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희곡작가(戱曲作家) 김진수(金鎭壽) 선생은 나의 중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셨다.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갓 나오시자마자 북간도(北間島, 龍井)에 있는 우리 중학교로 부임하셨는데 그 당시 대학생 제복인 검은 사지양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작은 키에 눈썹이 검고, 코는 들창코― 그래서 첫인상은 우리에게 별로 신통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맡게 된 국어 시간 첫 시간 이래 그는 일약 학교 안에 인기 있고 멋진 선생님으로 손꼽히게 된 것이다.
국어 시간 대목에서 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선생님이 인용한 희랍신화 ‘이카루스의 날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 섬 속에 갇혀 살게 된 ‘이카루스’의 부자(父子)는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날개를 발명하였다. 아들은 그것이 너무 신나서 하늘 높게 날았다. 그 때문에 어깨에 붙인 날개의 파라핀이 태양열에 녹아 뭍으로 도달하기 전에 바다에 떨어져 빠져 죽고 만다. 그러나 아버지는 낮게 날아서 무사히 그 섬을 탈출할 수 있었다는 이런 이야기였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별로 신기한 얘기는 못 되었다. 김 선생님의 그다음 주석(註釈)이 너무 멋있었던 것이다.
젊은 사람은 힘만 믿고 지혜를 모르기 때문에 높이만 날면 다 되는 줄 알았지만 이런 경우 낮게 날 줄 아는 지혜가 더 바람직했다는 그 당시에는 우리에게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던 그런 말씀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 당시의 우리에게는 무슨 큰 암시처럼 들렸었다. 말하자면 ‘낮게 날고’ ‘지혜롭고’ 하는 이야기가 확대해석 되었던 것이다. 당시 어려운 시대를 그렇게 빠져나가는 의미로도 해석되고― 아니면 김 선생님은 일본 앞재비어서 일부러 저렇게 공갈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로 그의 희랍신화는 중학생들에게 반응이 컸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왜 그런 비유가 시작됐고 어떻게 결론지었는지는 모르나 나는 항상 그 선생님의 그 낮게 나르는 지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 직장생활동안 인덕(人德)이 없어 밀려나기도 하고, 또는 잘못되어 좋은 자리에 앉기도 하면서 이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고 생각되는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다. 높게 처음부터 나르려는 잘못된 생각이 있어서 그 이야기가 무의식적으로 필요한 것이어서 그런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한일약품 사외보 「안녕하십니까」 197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