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말도 정작 자신에게 닥치면 사람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호스피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등 일반적으로 다섯 단계를 거치며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사실 이렇게 전문가들의 말을 들으면 죽음을 맞이할 때 ‘꼭 그런 절차를 밟아야지’ 하는 넋 빠진 생각이 들곤 한다.
잘 나가던 영문학 교수 리차드(조니 뎁)에게 어느 날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폐암이 상당히 진행된 까닭에 앞으로 6개월 정도 살 수 있는 날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리차드가 한 첫 번째 행동은 학교로 돌아가 양복을 입은 채 연못에 빠지는 것이었다. 「수상한 교수」(The Professor, 웨인 로버츠 감독, 극영화/코미디, 미국, 2018년, 90분)라는 제목의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그 서막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일단 주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작정한 리차드는 가족과 학교에서도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강의 계획서를 무시한 채 학생들을 내보내고, 잔디밭에서 학생들과 같이 담배를 피워 물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웨이트리스와 몸을 섞는다. 압권은 아내 베로니카(로즈마리 드윗)와 딸 올리비아와 하는 식사장면이다. 외적인 형태만 유지하는, 완전히 망가진 가족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데 이로써 「수상한 교수」가 코미디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인간의 삶이 갖는 모순을 표현하는 장르라는 의미에서다.
리차드는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동료교수 피터(데니 휴스턴)에게 결국 상황을 털어놓았다. 피터가 절친의 불행한 소식에 충격을 받아 눈물까지 흘리지만 그렇다고 리차드의 행동이 멈춰지진 않는다. 마침내 대학 파티에서 그의 탈선 행각은 절정에 도달한다. 상황이 우울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감독은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줄곧 드는 의문이었다. 우선 조니 뎁이라는 배우에 딱 들어맞는 배역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기회만 주어지면 즉시 막 나갈 수 있는 성격의 배우 말이다. 리차드는 존경을 받는 교수이고 망해가던 학과를 극적으로 살려낸 공신이기도 하다. 극과 극을 동시에 연기하는 게 역시 조니 뎁이었다.
다음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 알려주려는 의도가 있다. 이는 죽음을 맞이하는 매뉴얼이 제시하는 것과 다르다. 이를테면 ‘버킷 리스트’를 제공한다거나, 죽기 전에 가치 있는 일을 해보려는 자세를 견지한다거나, 아니면 주변을 완벽하게 정리한다는 식의 고전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코미디이다. 유머를 즐기면서도 다른 한편 인생의 비애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리차드에게 닥친 일이 조만간 우리 모두에게도 닥치리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영국의 문호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비문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고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90세를 훨씬 넘긴 노인치고 상당한 유머감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