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살롱

북녘에서 온갖 고난에 시달리다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고 무서운 가시밭길을 헤치고 넘어 자유의 땅으로 찾아온 사람들, 북한 동포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송 ‘이만갑’이 8월18일자로 400회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출연자들이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죽음의 고통을 한때의 기억처럼 털어놓는다.
꽃다운 20대 아가씨들부터 중년의 어른들까지 모두가 함께 웃다가 울고, 눈물지은 채 폭소를 터뜨리기도 한다. ‘이만갑’은 언뜻 웃고 즐기는 예능프로 같지만, 연예인들이 만드는 직업적인 오락이 아니다. 공통의 주제 속에 각각이 겪어온 사건 드라마들을 펼쳐주는, 역사에 기록되어야 할 처절한 리포트인 것이다. 그동안 600여 명이 출연했으니 그만큼의 장면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2011년 12월4일 이진민 PD의 연출로 출발할 때는 성격이 달랐다. 분단으로 남쪽으로 내려와서 이산가족이 된 1세대들이 노령이 되면서 북의 가족들에게 그리움과 망향의 심정을 달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북에서 사선을 넘어서 내려온 젊은 동포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출연자와 방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탈북 동포들의 꾸밈없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놀라움과 공감을 주면서 차츰 친근한 인상으로 사랑을 받게 됐다.
▲「이만갑 400회 특집 가요제」
북녀들은 대체로 음악적 소질이 풍부하다. 노래는 물론 아코디언 등 악기 연주실력이 탁월하다. 팀 ‘보란 듯이’―운설미(아코디언) 박성진(소해금) 권설경(기타), 팀 ‘단숨에’―유현주(아코디언) 박유빈(드럼) 김충성(베이스). 연주와 노래는 기술 실력에 순수한 혼이 실린 듯 환상적이었다. 초대가수 돈 스파이크, 설하윤, 서영은. 유현주는 터줏대감으로 아코디언을 비롯한 만능 프로급. 윤설미는 금성학원 출신, 북에서 아코디언 연주대회 1등 수상, 권설경은 기타밴드로 각종 무대를 석권, 박성진은 소해금의 독보적인 스타, 김충원은 베이스, 백미경은 가수협회 등록 후 앨범을 내고 활동 중.
미모의 신은하는 ‘이만갑’의 간판이고, 한송이는 뉴욕동포 초청으로 박수를 받으며 미국 구경을 했고, 김아라는 TV 드라마 「영원한 사랑」에 출연 후속이 기대되고, 영어 잘하는 정유나는 짐 로저스와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그리고 많은 젊은 출연자들의 재주와 기술이 더욱 많이 펼쳐졌으면 한다.
‘이만갑’은 북한에서 토대가 든든해서 화려하게 살다가 사건에 연루되어 도피성으로 탈북한 인사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체로 고난 속에서 자유의 삶을 찾아온 동포들이어서 쉽게 공감을 준다. ‘이만갑’의 실력파 지성 이성주가 5년간 국제학 연구차 미국으로 떠났는데 마침 김일성대학과 평양외국어학원을 거친 김준혁이 위치를 잡았고, 청년학생 김대현이 재학 중이다.
앞으로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이만갑’을 거치면서 또 하나의 문화권이 형성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진민 PD를 중심으로 한 처음 기획이 시의적절했고, 탈북 동포들로 속히 방향을 바꾼 것이 적중했다.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프로그램은 늙지 않고 항상 새로워지기를 기대한다. 진행 남희석·박은혜, PD 이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