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제4회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8월7~1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소극장)
일반적으로 장애라 함은 ‘신체 또는 정신기능의 저하, 이상, 상실 또는 신체 일부의 결손’ 등을 지시하는 협의의 정의와 더불어, 이러한 상태는 물론이고 그로부터 초래하는 생활의 곤란까지 포괄하는 광의의 정의로 구분될 수 있다. 전자가 의학적 차원의 접근이라면 후자는 의학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포괄하는 접근이라 하겠다.
우리나라는 오래도록 장애인 복지정책에 있어 장애인에게 당장 필요한 수당과 혜택을 주는 정도에 머물렀으며 장애인 문화예술정책에 관해서는 크게 내세울만한 방안 모색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장애인 예술과 장애인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미비하다는 한계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장애예술 및 장애예술정책의 진화과정에서 전환점이 되는 해는 2005년으로 법과 제도, 체계, 단체, 연구, 인프라, 지원 등 그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발전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본격적인 장애인예술 지원사업은 2008년 국고와 2010년 복권기금을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장애예술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의 역사가 짧다보니 장애예술의 전문화 과정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었다. 장애예술 중에서도 장애무용은 특히 사회적 관심과 수요가 낮은 상황이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과연 무용예술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적지 않았다. 현실적인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장애무용 활동의 구심점이나 플랫폼이 될 만한 행사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2016년 9월5일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의 정착을 위한 과제”라는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의 의미와 과제」에서 자세히 언급하였으며 여기서의 논의 역시 그 발제에 일부 근거한다.
2016년 출범한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는 장애무용 분야의 체계, 창작, 교육, 교류 등에 있어 일종의 구심점이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올해로 제4회를 맞이한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는 8월7일부터 1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총 5개국에서 온 무용가들의 11개 작품을 소개하였다. 원래는 해외초청작 6개와 국내선정작 6개로 계획되었으나 해외초청단체 중에서 스페인과 쿠바에서 활동하는 바르베이토 프로젝트가 출국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갑작스럽게 취소되었다. 총 11개에 이르는 국내외 장애무용 작품들을 내용적으로 분류해보고자 한다.

장애를 한계가 아닌 도전으로
장애무용가들이 춤의 주체로서 활약하는 작품들에서는 ‘Nothing is Impossible(불가능은 없다)’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문구가 실제로 다가오는 감동을 주었다.
현대무용가 이광석이 2008년에 창단한 댄스컴퍼니미디우스는 『엇갈린 투
(套)』란 작품을 선사한다. 청각장애 형과 뇌성마비 동생 사이에 소통이 단절된 상황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까지를 빗대고 있다. 청각장애를 가진 이광석과 함께 언어장애 은찬, 지체장애 강현민, 그리고 비장애 최성옥으로 이루어진 출연진은 각각 청각장애 형과 뇌성마비 동생 그리고 그 둘의 내면으로 역할하면서 복잡 미묘한 관계와 감정을 표현한다. 4명의 남자 무용수가 모두 동작수행능력에서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면서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작품의 주제 역시 뚜렷하고 강렬하게 표현되었다. 단지 장애라는 신체적 한계를 넘어섰을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주제를 움직임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상당한 완성도를 갖췄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어빌리티(Ili-Abilities)의 『디스-커넥트(Dis-Connect)』는 네덜란드, 칠레, 브라질, 미국, 캐나다 그리고 한국 출신의 다국적 무용가 여덟 명으로 이루어진 브레이크댄스 크루다. 아프지만 강하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일어빌리티(Ili-Abilities)라는 단체명처럼 선천적,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남성 무용수들이 비장애 무용수들 못지않은, 때론 능가할만한 움직임을 펼쳐보였다. 다리가 절단된 무용수들은 상체를 활용하는 강도 높은 움직임을 실현하는데 비보잉, 체조, 아크로바틱, 현대무용 등을 넘나드는 움직임을 차례로 선보인다. 선천적으로 사지의 일부가 약한 지체장애 무용수들도 목발을 짚거나 맨 몸으로 같은 맥락의 움직임을 전개하였다. 심지어 청각장애 무용수는 장애를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기까지 한다.
일본에서 온 켄타 캄바라는 이분척추증이라는 심각한 장애를 딛고 휠체어 무용수로 이름을 알려왔다.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에서 심하게 쇠약하고 뒤틀린 허리와 다리를 탄탄하게 근육이 붙은 어깨와 팔로서 극복해가는 움직임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휠체어 위에서 양팔로 물구나무를 서는 순간 그의 삶과 춤에 대한 의지와 열정과 노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에 매년 빠지지 않고 참여해왔던 춤추는 은평재활원에서는 올해도 홍혜전의 안무로 지적장애인 11명을 출연시킨 『가능한 춤 2019』를 펼쳤다. 아무래도 복잡 다양한 안무를 시도하기보다는 지적장애인들이 별 무리없이 스스로 즐기면서 움직일 수 있기 함으로써 치유와 교육과 예술이 어우어진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매년 크게 다르지 않는 패턴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영상의 동화적 이미지의 퀄리티를 높임으로써 관객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자극하였다.
『달, 꽃 그리고 빛』은 춤・고우리의 대표 김혜란의 안무에다가 청각장애를 가진 김영민의 춤 그리고 작곡 및 가야금 연주을 맡은 김효숙의 협연으로 이루어졌다. 한 여인의 삶을 잔잔하게 되짚어보는 차분하고 잔잔한 춤이 펼쳐지는 가운데 정갈한 시청각적 연출이 이러한 분위기를 한층 돋운다.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에 매년 출연해온 김영민의 경우 춤 역량이 상당히 향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예쁜 춤선과 표정에 집중하기보다 내면의 감정을 진솔하고 깊이있게 끌어냄으로써 예술적 깊이를 더해가는 과제는 남아있다.
온몸컴퍼니는 뇌병변장애를 가진 무용가 강성국으로 대표되는 단체로 그동안 무용과 연극을 중심으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전개해왔다. 『곧은 목지』란 목이 부러져 붙어버린 목장애인을 말하는데 불편한 행동거지로 인해 먼 곳을 응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밖에는 모른다고 한다. 뒤틀리고 흔들리는 몸으로 어떻게든 나아가려는 고군분투는 강성국의 의지와 노력을 머금은 생명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협업이 돋보이다
장애무용가와 비장애무용가의 협업이 돋보인 작품들도 있었다. 우노프로젝트(UNO Project)의 『우노(Uno)』는 남과 여, 장애와 비장애, 독일과 아르헨티나 등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두 명이 만나 하나(Uno)의 춤을 만들어간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말이 아닌 몸을 통한 소통의 춤을 추었다. 안무가이자 무용수로 활약한 도미니크 멜헴은 2014년 베를린 무용워크숍에서 만난 뇌병변 장애를 가진 롤랜드 월터과 함께 마치 한 몸처럼 얽히고설킨 조형물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을 펼친다. 서로 엉켜져 있는 두 몸은 단계적이고 연쇄적인 작용에 의해 움직임을 진척시킨다. 물론 도미니크 멜헴의 자연스러운 리드가 있긴 하나 작품의 아이콘으로 작용했던 이는 롤랜드 월터다. 따라서 서로의 가치를 돋우는 시너지 있는 듀엣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출신의 데니스 산타카나는 마드리드에 있는 CSDMA에서 현대무용 학위를 수료한 후 여러 경험을 거쳐 2013년부터 자신의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는 비장애무용가 빅토르 페르난데스와 함께 『엔쿠엔트로스(Encuentros)』라는 작품을 실현한다. 누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두 명의 움직임에서 균형이 흐트러지거나 방향이 틀어진 순간이 없었으므로 전문적인 현대무용 작품으로 여겨질 만하다. 물론 역동적인 동작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주를 이루었다.
이동하댄스프로젝트의 『결혼』은 지체장애인 최종철과 비장애인 장라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커플이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과 문제를 짚어간다. 결혼만큼이나 흔해진 이혼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문제를 때론 재치있게 때론 예리하게 그려낸다. 각자의 성장, 운명 같은 만남, 순식간에 이루어진 결혼, 그리고 이후 수많은 부딪침으로 인한 갈등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무엇보다도 장애와 비장애 무용가가 동등한 관계로 작품을 끌어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새로운 예술적인 시도를 담은 다매체적인 작품
이젠 장애인과 한 무대에서 함께 춤춘다는 것만으로는 주목받지 못할 정도로 장애무용의 예술적 퀄리티가 빠르게 성장하였다. 더 나아가 동시대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인터액티브적인 협업이 시도되기까지 한다.
스페인 세비야 출신의 무용가이자 이론가인 호세 갈란은 2010년 플라멩코인클루시보(José Galán Flamenco Inclusivo)란 단체를 만든 후 연령이나 장애를 넘어 누구나 플라멩코를 출 수 있도록 이끌어왔다. 『수에노스 레알레스 데 쿠에르포스 포시블레스(Sueños Reales de Cuerpos Posibles)』란 작품에서는 지체장애를 안고 있는 중년의 육감적인 여인 롤라 로페즈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녀는 손으로 바닥을 두드리거나, 휠체어를 타고 선회하거나, 파트너 어깨위에서 자세를 취하는 등 플라멩코의 기존 움직임을 변형해갔다. 여기에 삶의 애환을 리드미컬한 가락으로 승화시킨 플라멩코 기타 연주, 감각적이고 개성 넘치는 플라멩코 드레스와 숄,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어공주, 마네킹 다리, 고(古)저택, 자연풍광 등을 몽환적인 형상으로 그려낸 미디어아트가 어우러져 예술성 높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공학도이자 무용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매체적인 작품을 만들어온 이정섭은 『시지프』란 작품을 통해 장애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지체장애를 가진 김우진과 하지민의 움직임과 함께 커다란 고무공 위에 미디어아트를 투영함으로써 색다른 인터액티브적인 작품을 시도한다. 춤과 매체 간의 보다 흡착력 높은 교감은 요구되는 바다.

지난 반세기 가량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으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향상되었고 이에 따라 개인의 여가생활 더 나아가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였다. 하지만 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 욕구를 만족시킬만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문화예술정책은 전무하다시피 하였으며 2005년 이후에나 확립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의 개최는 장애인무용의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장애무용에 대한 체계, 창작, 교육, 교류 등에 있어서 다각적이면서도 종합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다.
이러한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의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장애인의 문화기본권 신장을 기대할 수 있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표현과 향수의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문화기본권 신장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문화 사각지대를 해소하여 통합적 사회 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둘째, 그 동안 소규모 점조직으로 활동해온 장애인무용을 한 자리에서 망라해서 집약적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장애인무용의 현황과 예술적 수준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셋째, 국내 장애무용과 해외 장애무용, 장애무용계와 일반무용계, 장애인무용수와 일반무용수, 장애무용과 관객 등 사이에 다양한 교류와 소통과 교감의 장을 형성한다. 이를 통해 장애무용과 장애인무용수의 성장에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다. 넷째, 보다 안정적인 공연제작 현장을 제공함으로써 장애무용수의 창작활동을 고취할 수 있으며 신진 장애무용수에게 자기표현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창작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다섯째, 대규모 복합 행사를 준비하면서 장애인무용에 특성화된 기획, 행정, 홍보·마케팅 등의 체계를 확립할 수 있으며 관련 인력의 숙련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무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4회째를 지난 시점에서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는 장애무용 활동의 하나의 구심점이나 플랫폼으로 정착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의 성공적인 정착은 장애무용의 예술적, 교육적, 사회적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이러한 장애무용 축제를 통해 전 세계 장애무용가를 상당수 아우르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빠르게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립해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도 국내외 장애무용, 장애와 비장애무용, 장애무용과 사회를 아우르고 장애인무용수의 전문화와 저변확대를 위해 나아가야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 무용제의 성과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장애무용 전체의 성과로 확립될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