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최명현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창작자지만 외향적인 활동을 펼치지 않는 까닭에 여전히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창작 스타일 역시 표피적으로 다가가면 별 감흥을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내재된 창작적 탐구와 실험적 의미를 느끼려 한다면 특유의 내음에 빠져들 수 있다. 한마디로 작가주의적 성향이 짙은 창작자라고 할 수 있다.
1982년 전남 남원 출신인 최명현은 고등학교 때 스트리트댄스를 췄다가 인천전문대학(現인천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으며 몇 년 후 한양대학교 무용과에 편입했다. 2010년부터는 댄스컴퍼니명(明)이란 단체를 만들어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며 젊은 기획공연이나 상주 프로그램에 다수 선정돼왔다. 2012년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에서 최우수안무가와 「서울댄스콜렉션」에서 수상작에 올랐으며, 2013년 말레이시아 DPAC 레지던스에 입주했다. 2016년에는 독일 베를린 ZK/U 레지던스에 입주작가로 있으면서 『사유의 방: 소멸 그리고 교감』을 초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어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스, 2018년 일본 「사이타마 안무경연대회」 대상과 「후쿠오카 프린지 댄스페스티벌」 관객상 등 상당히 의미있는 커리어를 쌓아왔다. 올해는 「크리틱스초이스」에서 『운동과 시간의 연속성에 관한 연구』란 작품으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명현이 이끄는 댄스컴퍼니명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해 그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는 ‘동행’이라는 기획을 8월13일부터 1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펼쳤다. 최명현의 대표 레퍼토리인 『마음소리』, 『사물과 인간 사이』, 『업사이클링 댄스』와 함께 미나유의 『로미오+줄리엣』과 박성율의 『사물의 본질』 총 다섯 개의 작품을 4일에 걸쳐 펼쳤다.
그중 마지막 날인 16일을 장식한 작품은 『업사이클링 댄스』(2019년 초연)였다. 여기서 업사이클링(upcyccling)이란 ‘재활용품을 이용해 기존의 제품보다 품질이나 가치가 더 높은 새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다룬 이 작품은 생산과 소비 그리고 배출로 인한 환경오염이 눈에 보이지 않게 인간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구조를 고발한다.
무대에는 공기를 한껏 머금고 부풀어 오른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들이 가득하다. 일곱 명의 남녀 무용가들은 검정 비닐봉지에서 공기를 빼서 차곡차곡 정리해놓는다. 무용가들은 둘씩 짝을 지어 걸어들어와서는 관객을 응시하면서 요구르트, 커피, 소주, 소시지, 햄버거, 치킨, 즉석라면, 숙취해소음료 등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음식들을 먹어 치운다.
곧이어 홈쇼핑 패션쇼 같은 행태가 펼쳐지기도 하지만 의상은 괴상하기 짝이 없다. 파라솔 모자, 은박 판쵸, 스노쿨링 마스크 등으로 무장하고 나온 무용수들은 환경오염에 대비한 신(新) 패션을 광고한다. 그들 옆에서 쇼호스트는 마감 임박을 외치면서 2020년산 신선한 공기도 판매한다고 소개한다. 이러한 식으로 대량소비, 편이성, 과잉소비, 쓰레기 등이 야기한 환경오염으로 위협받는 미래에 대한 희화화가 전개된다.
우주비행사를 연상시키는 헬멧과 방호복을 입은 최명현은 환경오염의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더 미래로 떠나는 로켓(타임머신)에 올라탄다. 그가 도착한 더 미래에는 어둠이 깔린 곳에 풍선처럼 부푼 검정 비닐봉지들이 널브러져 흔들리고 있는데 마치 외계 괴물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문뜩 1969년작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외계 혹성인 줄만 알았던 기이한 그곳이 인간의 오만과 과욕으로 망가져 버린 미래의 지구였다는 사실에 절규하는 찰톤 헤스톤이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초중반에 다소 뻔하게 전개되었던 작품은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구슬이 꿰어지면서 강렬한 주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최명현이라는 창작자의 행보는 작금의 젊은 무용가들에게 일종의 모델로 거론될 만하다.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과 「서울댄스콜렉션」에서의 수상이라는 화려한 데뷔에도 흔들림 없이 자기만의 창작적 길을 걸어왔다. 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창작적 실험을 전개하는가 하면 조명과 무대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축적하고 망라해놓은 듯한 『사물과 인간 사이』를 2018년 말에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크리틱스초이스」에서는 『운동과 시간의 연속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 메이저 대극장 무대에서도 소통될 만한 창작력을 발휘했다. 더 나아가 10주년을 맞이해 작은 축제 형태로 4일간 여러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한편 총 6차례에 걸쳐 온라인 상연회까지 마련했다. 8월21일부터 9월25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8시에는 댄스컴퍼니명의 레퍼토리 9개가 공개된다. 무언가를 쌓기도 전에 지원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생산성 없는 작품 활동을 몇 년 이어가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리는 신진들이 많은 시기에 최명현의 발자취는 느려 보이지만 동시에 확고하고 내실있게 느껴진다. 창작자로서의 자기만의 예술이라는 성을 쌓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민과 탐구와 시도의 기간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최명현이 걸어온 길은 정석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