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살롱

이른바 퓨전 한식, 언제부터 누가 이 말을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아마도 국가 간 정상들의 만찬과 오찬 때 입맛을 돋울 메뉴로 10종 안팎의 정통 양식 코스에 한국의 맛을 풍기면서도 이색적인 메뉴가 가미된 음식을 내어놓으면서 알려지지 않았을까. 아울러 한식을 세계화하는 노력이 이른바 퓨전 한식을 만들게 되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퓨전이 일상적이어서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이름 없는 자그마한 식당에만 가도 우리가 늘 먹는 라면이나 국수, 김밥, 볶음밥은 물론 닭갈비, 주꾸미볶음에도 치즈가 듬뿍 들어간 걸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맛있게도 먹는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피자나 파스타, 버거 종류에 익숙한 식생활이어서인 듯하다.
하지만 나이가 50~60대 이상만 돼도 퓨전음식에 그리 익숙지 못하다. 그냥 한식도 아니고 양식도 아닌,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하지만 우리네의 입맛과 손맛은 아마도 세계 제일이니, 퓨전 음식이라고 어이 잘 만들지 않을쏘냐? 우리 조상의 뛰어난 조리 솜씨는 음식의 궁합에서 알 수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들이 단지 경험칙으로 만든 먹거리의 조합인데, 현대의 과학적인 영양 분석에 어찌 그리 딱 들어맞는지 감탄치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우리의 감각은 음식뿐 아니라, 문화 예술 등 다방면에서 정말 탁월하다. 그래서 이제는 기성세대도 퓨전 음식에 점점 거부감이 없어져서, 전통적인 한식은 물론이거니와 퓨전 한식의 새로운 맛에도 다가서는 듯하다.
동부이촌동에는 이름이 난 맛집이 많은데, 남자가 주류를 이루는 셰프의 세계에서 ‘수퍼판(SUPER PAN)’은 꽤 알려진 여사장님이 주방을 관장하고 있다. 여름에 민어탕 같은 전통 한식도 맛있게 하지만, 주인장이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퓨전 한식이 눈길과 구미를 당긴다. 계절에 따라서 차림을 달리 하고, 새로운 음식을 늘 만들어낸다. 전채요리로 스테디셀러인 서리태 마스카포네나 사천풍 가지볶음, 메밀샐러드에 멋과 맛이 있다. 식사에 맛깔나게 조리한 한우바싹불고기나 업진살수육, 목살숙주볶음도 있지만, 불고기와 주꾸미를 넣은 떡볶이와 말린 나물 리조또나 일본식 하야시라이스 등은 퓨전 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디저트로 티라미수와 브라우니가, 음료는 커피와 오미자차, 모히또를 비롯한 10여 가지가 있다. 단품 메뉴의 선택이 어려운 손님에게 3종류의 코스 요리를 갖추어 놓고 있는데. 10종류가 훨씬 넘는 맥주와 증류식 고급 소주가 있어 애주가의 술자리로도 좋다. 특히 와인은 80여 종이나 구비하고 있어서 애호가에게 식사를 곁들인 자리를 마련하기에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수퍼판이 오래된 아파트 단지고 상가인 곳에 있다 보니, 외관은 요즘 새로 지은 건축물 같은 쌈박함과 거리가 멀고, 인테리어도 그저 소박하다. 공간도 예닐곱 명이 따로 앉을 곳이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협소하다. 하지만 음식을 맛으로 먹지 건물을 보고 먹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단지 가격대가 다소 높아 가성비가 좀 떨어지지만, 입과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는 소위 가심비는 단연코 최고다. ☎ 02-798-3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