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9월 초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해 또 다시 무용공연들이 취소 및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K발레월드는 잠정 연기되었으며 아르코파트너 공연은 갑작스럽게 변경되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몇몇 단독 공연들은 무관객 온라인 중계 혹은 일정 수의 관객 수용 등의 형태로 단행되었다. 9월4~5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펼쳐진 고블린파티의 『놀이터』, 9월16일 한국문화의집에서 펼쳐진 김경숙의 『팔풍(八風)의 춤사위-태평성대』, 9월18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펼쳐진 이희자의 『十_영원II』, 9월23~24일 도봉구민회관에서 펼쳐진 지우영의 『레미제라블』 등이 그것이다. 이 중 김경숙과 지우영의 공연을 조명하면 다음과 같다.

▒ 『레미제라블』(댄스시어터샤하르, 9월23~24일 도봉구민회관)
댄스시어터샤하르는 코로나19로 인해 네 차례 연기를 거듭하다가 9월23~24일 도봉구민회관에서 『레미제라블』을 올릴 수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인적 규모였다. 안무 및 연출을 맡은 지우영을 필두로 주요 캐스팅에 강준하, 윤전일, 스테파니 킴, 윤별, 손관중, 정민찬, 김순정과 함께 21명의 군무진 그리고 무대디자인, 조명디자인, 의상디자인, 홍보마케팅 등의 스태프들까지 더해져 상당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창작발레단으로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신작 발표를 단행한 것이다. 원작의 이야기를 대체로 따라가지만 현재에서 과거로의 회상이라든가 구원, 책임감, 정의, 사랑, 용서 등을 함축한 휴머니티에 있어서 지우영만의 각색이 느껴진다. 안무는 극의 흐름, 장면 분위기, 음악의 선율에 어울릴 만한 제스처와 움직임으로 이루어지긴 했으나 좀 더 창의적인 구도나 기교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예술극장이 아닌 구민회관에서 펼쳐져서인지 규모에 비해 예산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세트, 영상, 조명이 다소 허술하게 느껴졌다는 점 역시 재고해봐야 한다.
음악은 펠리시앙 다비드의 「사계」와 「사막」,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 찰리 채플린의 「라임라이트」, 라흐마니노프 외의 「생일축하 변주곡」, 앤드류 로이스 웨버의 「자비하신 예수(Pie Jesu)」 같이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감성을 지닌 곡들을 사용하였다. 창작발레에서 음악 선정은 상당히 중요하고 또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특히 주제나 전개에 어울리면서 서로 상충하지 않은 곡들을 선별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우영은 발레를 시작하기 전에 피아노를 전공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각 장면에 적절한 곡들을 채택하여 한데 아우르는데 능력을 발휘하였다. 댄스시어터샤하르의 『레미제라블』은 독립 창작발레단으로서 어려운 시기에 여러 난관을 딛고 큰 규모의 신작을 발표했다는 점 자체가 하나의 성과로 여겨진다.

▒ 김경숙의 『팔풍(八風)의 춤사위-태평성대』(9월16일 한국문화의집)
국립무형유산원, 한국문화재단 등의 후원을 받은 김경숙의 『팔풍(八風)의 춤사위-태평성대』는 9월16일 한국문화의집(코우스)에서 15명 내외의 관객만 수용하여 진행되었다. 김경숙의 독무로 전개된 ‘한영숙류 태평무’는 정확히 말하자면 한영숙의 제자 이애주를 통해 김경숙이 전승받은 형태의 태평무다. 화려하고 밀도있는 기교나 호흡보다는 김경숙 특유의 차분하고 말끔한 춤사위가 도드라진다. 특히 풍성한 치마 속에서 힐끗 보이는 정성스러운 발디딤의 인상적이다.
『종묘제레 일무-정대업지무 전장』 역시 김경숙의 독무로 실연되었다. 종묘제례악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조선의 역대 왕과 왕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드릴 때 연행하는 기악과 노래와 춤을 총칭하여 말한다. 이때 추어지는 춤을 일무라고 하는데, 문덕을 기리는 문무(文舞)와 무공을 칭송하는 무무(武舞)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실연한 무무(정대업지무)는 오른손에 목검을 잡고 왼손은 비워둔 채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혜와 용기를 담고 덕망으로 왕업의 무공을 표현하는 의식적인 춤이다. 30분 정도 진행된 무무는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작 연결이나 음악 적용에 있어서 끊임없이 변화를 이루기 때문에 순서를 외우는 것 자체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동작이나 음악에서 크게 두드러진 부분이 없으므로 외우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더욱이 한 번에 쭉 이어지기 때문에 한 번의 어긋남이 다음의 연결에 계속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므로 실연 내내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김경숙은 세세하게 변화를 거듭하는 무무를 차분하고 충실하게 실연하였다. 다만, 뒷막에 투영된 궁중과 종묘제례 관련 영상은 초반에 빠른 장면 전환으로 시선을 뺏어가면서 춤을 음미하는데 방해 요소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