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살롱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작품을 기대한다. 국립민속국악원의 왕기석 원장을 믿기에 그렇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왕기석만큼 창극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 없기에 그렇다.
1980년대 이후, 국립창극단의 공연사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누구일까? 여성은 안숙선, 남성은 왕기석. 판소리명창이자 창극의 주역 왕기석이야말로, 국립민속국악원을 이끌 적임이다. 그의 재임시절에 대한민국 대표창극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 출발이 「지리산」으로, 대본은 사성구, 류기형 연출과 각색, 황호준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대본은 상당히 좋다. 현실적이며, 상징적이다. 지리산하면 떠오르는 노고단, 천왕봉, 반야봉을 사람과 연결시킨다. 노고단의 노고(老姑)는 늙은 할미를 뜻하는데, ‘노고할미’(방수미)를 설정해서 지리산의 역사를 통해서 생명과 포용을 얘기한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천왕봉과 반야봉은 창극에서 각각 길상(손재영, 고준석)과 반야(서진희, 백나현)로 그려진다.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단원은 모두 노래와 연기에는 출중해서 험 잡을 때 없이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요즘 공연트렌트와 견줘볼 때, 감정과잉이다. ‘신파조’의 대사와 연기가 젊은 관객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걸 마당극의 전통이라고 한다면 할 수 없겠지만, 창극의 대사와 연기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비교컨대, 대한민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2000년대 이후의 연기와 스타일이 확실히 다르지 않는가! 창극도 그래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연출은 맡은 류기형은 대한민국 마당극을 이끌어온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스타일로서는 완성형이지만, 이 또한 지금의 보편적인 ‘무대’에서 펼쳐지는 ‘음악극’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전 시대 또는 전 세대적 느낌이 강하다. 배우가 자신의 뜻대로 잘 움직이게 해주는 연출가로서의 장점도 보이지만, 의상과 소품, 세트와 조명 등 무대의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새로움이 보여 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위안부로 살다가 돌아온 반야가 노고할미에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할 때, 노고할미가 존재하는 무대 뒤편을 보고 있는데, 반야의 절절함이 반감되는 느낌이다.
작품에서 길상과 반야의 수난은 거의 ‘장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과 주변인의 ‘진술’로 대신한다. 그들의 수난적 삶에 보다 더 깊이 있게 들어갔어야 했다. 몸은 떨어져있으면서도 서로를 그리는 마음을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잘 그려냈어야 했다.
무대적 측면에서 어색한 장면도 이야기 안할 수 없다. 지리산의 토벌작전으로 인해서, 두 주인공이 죽게 되는데,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무대 앞의 두 배우가 일어나서 총총히 퇴장한 후, 다음 장면이 이어지는 건 어색하다. 극에 몰입을 된 관객의 심리에 방해를 준다. 조명이 켜지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서 천왕봉, 반야봉과 같은 존재처럼, 노고할미 옆에 존재하면 비춰지면 어떠했을까?
아쉬움이 있었으나,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앞으로 다듬어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창극’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대하창극’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2~3시간으로 끝나는 창극보다는, 이제는 창작창극도 5~6시간으로 공연을 하면서, 배역의 성격과 음악적 깊이를 더해가는 창극으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