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한국은 다문화국가이다. 서울은 뉴욕, 파리, 베를린처럼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대학로도 예외가 아니다. 옛날에는 외국인이 연극을 보러오면 말이 아니라 그림을 보러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문화적 만족을 위해 극장을 찾고 있다.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목격한 일이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 안내자가 이벤트의 하나로 화장품 선물을 주려고 대학로에서 가장 먼 곳에서 온 관객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먼저 부산, 대구에서 온 관객이 손을 들고 그 다음에 외국인처럼 보이는 중년남자가 손을 들고 자기는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한다. 안내자가 그럼 한국말을 잘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국 체류기간이 20년이 넘는 이 외국인은 어쩌면 당신보다 한국말을 더 잘 할 거라고 하면서 크게 웃었다.
이처럼 한국사회가 다문화시대에 들어섰는데도 희곡번역은 아직도 부진하거나 지역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 때는 희곡번역이 번성하여 창작극의 활로를 막는다는 부정적 여론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문화시대에 걸맞게 희곡번역이 확장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희곡번역은 개화기부터 한국인의 세계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는 것이었다. 시, 소설은 글자를 통한 간접적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연극은 글자를 넘어 몸을 통한 체험으로 완성되는 것이어서 희곡번역은 그만큼 서양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이기로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번역희곡이 대중적인 신문지면에 게재되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이를테면 여성해방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입센의 「인형의 집」이 「매일신보」에, 체호프의 단막희곡 「곰」 「기념제」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어권과 독어권의 희곡번역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프랑스어권에는 몰리에르와 부조리 희곡의 부분적 번역에서 머물러 더 이상의 진전이 없으며 독어권에서는 브레히트, 뒤렌마트, 막스 프리쉬 등의 희곡 번역이 활성화되어 한국연극계에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지만 지금은 정중동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권의 희곡번역과는 달리 2000년 이후 아시아 시대를 맞아서 중국, 일본, 인도와의 교역과 문화교류가 최고조를 구가하는 데도 희곡번역은 그대로 정체된 상태이다. 일본희곡은 연극인이 중심이 된 한일연극교류회가 일년에 4~5편의 현대희곡을 번역하는 정도이고 중국희곡은 개인연구자가 원곡(元曲), 명대 희곡과 현대 희곡을 일부 번역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어서 중국의 거대한 희곡유산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행히 최근에 중국희곡전공자가 뜻을 모아 「중국현대희곡총서」라는 이름 아래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현대의 중국희곡을 체계적으로 번역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 않다. 희곡번역은 단순히 문학적 작업이 아니라 한국연극이 세계와 소통하고 세계성을 획득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