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우리 춤에는 「現代化」라고 하는 화려한 命題(명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 후 五○年! 아직 이 命題에 대한 아무 메아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幻想(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幻想이 아니고서야 그토록 많은 舞踊家(무용가)와 歲月(세월)을 魅惑(매혹)시켰을 리가 없지 않은가?
「現代化」가 누군가에 의하여 宣言(선언)됐듯 오늘의 누군가가 이것을 廢棄(폐기)한다고 正式으로 宣言하면 안 되는 것일까?
여하튼 춤의 「現代化」라는 말의 魅力(매력) 그 內容(내용)이 改革(개혁)인지 改善(개선)인지를 質問(질문) 받는 경우는 있어도 그 槪念(개념)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現代化」라는 命題는 西歐(서구)춤을 통하여 처음으로 自己의 춤을 自覺
(자각)한 우리의 初代 舞踊家들이 傳統 춤의 權威(권위)에 맞서기 위한 名分이었고 武裝(무장)이었다.
그런데 그 命題 밑에서 춤을 만든 사람들의 態度(태도)에는 問題(문제)가 남는다.
하기야 새로운 代案(대안)을 提示(제시)해야 할 立場에 놓였던 그때 初代 舞踊家들의 촉박된 狀況(상황)은 짐작할 수 있으나 어떻든 그 춤의 態度는 성급하고 安易(안이)한 것이었다.
이 安易性은 當代(당대) 本格的인 舞踊家가 아니라고 배척당한 裵龜子
(배구자)나 本格的임을 自處(자처)한 初代의 두 舞踊家이건 간에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이 모두 우리 傳統 춤이나 外來 춤 어느 것에도 完璧(완벽)하게 알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에서 말이다.
그러나 제 춤을 自覺하였다는 立場에서 말한다면 裵龜子야말로 제일 먼저의 인물이다.
여기에는 本格 非本格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裵龜子는 「現代化」라는 遁辞(둔사)도 않고 大衆的인 춤과 우리 在來춤의 舞臺化(무대화)를 試圖(시도)하였었다. 그러니까 후에 나타난 「本格」들이 앞의 「非本格」의 춤을 모방改善하였으면 하였지 특별히 다른 「새것」을 만들었다는 말을 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아직까지도 이상한 일은 裵의 춤에 拍手(박수)를 보낸 當代의 保守
(보수)들이 「本格」들이 내놓은 「現代化」에 대하여 그리도 酷評(혹평)을 가한 일이다.
애교는 용서되지만 本格에는 무서운 破壞力(파괴력)이 있다는 것을 直感(직감)하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럼 새 思潮(사조)와 새 時大 앞에 이런 保守들의 義憤(?)은 큰 效果(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물론 이 「現代化」가 새 時大의 힘만으로 돋보인 것은 아니다. 그 自体에 魅力(매력)을 갖고 있었다. 즉 춤의 새로운 템포며, 多樣(다양)한 素材(소재)로의 創作 그리고 同伴藝術(동반예술)들의 호응… 여하튼 現代化 춤이 宗主國(종주국) 日本에서 好評을 얻게 되자 在來의 춤은 빛을 잃는다.
그러나 國內, 그 「現代化」의 批判者(비판자)들은 이에 承服(승복)하지 않았다.
마치 海外에서 人氣 있고 이름 떨친 韓國民俗舞踊團이 國內에서 그렇지 못한 것과 같이….
評論家 朴容九(박용구) 씨의 「民俗舞踊海外公演에 문제 있다」(서울신문 1972년 5월12일)는 글을 읽으면 옛날 그때 具眼之士(구안지사)들의 厳格(엄격)했던 그 音聲(음성)을 다시 듣는 것 같다.

「… 어느덧 민속무용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한국의 얼굴처럼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무즈먼트(娛樂)’로서 즐거운 눈요기에 그치는 ‘민속무용’이 한국의 얼굴이라면 너무 서글픈 일이 아닌가 (中略) 오늘날 民俗舞踊 또는 韓國舞踊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장구춤, 부채춤, 농악춤, 북춤 등은 宮中에서 洗鍊(세련)되고 體系化(체계화)되어온 한국무용도 아니고 民衆 속에서 키워진 대로의 民俗舞踊이라 할 수도 없다. 安易하게 舞臺化를 서두른 나머지 妓樓(기루)에서 退嬰化(퇴영화)한 춤까지 끌어들여 系譜(계보)조차 애매한 대로 形態만이 확대되고 固定化해버린 공연물이다. … (略)」

그런데 近來(근래)에 와서 이 「現代化」라는 말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모두들 自覺時大以前(자각시대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준다. 「原型을 찾는다」는 말을 서슴없이 들고나온다. 물론 그 原型이 무엇인가는 두고 論議될 일이지만 여하튼 우리 近代舞踊에 있어서 記憶(기억)하여야 할 일은 自己를 自覺함과 同時에 진정한 自己를 잃어버린 일이다.
먼바다에서 자란 고기의 母川歸還(모천귀환)이 제 뜻이 아니고 大自然의 「리듬」인 것처럼, 춤의 경우도 설혹 이것이 宿命的(숙명적) 循環原則(순환원칙)에 따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를 맞이하는 이 時大의 뜻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舞踊劇(무용극)에 대한 여러 가지 課題(과제)를 안고 있다.
國立劇場과 같은 大型舞臺(대형무대)가 만들어지고 거기에서 할 수 있는 춤이란 劇形態(극형태)의 것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춤 技巧(기교)의 質이나 量으로 「발레」 槪念의 舞踊劇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수많은 試圖로써 證明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舞踊家와 理論家들은 이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말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재 保有(보유)하고 있는 춤만으로는 발레와 같은 춤 爲主(위주)의 舞踊劇은 안 된다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 文藝振興院(문예진흥원) 속에 舞踊開發委員會(무용개발위원회)라는 아마도 世上에서 우리밖에 없을 춤 機構(기구)를 만들어 새 技巧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이런 機構가 우리밖에 없다고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일이 되도록 뒷받침만 된다면…)
그러나 간간 唱(창)이 곁들인 우리 춤 小品에서 느끼는 것은 소리에 맞추는 춤이 그리도 强烈한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곁에서 소리의 敍述(서술)로 不足(부족)한 춤사위를 도와주고 劇內容(극내용)을 춤으로 더 强調하고 하는 式의 새로운 우리 式의 舞踊劇은 안 되는 것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본다.
自覺時大以前의 소리와 놀이와 춤이 있는 「山臺놀이」의 原型으로 돌아가 생각해볼 만도 하다. 그리하여 이것을 現代劇場的인 訓鍊(훈련)으로 洗鍊시키고 體系化하면 어떨까 하는―.
앞으로 우리 춤의 主題는 무엇일까? 그 主題는 필경 舞踊劇과 연결되는 것이어야 할 것 같다.

- 空間 1975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