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와이즈발레단 김세연 안무의 『헨젤과 그레텔』(9월20~21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와이즈발레단이 신작 발레작품을 선보였다. 전2막4장. 상연시간 약 85분. 『호두까기인형』 과 궤를 같이하는 가족동반관객용 작품. 어린이가 주인공이며 집을 나와 고난에 빠지지만 낙담하지 않고 마녀를 물리치고 부모님을 만나 다시 행복해지는 이야기. 마녀는 코믹하고 숲속의 요정들은 낭만 발레의 발레블랑을 보여주었다.
안무가 김세연은 스페인에 살고 있지만 세 차례 이상 왕복하며 작품을 만들어 냈다. 김길용 단장에게 작품의 구성이나 안무에 참여했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전적으로 김세은이 했다. 무대나 의상 같은 제작비가 들어가는 부분만 협의했다.” 공연이 끝나고 홍성욱 예술감독에게 음악 선곡에 관여 했는지 묻자, 고개를 저었다. “안무자가 모두 직접 고른 것이다.” 곧,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기본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구성해낼지는 오롯이 김세연의 몫이었다는 얘기. 물론 가족물이 필요하다는 발레단의 의도는 십분 이해했을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투르기, 안무, 연출 등 모두 메이드 바이(made by) 김세연.
가볍게 즐기려 했던 마음은 1막1장을 만나며 조금 달라졌다. 헨젤과 그레텔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소란을 부리고, 일에 지쳐 돌아온 엄마는 아이들을 숲으로 쫓아냈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아빠는 비틀거리며 들어오고 엄마와 함께 배고픔에 지친 허우적거리는 슬픈 춤을 추는 것이다. 1막1장에서 안무자는 다른 버전들의 ‘헨젤과 그레텔’ 속에서의 ‘배고프다’는 설정을 뛰어넘는 ‘굶주림’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훔퍼딩크의 동명 오페라에서도 배는 고프지만 ‘굶주림’에 대한 묘사는 없는 것이다. 김세연 연출은 원작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기아(飢餓)’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우리가 잘 아는 「향수(Das Parfum)」라는 독일 소설이 있다. 은둔의 작가라고 알려진, 공개된 사진만 봐도 어딘가 요상한 분위기의 남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이다. 소설 첫 부분의 주인공이 태어나는 장면의 묘사는 끔찍하다. 주인공 장 그루누이의 어머니는 생선 좌판에서 대구의 비늘을 손질하다가 쪼그리고 앉아 다섯 번째 아이를 낳는다. 이미 네 차례 그랬듯이 생선 손질하던 칼로 탯줄을 자르고 생선 내장과 대가리 사이에 아이를 던져버린다. 그러나 그녀가 피묻은 칼을 손에 들고 비명을 지르며 산통으로 쓰러지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파리떼에 뒤덮여 앙앙거리는 아기를 찾아내고, 그녀는 영아살해범으로 참수된다. 이 작품의 배경은 1738년 여름, 파리다.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촉발된 유럽의 종교갈등은 각 지역의 왕위계승권과 맞물리며 대충돌이 벌어졌고, 개별국가 안에서의 분쟁은 루터 백년 후 마침내 ‘30년전쟁’이라는 국제적인 전쟁으로 번졌다.(1618~1648)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참전해 상대방을 도륙한 이 잔혹한 국제전의 전쟁터는 독일. 독일은 그야말로 피바다, 불바다를 거쳐 황무지화된다. 독일에서는 이 기간 동안 살해, 기아, 질병으로 인구의 절반에서 2/3까지 사망한 걸로 추정한다. 독일은 전쟁 이후 백년이 지나서야 겨우 전쟁 전의 생산량 수준까지 복구 할 수 있었다는 것. 유럽에서 가장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독일 상황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보는 건 어렵지 않다.
쥐스킨트는 30년전쟁이 끝나고 90년이 지난 후의 유럽 최고 도시 파리를 영아살해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고아원이 미어터지는 곳으로 상정한 것이다. 그의 상상은 실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년이 넘게 죽음의 공포와 굶주림에 허덕였던 독일의 모습이란 어떠했을 것인가. 뭘 상상하던 그 이상일 것이 분명하다.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숲속에서 커다란 솥을 걸어 놓고 이상한 약초, 두꺼비를 넣고 국 끓이는 마녀의 모습은, 그저 살 곳을 잃고 산속으로 들어간 일단의 무리가 닥치는 대로 먹을 만한 것을 구해와서는 몽땅 쏟아 부어 먹는 것일 뿐인 것이다. 어쩌다 운좋게 숲속을 헤매는 길잃은 사람을 발견하면 잡아다가 솥에 넣는 것이다. 모두 참혹한 기아의 결과인 것이다.
이런 당시의 여러 모습들은 민간에서 전승 되었고 그 이야기들을 그대로 모아 출간 한 것이 그림형제다. 그림형제는 1785년경에 태어났고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1815년부터 「아동과 가정의 동화집」, 「독일의 전설」, 「독일어 문법」 등의 저작을 발표했다. 책이 출판되고 게재된 이야기들에 대해서 잔인하다는 비난이 쇄도했던 모양이다. 글을 읽는 것이 가능했던 도시 중간계급 이상의 지식인들의 당혹감은 상당했을 것이다. 이제는 잊고 싶은 처참했던 시절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놀랄 수밖에. 그림동화의 원전의 이야기는 매우 그로테스크 하고 잔인한 것이다. 그림동화에 실려 있는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 「라푼젤」 등은 아이 버리기, 사람 잡아먹기, 노예노동, 영아매매, 유괴 등이 모티브. 그야말로 적나라한 것들. 그림형제는 자신들의 책이 잔인하다고 비난을 받자 이렇게 항의했다.
“우리들은 부정한 것일지라도 무엇 하나 숨기지 않는 솔직한 이야기의 진실성에 순수성이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성서를 서두로 하여 여태까지 민중을 선도해온 어떠한 건전한 책에서도 이와 같은 의혹이 상당히 나타나지 않은 것은 단 한 권도 보지 못했다. 올바른 사용이란 나쁜 것을 끌어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교훈적인 말씀이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들의 마음의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기들을 별세계에 옮겨 놓고 해석하고 있다.”
그림형제는 이렇게 주장했으나, 물론 그대로 먹혀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부담스러운 것만 덜어내고 살짝 고치면 이렇게 단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순화된 여러 버전이 속출했고 마침내 1893년 바이마르 궁전에서는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 오페라까지 막이 올라 가는 것이다. 훔퍼딩크는 독일정통파 음악의 계승자였고 오페라의 음악은 훌륭해서 전편을 본 사람은 적을지라도 노래는 지금도 여러 곳에서 연주되고 있다.
오페라는 3막구성(1막3장, 2막3장, 3막4장)이다. 1막1장에서는 시킨 일을 하지 않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며 놀던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자 엄마는 산딸기를 따오라며 헨젤과 그레텔을 산으로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빠는 장사가 잘돼서 술에 취해 노래하며 집으로 들어오는 설정. 부부는 산에 마녀가 산다며 걱정한다. 1막2장부터 3막1장까지는 아이들의 모험담. 헨젤과 그레텔은 산딸기를 따며 놀다가 따놓은 딸기를 다 먹어 치우고는 빈 바구니를 가지고 돌아가면 혼날 생각에 다시 딸기를 따다가 밤을 맞게 되는 것. 2막2장에서 잠의 요정이, 3막1장에서 새벽의 요정이 등장하고, 3막2장에 과자의 집 발견, 3막3장에 마녀 등장. 3막4장에서 모든 저주가 풀리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걸로 막이 내린다.
발레 『헨젤과 그레텔』은 2막(1막2장, 2막2장)이다. 1막1장에 헨젤과 그레텔이 집을 나서고 2장에서 빛의 요정을 만나며 2막1장에서 숲의 요정, 과자의집, 마녀가 등장하며 2막2장에서 마녀를 처단하는 구성. 훔퍼딩크의 음악이 전체의 절반 이상 사용 되고 있고 나머지는 헨델, 비제, 모차르트로 채워졌다. 선곡이 좋다. 음악은 전혀 거슬리지 않게 작품과 잘 섞여들었다. 오페라의 아름다운 아리아를 듣는 건 보너스였다. 전반적으로 작품은 무난하게 종착점에 도달했고 박수 받을 만했다.
와이즈발레단은 성공적으로 신작을 올리고 역량을 과시하며 신규 레퍼토리를 추가했고 김세연은 어떤 대작도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임을 입증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평탄하고 무난했다는 것 그 자체. 홍성욱 예술감독의 ‘너무 무겁지 않고 너무 가볍지 않은’이란 표현은 적절한 것이었다. 물론 그 자체의 성과도 인정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하지 않았다, 모험하지 않았다는 얘기일 수도 있는 것. 무난했지만 눈길을 확 잡아끌고 마음이 콩닥콩닥한 매력은 부족했다. 김세연에게 한국시장에서 상연되기 쉬운 가족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심했던 것일까. 1막1장의 굶주림에 대한 설정과 부부의 슬픈 댄스는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1막1장의 배고픔의 고통은 더 슬프고, 1막2장의 요정들은 더 신비롭고 2막1장의 마녀의 등장은 더 섬뜩하게 무서워야, 2막2장의 기쁨이 더 화려하게 빛날 것 아닌가 하는 것. 요점은 아이들에게 더 솔직해도 된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상상 이상으로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몰라도 된다거나 이런 내용은 과하다는 건 어른들의 편견이다. 적당한 고통, 무난한 무서움이 있을까. ‘솔직한 이야기의 순수성’이라는 그림형제의 말을 다시 상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