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三南地方이란 말을 요즘은 잘 쓰는 것 같지 않지만 普通學校 때에는 洪水地區(홍수지구)로서 유명한 곳이어서 아직까지 익혀져 있는 곳이다. 더구나 罹災民救濟(이재민구제)로서 넉넉하지 못한 옷가지들을 學校로 가져가던 일들과 연결되어 鄕愁(향수) 같은 것도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豆滿江邊(두만강변) 小邑의 少年에게는 三南이란 물이 나는 곳이면 으레 그렇게 부르는 줄로 알았거나 아니면 南쪽의 어떤 곳 정도로밖에 확실한 것은 몰랐다. 다만 뚜렷한 記憶(기억)은 三南水災 때 「同胞」라는 말을 처음 들은 일이다.
祈禱(기도)를 잘하는 金선생님이 아침 예배시간에 울음 섞인 큰 목소리로 연방 「三南의 불쌍한 同胞…」를 부르짖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同胞와 葡萄
(포도)는 같은 것인 줄 알았다. 필경 두 單語의 音響(음향)에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 후 이내 同胞의 뜻을 알기는 하였지만 오래도록 처음의 그 葡萄와 同胞의 複合(복합)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공연히 葡萄까지도 쓸쓸하고 불쌍한 果物(과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우리 고향은 추운 곳이어서 포도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동포나 포도나 간에 나에겐 모두 생소한 것들이니까 그렇게 엉켜졌던지 모른다.
우리 고향에선 헌옷 몇 점이면 산골에서 오는 머루장수 아낙네들과 큰 머루광주리 몇 개씩 바꿀 수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것으로 머루汁(즙)을 만들어 움 속에 넣어두고 먹었다. 그런데 어느 가을은 그 同胞들에게 헌옷을 모두 보냈기 때문에 머루汁이 이른 봄에 가서 떨어졌던 일도 역시 기억에 남는다.
어떻든 그때 그렇게도 呼訴力(호소력) 있게 들리던 「同胞」라는 用語도 近來(근래)에는 잘 쓰이지 않는 말로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사할린 同胞니 以北同胞니 하는 것처럼 쓸쓸한 것과는 연결되어 쓰인다. 그렇다면 이 말에는 그때 시골 개구장이가 느낀 그 끈적끈적하고 주렁주렁 달리는 측은한 憾情(감정)의 葡萄라고 하였다고 별로 틀릴 것이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傲氣(오기)를 끝까지 밀고 갈 생각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 한국일보 1976년 1월17일