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렌터카 없이 제주에 다녀왔다. 공항에서 제주도를 순환하는 일주 버스가 동편, 서편으로 나뉘어져 101번, 102번이 운영되고 있었다. 버스를 타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달리는 동안 운전할 때 보다 높은 시야에서 창밖의 풍경을 앞뒤좌우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동차로만 다니면 보이지 않았던 풍광이 느껴지고 자동차로만 다닐 때는 목적지 중심이라면 버스로 갈 땐 거쳐 가는 동네 지명부터 버스에 탄 어르신들 풍경을 미루어 짐작하며 오늘이 장날인지 아닌지, 어디를 많이들 가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주 공항에서 서귀포 안덕면 대평리 숙소에까지 렌터카 50여 분이면 족했을 법한데 한 시간 반가량 걸려 도착했다.
폭염 중에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느라 기미가 짙어지고, 가는 방향이 제대로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현지인에게 몇 번씩 물어봐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랐다. 헌데 괜히 비죽비죽 웃음이 나왔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백팩을 메고, 혼자서, 2015년인가 메뚜기 스프가 궁금해 찾아간 ‘쫄깃센터’ 라는 게스트하우스 이후 두 번째로 찾아가는 게스트하우스였다. 것도 지난봄에 문을 닫은 ‘티벳풍경’이라는 곳의 도미토리 숙소 이용은 내 생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게스트하우스 ‘티벳풍경’은 여행자 플랫폼이라는 실험을 하고 있는 고재열 전 시사인 기자가 제주에 비어있는 집을 2달간 렌트해 새로운 여행문화를 만들어보고자 마련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공간 이외에 제공해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용자 스스로가 공간사용법을 터득한다. 침구는 알아서 쨍한 햇빛에 말리고 사용 후엔 세탁하고, 청소도 사용자가 직접 한다.
여행을 얼마나 다녔나? 라는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행이란 또 다른 자기 자신과 얼마나 제대로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면 이용자가 스스로 책임지는 ‘티벳풍경’ 빈집 숙소문화는 비대면시대 여행의 뉴노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년퇴임 이후 새로운 일상을 맞으며 코로나19 사태에 즈음해 새로운 일상에서도 가능한 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으로 다닌다는 원칙을 정했다. 외식보다는 집밥을 손수 만들어 먹으려고 하고, 미팅도 집에서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의 전환은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생존을 위해 시도되고 있다. 타격이 큰 축제의 경우를 살펴보면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오프라인은 취소하고 온라인으로나마 진행했고, 「의정부음악극축제」는 5월에서 8월로 연기해 국내팀 중심으로 축제를 꾸려서 방역단계가 오르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축제를 선보일 수 있었다.
가장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한 축제로는 춘천시 100개의 장소에서 분산 개최하는 ‘춘천마임 백신(100scenes)’ 프로젝트를 기획한 「춘천마임축제」를 들 수 있다. 집콕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마음배달’이라는 놀이키트를 만들어 보급하기도 하고 온라인상으로 「춘천마임축제」의 상징 콘텐츠이기도 한 마임, 크라운, 그리고 춤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공을 들였다.
특히, 축제 개막작인 「빨간 장미의 세레나데」 작품은 춘천시 안의 아파트 단지에서 선보여 7월 「한국보도사진상」에서 ‘베란다 1열에서 마임공연 감상’이란 사진이 상을 받기도 했다. 축제의 개막장소가 아파트 단지요, 축제 관람 장소 또한 아파트 베란다 1열이라니! 팬데믹이 만든 축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 아닌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용기 있게 해본 실험의 결과이다.

고양아람누리 웹진에 서울거리예술센터 조동희 감독이 쓴 “해외 축제 상황”(*)을 보면 국내 상황과 다르지 않다.
벨기에의 대표적 서커스 축제, 「페스티벌 UP!」은 격년제로 올해 16회를 맞았는데 행사 일주일 전 벨기에 연방 정부의 지침에 의해 전격 취소됐다. 특히 페스티벌을 주관하는 서커스 창작센터 ‘재난 공간’(Espace Catastrophe)의 대표 카트린 마지(Catherine Magis)가 지난해 봄, 문화비축기지에서 있었던 서울서커스페스티벌 ‘서커스 캬바레’에 와서 아시아 및 국내 예술가들과의 교류 등 향후 국제 교류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며 아시아권의 전문가들을 초청하는 전문가 포럼을 올해 연다고 했었는데 아쉽게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거리예술축제로 「오리악축제」와 「샬롱축제」가 있는데 팬데믹에 즈음해 내린 두 도시의 선택이 다르다. 산악오지에 위치한 오리악에서 열리는 「국제거리극페스티벌」 경우 대외적인 축제프로그램은 취소하고 20년 동안 변함없이 해오던 지역주민 대상 프로그램인 ‘자유로운 들판!(Champ Libre!)’만 변함없이 올렸다.
한편, 「샬롱 거리예술 페스티벌(Festival Chalon dans la rue)」은 여름 바캉스 기간에 벌어지던 축제 대신 8월, 9월, 10월의 마지막 주말 세 차례로 나눠서 도시를 깨우고 사회적 관계를 복원시킨다는 계획이다.
8월 말에 진행되는 첫 번째 행사 ‘새벽’(Aube)은 거리 두기가 가능한 공간에서 작은 작품들을 공연해 샬롱시의 시민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9월 말의 두 번째 행사 ‘기상’(Lever)은 정원, 광장, 중정 등에서 관객들과 함께 한다. 그리고 10월 말에 펼쳐지는 ‘수평선’(Horizon)에서는 거리, 대로, 광장 등 축제의 대표적인 공간에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동안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이다. 문화자원이 많은 도시인 샬롱이라 가능하고 8월, 9월 10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소망도 담고 있다.

또 북미권을 대표하는 「몬트리올 서커스 페스티벌(Festival Montreal Completement Cirque)」은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프로그램은 취소되었지만, ‘전문가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실시간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해 비대면이었지만 새로운 창작 프로젝트 소개, 서커스 분야 주요 이슈 공유 및 토론 등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몬트리올시는 빈민 지역인 생-미셀(Saint-Michel)에 서커스 지구(Cite des arts du cirque)를 설정하고, 태양의서커스 본사, 몬트리올국립서커스학교, 서커스 전용극장 ‘토후’(Tohu)를 조성해 「몬트리올 서커스 페스티벌」을 주관해오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은 2017년부터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와 서커스 분야 교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19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실시간 온라인 방식으로 한국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서커스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환경의 변화로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상상하고 대안까지 실행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중에 하나가 해마다 5월이면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던 서울서커스페스티벌 ‘서커스 캬바레’인데 올해는 9월 초로 연기하고 국내 팀 위주로 구성하여 거리두기 관람 방식의 하나로 공중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이는 ‘드라이브인 서커스’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춘천마임축제」가 아파트 단지로 가서 개막작을 선보였다면 ‘서커스 캬바레’는 3회 동안 축제를 해온 문화비축기지에서 공중 퍼포먼스를 실연하며 그것을 시민들이 드라이브인 스루 방식으로 즐기는 ‘드라이브인 서커스’를 처음으로 선보인다고 한다.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면 악화될수록 지금껏 해오지 않았던 방식을 강구해야만 한다. 부평아트센터는 2020년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구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응답하는 한 해를 계획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에 맞닥뜨려 관객들을 만나지 못하는 등 공공극장의 폐쇄사태를 경험하며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극장을 팝니다」라는 획기적인 제목의 작품을 들고 나왔다. 펜데믹 시대에 극장이 팔려서 사라져도 되는지? 아니면 극장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역할인지 질문을 던질 부평아트센터 상주예술단체이자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앤드씨어터 주관의 「극장을 팝니다」 의 역설이 기대된다.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시대에 즈음하여 지금껏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직무유기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고, 사람이 지구를 생각하는 것 또한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 해외거리예술축제 관련 정보는 「고양아람누리 웹진」에 실린 서울거리예술센터 조동희 감독의 글 중 일부를 요약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