나 풍부하고 매력이 있는지를 다양한 작품을 통해 소개했다. 한국의 전통예술에 대해, 미국인으로서 어쩌면 자신만이 느끼고 생각했을 감성들을 자국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4월26일과 27일에는 뉴욕으로 돌아와 링컨센터 필하모닉 홀에서 공연을 하는 일정이었으며, 세계박람회 및 하와이 공연 등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렇듯 공연 장소와 일정 그리고 후원단체만 보면 탄탄대로일 것만 같은 삼천리가무단은 공연 여정 중에 뜻하지 않은 난관을 겪게 되었다.

삼천리가무단에 이어 같은 해 후발로 도미한 아리랑예술단2)이 삼천리가무단의 공연이 예정된 공연장에 가서 그들의 공연을 취소하고 아리랑예술단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김생려와 콜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가 공연 초반부터 모든 공연장을 다니며 ‘삼천리가무단은 재미없고 너무 느리고 옛 중국 스타일의 음악이다’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 지역에서 개최하기로 한 삼천리가무단 공연을 취소시켜버리고 아리랑예술단이 공연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어요.3)”

이로 인해 삼천리가무단은 공연 예정지 10곳을 잃었으며 약속받은 후원금도 끊겼다. 적지 않은 인원의 예술가들을 인솔하면서 취소된 공연의 공백을 메워야하는 통에 앨런 헤이먼은 5만 달러, 지금으로 환산하면 5천만 원 이상의 금전적 손해를 봤다. 지금도 5천만 원은 큰 돈 이지만, 50여 년 전의 5만 불이면 5억 원 이상의 손해를 본 셈이다. 삼천리가무단 단원 중 국립국악원 소속 예술인들은 국악원에서 급여가 나왔지만 김소희, 한영숙과 같은 소속이 없는 예술인들은 급여를 받아야만 했기 때문에 이를 헤이먼의 사비로 감당해야 했음은 물론, 그 외 경비까지도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다. 가무단 사람들은 분노했다.
삼천리가무단은 우여곡절을 겪고 귀국을 했지만 아리랑예술단의 단장 김생려, 권려성 부부는 해외활동 후 귀국하지 않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정착했다. 당사자들이 당시 상황을 해명하거나 한 기사를 찾아볼 수가 없었기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리랑예술단은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에 의해 출국 전 이미 공연 일정도 정해져있었으며 계약조건도 단원들의 급여와 경비를 주급 1만 1천 5불로 받는 고액의 조건이었다.4) 어쩌면 미국 관객들의 성향을 그 이유로 볼 수 있다. 다이내믹하고 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그들의 취향에 아리랑예술단의 도미 후 자연히 삼천리가무단과의 비교 대상이 생겼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겠다.
바꾸어 생각하면 삼천리가무단이 한국전통 예술을 보여주는 반면, 아리랑예술단이 보여주는 퓨전 형식이 전통과 너무 비교되기 때문에 일종의 자격지심에 “지루하고”, “느리고”, “중국 스타일”이라고 폄하 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두 가능성이 합쳐져 미국의 공연장 관계자들이 아리랑예술단에게 설득 당했다고 볼 수도 있었을까. 가만 생각하면, 아리랑예술단의 작품들도 한국의 전통에 기반을 두고 창작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렇다면 이들의 작품 역시 어느 나라 작품이란 말인가.
당사자의 해명이 없이는 아무리 좋게 해석을 하려고 해도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건을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당시의 전통예술의 위상 그리고 전통에 대한 이러한 시선은 식민지교육의 산물이 여전히 팽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전통춤과 음악을 중국 전통음악과 다를 바 없이 폄하시킨 것이 정말 그런 거라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식민지시대에 받은 교육의 결과이었던 것일까.
아리랑예술단의 영문이름은 “The Arirang Ballet and Chorus”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분히 서구식 공연형식을 지향한 단체다.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로부터 ‘한국적 무용극’을 요구받아 이른바 ‘코리안 발레’ 를 구상한 것 같다.5) 이를 위해서는 순전한 국악기로 장면, 장면을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아리랑예술단은, 엄밀히 말하면 퓨전 예술단이다. 김생려가 이끄는 서양식 오케스트라에 국악기를 첨가시키는 형식으로 서양식 발성의 코러스, 이러한 음악 편성6) 그리고 이 단체의 공식 프리마돈나 스텔라 권, 권려성이 이끄는 무용단이 이에 맞춘 최승희 식 빠르고 경쾌한 동작과 기교, 그 춤에 맞춘 틴 드럼과 해금연주 등 경음악 같은 편성과 장단, 소품과 복식 등 흡사 북한 춤을 보는 듯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7) 한마디로 삼천리가무단과 여러모로 차원이 다른 공연단인 것이다. 어쨌든 아리랑예술단의 작품들도 한국 전통을 기반으로 창작했을 것이다.
휴전 후 10년 채 지나지 않았던 당시 이국땅에서 이같은 일이 있었다는 글을 접하고,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반복해 읽었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김생려, 최승희에게 신무용을 배운 권려성 단장부부는 한국의 서양음악계와 신무용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한국의 전통문화가 좋아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에서 어렵게 살면서 자국민들도 시대에 뒤떨어진 산물로 여기고 별 관심을 갖지 않던 전통음악을 배우고, 또 한국전통예술을 소개하겠다고 애쓰는 선진국에서 온 젊은 이방인, 그리고 이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한국 전통예술을 지켜내고 있는 동족들이었고… 만약 이같은 사실이 잘못 알려진 것이라면 지금에라도 관계자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지금에라도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는 규모와 관계없이 일개의 영리회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뉴욕필하모닉과 같은 유수의 예술단체나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 등 전설적 예술가들이 거친 곳이지만 이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가치가 높은 상품들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예술성을 높이 사는 것은 둘째 치고,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결국 자신 쪽이 이익이 되면 좋은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하지만 한국의 예술을 알린다는 것은 비단 한국의 대표적인 작품을 보여주는 것 뿐 만이 아니다. 한국인을 대변할 수 있는 정신도 함께 깃들어야 하는 법이다. 아리랑예술단은 대형 기획회사의 보호를 받고 활동했지만 이제는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홈페이지의 연혁 란에 들어가 봐도 아리랑예술단에 대한 흔적은 없다. 식민지 그리고 광복에 이은 동족전쟁과 휴전 - 이를 통해서도 인간은 배우는 것이 없는 것일까.
2019년 광복절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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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예술단, 미국순회공연을 시작하다”, 로버트 쉘튼, 「뉴욕타임스」, 1964. 1. 27.
2) 1963년, 미국의 로체스터 음악회에 참가한 김생려가 미국의 컬럼비아 아티스트 메니지먼트의 부사장과 인터네셔널 콘서트 앤드 스팩타클의 사장과의 만남이 이루어져 계약까지 맺게 된 것이다. 단원 구성은 권려성이 무용부장으로 있던 예그린 악단의 단원으로, 작품 역시 예그린 악단의 것을 수정하여 쓸 계획을 골자로 하여 1년여간의 준비를 했다한다.
3)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12의 앨런 헤이먼의 인터뷰 참조.
4) 동아일보, 1964. 01. 30.
5) 컬럼비아 아티스트 메니지먼트에서는 순수한 한국적인 음악과 스토리가 있는 춤을 요구해서 김희조 편곡, 권려성 안무 그리고 전은선이 구성 대본을 담당했다.
6) 금관과 목관 그리고 콘트라베이스 1명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의 총 12명의 오케스트라 그리고 유연걸(테너), 박경옥(소프라노), 김성길(바리톤)이 솔리스트로 참여한 16명의 혼성 합창단은 노래 뿐만 아니라 현악기의 역할을 도맡아 했으며, 피리, 대금, 가야금, 장고 그리고 아쟁 연주자 등 33 명의 규모로 구성된 독특한 오케스트레이션이었다.
7) Toast of the Town, 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