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대전시립무용단 황재섭 안무 『사계, 잊혀진 이야기』(9월16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2020년은 다양한 이야기를 거론할 것이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모든 것이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최첨단 디지털사회에서 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가 무력화된 것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면서 끝 모를 현재진행형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우울함이 가득한 것도 현실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이러한 고통을 인간의 의지와 순리적 흐름으로 모두 극복하여 왔다. 1918년 팬데믹에서도 그랬고, 이전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사계의 자연적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중간 중간 일어나는 여러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항상 희망을 품으며 살아온 인류사에 바탕을 둘 것이다.
대전시립무용단 제68회 정기공연 『사계, 잊혀진 이야기』(안무 황재섭)는 보편적 정서를 지닌 한 여인의 현실 극복 의지와 현재적 상황을 중첩하여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 점에서 흥미를 주었다. 게다가 이 작품은 비발디의 사계를 주체적으로 재구성한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사계」를 수용하여 이 음악이 가지는 감각의 다양성을 유동적 몸짓에 담아내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시작은 「사계」의 겨울 2악장 라르고로 시작한다. 이 부분은 겨울을 노래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함을 전해주며 서곡 형식으로 전체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삭풍처럼 날카롭고 찬 추운 겨울의 기본적 정서로 바뀌고, 이러한 상황은 집단적이며 격정적 몸짓이 구현되어 위기적 상황을 그려낸다. 이는 현이 가지는 다채로운 음색의 높낮이와 리듬의 변화에 따라 연속적 몸짓이 나타났고 이를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는 독무 속에서 묘사되어 유형적 세계관을 만든다.
이어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가을이 역순으로 다가서며 몽환적 분위기가 그려진다. 이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고자 하는 ‘문턱’이면서 초인격적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절정이다. 이러한 흐름은 가을이 가지는 비극적 미토스에서 탈피하여 극복 의지가 아닌 집단적 움직임에 따른 역동성의 촉매로 이끌린다. 그러면서 이는 한 여인의 이야기면서 2020년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현실 속 우리의 이야기임을 영상을 통해 이를 지시하며 관객과 현실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가을이 지나 봄이 이어지면서 사계의 익숙한 음률이 흐르고 가벼운 몸짓 속에서 현실을 견디고자 하는 실존이 공존하며 새로운 질서를 그려진다. 여기서는 앞서의 갈등적 충돌이 아닌 조화로움을 통해 자유로움과 열린 인식으로 나아간다. 이는 에필로그에서 강강술래를 수용하여 공동체 정신과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은유적 이미지로 극대화되는데 이는 일시적 해방의 공간으로도 의미를 지니며 긍정적 인식을 전해준다.
이 작품은 한 여인의 질곡 이야기라는 보편적 모티브에 현실적 이야기를 담아내어 그리 어렵지 않게 관객에게 다가간 점에서 긍정적 인식을 주었다. 이러한 담론이 너무 직시적인 감이 없지 않지만 두 이야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었고, 막스 리히터의 음악이 가지는 열려있지만 본질적 요소가 뚜렷한 미니멀적 감각과 맞물리며 융합미를 전해주었다.
또한 이 작품은 특별한 장치 없이 조명과 영상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하려 하여 담백함을 준다. 이는 과한 구성보다는 담담하게 상황을 표현하려 한 점에서 그대로 드러났고, 조명에 따른 원무의 동선이나 강강술래에서도 적용되었다. 그렇지만 이는 단순함이 아닌 윤회의 질서, 즉 현실이 언제나처럼 고통과 나락만 있는 직선이 아닌 조탁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냄을 말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현상학적 가치체계를 만든다.
이 작품은 그동안 안무자가 지향한 심오한 철학적 인식을 담아낸 무게감 있는 작품과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 그렇지만 보편적 모티브와 현실적 담론을 담아내면서도 질감 있는 안무를 구성하여 미니멀하지만 충만한 무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또한 대전시립무용단의 다양성과 새로운 감각을 전해주었다는 점에서도 하나의 문턱이 될 작품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