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 대구시립무용단 김성용 안무의 『존재』(8월16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대구시립무용단의 77회 공연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재난 속에 새롭게 선보이는 ‘춤 영화’였다. 예술감독 김성용의 「존재 더 무비(The Movie)」(8월16일 오후2시.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는 시국에 따른 돌파구로 춤을 댄스필름이라는 장르를 통해 관객에게 다가서려는 도전이었다. TV에서 가끔 보여주는 춤 무대의 중계와 요즘 자주 등장하는 온라인 공연과 무엇이 다를까? 매체를 통한 공연 프로그램에 회의적이었던 선입견으로 방해 받지 않고, 신선한 시도이기를 바라며 극장을 찾았다. 공연 전 로비에 나타나 관객들과 사진을 찍는 시립무용단 단원들의 모습에서 낯설고 여유로움이 보였다. 스크린으로 대신하니 예쁜 드레스를 입고, 관객을 맞이하는 이벤트도 가능했다.
영화 상영 전에 TV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예술감독 김성용과 촬영감독 김득중, 음악감독 서영완이 나와 간단한 시사회를 가졌다. 각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어떤 주안점을 가졌는지, 전체 춤 공연을 영화화한 첫 시도 등 공연에서 봐야 할 점 등을 소개했다. 오전 11시에 이뤄진 시사회의 약식으로 보인다. 오늘 상영될 영화의 시사회를 몇 시간 전에 하는 것이 어떤 예상효과를 두고 시행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영화의 본 상영 전 무대 인사라면 감독들이 서서 자신의 작품 의도를 간단히 설명해도 좋을 듯했다. 아나운서가 나오고, 세트가 갖추어지지 않은 무대에 의자를 설치하는 등 중요치 않은 일에 힘을 쏟고, 시간을 뺏기는 불필요함이 방해가 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존재’의 가치를 보여주려는 그들의 공연 의도는 영화적인 효과에서 문득문득 스쳐지나갔다. 만남의 소중함이 클로즈업되고, 다소 지루한 음악의 단조로움 속에서 만남의 춤은 이어졌다. 춤의 언어 확장이 아쉽다. 감동은 없고, 그들의 기술만 보이는 춤은 사색의 흔적이 부족했다.
스크린을 거치는 동안 춤의 생동감은 사라지고, 단조로운 반복의 음악은 익숙함보다는 오히려 감각을 무디게 했다. 검은 의상과 조명의 효과가 사라진 스크린 장면은 오래된 흑백영화를 보는 거 같고, 간접적 공연관람인 온라인 공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이 주안점을 둔 춤을 온전히 스크린에 남기겠다는 예술감독의 의도라면, 촬영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되어야 실제 무대의 생동감을 화면에 그려낼 수 있다. 촬영감독이 주안점을 두었던 다양한 앵글 잡기는 평이한 춤 영상에 생기를 불어넣을 만큼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스크린을 통할 때 실제 춤 공연의 생동감이 급 다운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의상, 음악, 조명, 무대미술 등에서 좀 더 세밀하게 다가가야 한다. 상상력으로 극대화된 느낌의 장면이 아니라면 관객은 온라인 공연을 대하듯 지루한 영화를 마주해야 한다.
후반부에 음악감독이 영화적인 음악을 사용했을 때, 스크린 장면은 생기를 조금이나마 회복했다. 큰 소리의 효과적인 음악에 맞춰 단원들의 춤은 활력을 얻어갔지만, 무대는 어떤 조력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마지막 대단원은 승리의 음악에 맞춰 흩날리는 축복의 종이 꽃가루를 맞으며 춤추는 존재들은 감동적 장면을 연출했다. 살아있음의 감사함이 음악과 춤의 아름다운 조화로 그려졌다.
댄스필름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새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게 이어질 이유가 있어 보인다. 첫 시도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시립무용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많은 노력의 전환적 시도와 영화적 힘으로 춤이 재편집되고 기획될 때, 관객들은 새로운 장르 ‘춤 무비’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분야의 선구적 역할이 기대된다.

▒ 정갈한 흥취, 춤이 자유로운 서상재의 『지구인 파티』(7월25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관람객도 공연장 찾기가 쉽지 않은 한여름 주말 늦은 오후 시간, 코로나 바이러스로 까다롭게 출입 절차를 거쳐 객석에 앉았다. 공연 보기가 어려워진 불편함이 심기를 건드렸다. 다시 맘을 돌리니 이 어려운 상황에 공연하는 무용가들과 공연장을 찾는 귀한 발걸음이라는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저려 오기도 한다.
제3회 『상재 아트 팩토리(ART FACTORY) – 지구인 파티』(7월25일 오후7시,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가 올려졌다. 한국무용가 서상재는 대구를 기반으로 하여 활동하지만 전국에서 그의 춤을 보려는 기획자들의 초청이 적지 않다. 그만이 가지는 독특한 힘과 매력의 춤 때문일 것이다. 20대부터 춤 기량이 남달랐고, 이제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춤은 원숙미가 더해지며 춤의 기량도 더 넓은 폭을 가졌다. 춤 기술을 뽐내는 무용가들은 원숙미로 춤 기량의 퇴보를 가려보기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서상재의 나이는 젊다. 그리고 그가 춤 실력에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나이와 더불어 춤의 다른 맛을 풍길 줄 알고 기량도 줄어들지 않는다면, 관객에게는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막이 오르자 무대 중앙에 로봇 같은 반짝이는 쇠판 여러 조각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사람과 같은 그 형상은 관객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아주 조금씩 위로 올라가고 있다. 지구를 다스리는 조물주와 같은 위엄이 보이고, 다소 현대적으로 표현된 차가운 느낌의 설치물이었다. 솔로가 춤을 출 때 무대 위에서 서서히 설치물은 나뉘어져 삼각 모양의 고깔처럼 무대를 장식하기도 한다. 차갑고 다양한 개체로 보인다.
두 명의 남녀가 나타났다. 그들은 천진난만한 아담과 이브처럼 보였다. 여기까지가 작품내용을 따라갈 수가 있었다. 그 이후의 춤은 그냥 한 판의 춤이었다. 줄거리를 보여줄 어떤 단서도 주지 않은 채, 군무, 듀엣, 솔로로 나름의 의미를 가진 듯 추어졌다. 개연성 없는 작품 내용과 춤을 상관있게 보려는 관객들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차라리 제목만 있다면 상상의 나래를 펴는 아름다운 춤 무대일 텐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3장의 내용은 『지구인 파티』라는 제목과도 걸맞지 않았다.
그냥 지구인 파티라는 제목으로 춤 무대를 보자면, 훨씬 정감 있고 흥취 있는 서상재의 춤판이 될 수 있었다. 아담과 이브로 나온 두 명의 춤꾼(최재호, 김지현)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춤이 아니라 그들은 에덴동산에 갓 태어난 아이들 마냥 놀이 같은 듀엣을 보여준다. 다정한 발걸음의 대화, 많은 춤을 추지 않는 정갈함에도 지루하지 않은 춤의 깊이, 절제 속에 흥취를 품은 듀엣을 보는 동안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군무도 세련미와 다양한 변화로 눈길을 끌었다. 반복에서 오는 단조로움 중에 풍성함과 정갈함을 함께 보여주는 안무자의 힘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서상재의 독무는 춤의 언어를 더욱 풍부하게, 품위를 갖추고, 춤의 깊이가 느껴지는 중에 그 만의 자유로움이 넘실거렸다. 관객들은 편안히 담백하면서도 맛깔스러운 그의 독특한 춤 맛을 즐기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앞의 춤음악이 현악기의 경쾌함이 있었다면, 그는 우리의 창을 바탕으로 솔로의 무게를 더했다. 주인공답게 솔로의 무대는 무게와 감동이 함께 했다.
에필로그는 제목 그대로 파티였다. 타악의 리듬에 맡긴 춤 파티, 물 흐르듯 움직이는 군무의 흐름이 흥을 돋우었다. 왁자지껄하게 끝나지 않았다.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는 듯 열 지어 차례로 눕는 인간들을 찾는 그의 발걸음으로 막을 내린다.
서상재의 개인 무대가 세 번째라는 것이 놀랍다. 그가 추어왔던 많은 무대의 단편들만 모아도, 개인전 몇 개는 더 추가했을 것 같은데. 개인 춤판을 여는 것이 젊은 무용가들에게 쉽지 않음을 알게 한다. 그의 색깔을 품은 무대를 크지 않더라도 자주 가져서 자신의 춤 무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안무가는 춤판에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최상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족적이 그를 더 큰 안무가로 만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